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하리지역의 옛 절터에 있던 것을 1958년 창리의 3층석탑과 함께 현재의 터로 옮긴 것으로, 1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얹은 모습이다.
기단은 4면의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기고, 그 윗돌 중앙에 1층 몸돌을 괴기 위한 2단의 테두리 조각을 둘렀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로 이루어져 있으며, 몸돌의 각 면 모서리마다 얕은 기둥 형태의 조각이 나타나 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4단으로,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양쪽 귀에서 위로 약하게 솟아있다. 전체적으로 돌을 짜서 올리는 수법의 규칙성을 보이고 온화한 비율감이 느껴져 고려 전기보다는 중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탑을 옮겨 세울 당시, 1층 몸돌에서 독특한 모습의 사리홈이 발견되어 흥미를 끌고 있다. 즉, 몸돌 윗면의 중앙에 높이 3㎝의 얇은 띠가 둘러져 있고 그 안으로 2개의 구멍이 파여있는데, 이와 닿게 되는 지붕돌의 밑면에도 이를 배려한 듯 홈이 깊게 파여져 있다. 이는 몸돌의 윗면에만 깊은 홈을 두어 사리를 담아두는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 정반대의 형태를 하고 있어 특이하다.
전문설명 이 탑은 단층기단< 單層基壇 > 위에 3층의 탑신부< 塔身部 >를 형성한 일반형 석탑이다. 지대석< 地臺石 > 위에 2단의 높직한 괴임을 각출< 刻出 >하여 4매의 판석< 板石 >으로 조립된 기단 면석< 面石 >을 받고 있는데, 각면에는 양쪽에 우주< 隅柱 >가 모각되었다. 갑석< 甲石 > 하면에 얕은 부연< 副椽 >이 있고, 상면에는 2단의 괴임을 각출하여 탑신부를 받고 있다. 탑신부는 탑신< 塔身 >·옥개석< 屋蓋石 >이 각 1석씩이며, 옥개받침은 4단씩이다. 탑의 높이는 3.7m이며, 이건 당시 특이한 사리공이 발견되었다. 각부의 양식수법< 樣式手法 >으로 보아 고려시대< 高麗時代 >의 건립으로 추정된다. 이 석탑은 원래 하리의 옛 절터에 있던 것을 1958년 11월 이곳 한강변에 위치한 영월루< 迎月樓 > 밑으로 창리< 倉里 > 삼층석탑< 三層石塔 >(보물 제91호)과 나란히 이건하였다.
여주 하리 삼층석탑 탑신부 기단부 기단갑석 위 탑신괴임 여주 하리 삼층석탑 여주 하리 삼층석탑 1단 탑신부 갑석 기단부 배면 우측면 우측면과 배면 전경 탑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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