공산성은 백제의 수도가 공주에 있을 때, 공주를 지키던 백제의 산성이다.
금강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산성으로, 원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고쳤다. 쌓은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며,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공산성으로,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렀다.
4방에 문터가 확인되는데,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가 남아있고 동문과 서문은 터만 남아있다. 암문·치성·고대·장대·수구문 등의 방어시설이 남아 있으며, 성 안에는 쌍수정·영은사·연지·임류각지, 그리고 만하루지 등이 있다. 또한 연꽃무늬 와당을 비롯하여 백제 기와·토기 등의 유물들과 고려·조선시대의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백제 멸망 직후에 의자왕이 잠시 머물기도 하였으며,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지이기도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김헌창의 난(822)이 일어나기도 하였으며, 조선시대 이괄의 난(1623)으로 인조가 피난했던 곳이기도 하다.
백제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의 백제 도성이었으며, 이후 조선시대까지 지방 행정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크고 연구할 가치가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전문설명 공산성은 백제< 百濟 >의 웅진성< 熊津城 >으로 공주를 지키기 위한 백제의 대표적인 고대 성곽이다. 문주왕< 文周王 > 원년< 元年 >(475) 한산성< 漢山城 >으로부터 이곳으로 도읍< 都邑 >을 옮겨 삼근왕< 三斤王 >, 동성왕< 東城王 >, 무령왕< 武寧王 >을 거쳐 성왕< 聖王 > 16년(538)에 부여< 扶餘 >로 옮길 때까지 64년간 왕도< 王都 >를 지킨 이 산성은 북으로 금강< 錦江 >이 흐르는 해발 110m의 능선에 위치하는 천연의 요새로서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약 400m 정도의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능선과 계곡을 따라 쌓은 포곡형< 包谷形 >이며 원래는 토성< 土城 >이었으나 조선< 朝鮮 > 선조< 宣祖 >, 인조< 仁祖 > 시대< 時代 >에 대부분 현재와 같은 석성< 石城 >으로 개축되었다. 성곽의 총길이는 2,660m로 외성< 外城 >을 제외하면 2,193m가 된다. 현재의 성벽은 높이 약 2.5m, 너비 약 3m로 대부분이 보수되었고 성내 유적은 진남루< 鎭南樓 >, 공북루< 拱北樓 >, 쌍수정 < 雙樹亭 >, 명국삼장비< 明國三將碑 >, 쌍수산성사적비< 雙樹山城事蹟碑 >, 영은사< 靈隱寺 >, 연지 < 蓮池 >, 임류각지< 臨流閣址 >, 군창지< 軍倉址 >, 동서문지< 東西門址 > 등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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