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사의 옛 터에 남아있는 탑이다. 신복사는 통일신라 때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창건한 절로, 창건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즉 신라의 한 처녀가 우물에 비친 햇빛을 보고 그 물을 마셨는데 곧 아이를 배어 낳게 되었다. 집안 사람들이 아이를 내다버렸으나, 아이의 주위로 빛이 맴돌아 괴이하게 여겨 다시 데려와 길렀는데, 그 이름을 범(梵)이라 하였다. 범이 출가하여 승려가 된 후 고향에 돌아와 신복사와 굴산사(掘山寺)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창건 이후의 기록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탑은 2층의 기단(基壇)을 쌓고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것으로, 각 부분의 모습들이 특이하다. 바닥돌의 윗면에는 연꽃이 엎드려 있는 듯한 모양의 조각을 하여 둘렀고, 아래층 기단의 4면에는 안상(眼象)을 3개씩 새겨 넣었다. 탑신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겨 얹어 놓았다. 탑신에는 부처의 사리나 불경 등을 모셔두는데, 1층의 몸돌에 이를 안치하는 방인 감실(龕室)모양의 조각이 있다. 1층의 몸돌에 비해 2·3층은 갑자기 그 크기가 줄어들어 매우 얇다. 지붕돌 역시 얇아서 귀퉁이끝은 치켜올림이 희미하며,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는 3단이다.
꼭대기에는 드물게 머리장식이 온전히 남아있는데, 각 부분의 높이에 비해 폭이 넓어 안정감을 준다.
탑의 앞쪽에는 한 쪽 무릎을 세우고, 두 손을 받치듯이 들고 있는 보살석상(보물 제84호)이 있다. 이러한 모습은 같은 강원도 내의 월정사팔각9층석탑(국보 제48호)과 비슷하여 이 지방의 특색이 아닐까 짐작된다. 탑의 기단과 몸돌의 각 층 밑에는 널돌로 괴임을 넣었는데, 이러한 양식은 고려시대에 자주 보이는 모습 중 하나이다. 또한 아래층 기단에 안상이 새겨진 것이나,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가 3단으로 되어있는 점도 고려 전기의 석탑양식을 잘 따르고 있다.
전문설명 삼층석탑은 이중기단< 二重基壇 > 위에 3층의 탑신부< 塔身部 >를 세운 형식이다. 기단부는 지대석< 地臺石 > 상면< 上面 >에 복련< 覆蓮 >을 새겼고, 하층기단 면석< 面石 >에 안상< 眼象 >을 새겨 고려 초기 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 屋蓋石 >을 각 1석씩으로 조성하였는데, 상층기단 면석과 각층 탑신석 밑에는 별석< 別石 >의 괴임돌을 놓았다. 초층탑신에 감실< 龕室 >이 음각< 陰刻 >되어 있고, 옥개석받침은 3단이다. 상륜부< 相輪部 >는 노반< 露盤 >, 복발< 覆鉢 >, 앙화< 仰花 >, 보륜< 寶輪 >, 보주< 寶珠 >가 남아 있는데 각 부재< 部材 >는 높이에 비해 폭이 넓어 안정된 감을 주며, 각층마다 끼여 있는 별석< 別石 >의 괴임돌이 있어서 특이하다. 이러한 탑은 월정사< 月精寺 > 팔각구층탑< 八角九層塔 >과 유사한 것으로 같은 지방유파< 地方流派 >의 특징으로 생각된다.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 상륜부 기단부 전체(상.하층기단) 하층기단의 복련석과 면석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 상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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