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신복사는 통일신라 문성왕 12년(850년)에 범일국사가 처음 세웠다. 신복사지 삼층석탑(보물 제87호)을 향하여 공양하고 있는 모습의 보살상을 표현하였는데, 왼쪽 다리를 세우고 오른쪽 다리를 꿇어 앉은 자세를 하고 있으며 두 손은 가슴에 모아 무엇인가를 잡고 있는 모습이다.
원통형의 높다란 관(冠)을 쓰고 있는 얼굴은 풍만한데다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어 복스럽게 보인다. 관 밑으로 드러난 머리카락은 어깨너머로 길게 늘어져 있으며, 양 어깨에서부터 걸쳐 내져진 옷자락은 몸의 굴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보살상의 사실성을 더해준다. 팔찌, 목걸이, 옷주름은 굵은 띠처럼 묘사되었으며 전체적으로 둥글고 둔중한 조각수법을 보인다. 이러한 자세나 조각 솜씨는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호)앞의 공양보살상과 유사한 것으로 같은 지방 계열의 특징으로 여겨진다.
보살이 앉아있는 대좌(臺座)는 윗면을 둥글게 하여 보살이 들어앉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바깥쪽에는 큼직큼직하게 2겹의 연꽃잎을 조각하였다.
규칙적인 간격의 옷주름과 단순해진 장신구, 대좌의 조각수법 등에서 화려한 신라적 요소가 사라지고 고려 초기의 둔화된 표현 양식이 나타나고 있다.
전문설명
탑을 향해서 공양(供養)하는 모습의 보살상으로 고려(高麗) 초기(初期), 즉 10세기 후반기에 제작된 것이다.
보살상은 탑을 향해서 왼무릎을 세우고 공양하는 자세로 복판앙련(複瓣仰蓮) 대좌(臺座) 위에 앉아 있다. 원통형의 높은 보관(寶冠)위에 8각의 천개(天蓋)를 씌웠다. 부드럽고 복스런 얼굴에 비대하고 풍만한 체구를 지녔고, 규칙적인 간격의 옷주름과 단순해진 장신구(裝身具) 등에서 신라적(新羅的)인 요소가 사라지고 고려 초기 즉 10세기 후반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탑을 향해 공양하는 보살상은 월정사(月精寺) 공양보살상(供養菩薩像)과 유사한 것으로 같은 지방유파(地方流派)의 특징으로 생각된다.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머리부분 관부분 상반신 배면(어깨와 허리 부분) 석조보살좌상 배면(엉덩이 부분과 연화 대좌)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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