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려비란 충신이나 효자, 열녀 등을 기리고자 그들이 살았던 고을에 세운 비를 말한다. 이 비는 고려시대 사람인 손시양의 효행을 표창하는 정문(旌門)을 설치하게 된 내력을 적고 있다.
손시양은 부모가 돌아가신 뒤 각각 3년간 묘소 옆에 막을 지어놓고 곁을 지켰다 한다. 당시 동경유수(東京留守) 채정이 왕에게 그의 효행을 글로 적어 올려 마을에 정문을 세우게 되었다.
비는 비몸만 있을 뿐 아래의 받침돌과 위의 머릿돌은 없다. 고려시대 명종 12년(1182)에 세워진 것으로, 비문은 채정이 지었다. 이 정려비는 고려시대에 건립된 일반적인 비의 형식과 달리 사각기둥 모양으로, 고려시대에 불교와 관련되지 않은 비문으로서 희귀한 자료이다. 길가에 서있던 것을 1977년 받침을 설치하고 보호각을 건립하여 보존하고 있다.
전문설명 손시양은 고려시대(高麗時代) 사람으로 부모가 돌아가시자 각 3년씩 묘소에 여막을 지어 놓고 묘를 지킴으로 당시 유수(留守)가 왕에게 상신하여 집에 정표를 내리니 지금의 정려비이다.
이 비석(碑石)은 고려 명종(明宗) 12년(1182)에 세워졌으며, 후면에는 5행 130자로 손시양의 효행(孝行) 내용과 정려비의 입비(立碑) 경위가 새겨진 명문(銘文)이 있다.
이 정려비는 손시양의 효행을 널리 알려 백성이 지켜야 할 효도정신(孝道精神)을 고취시키던 유서 깊은 비석으로서, 노천에 서 있던 것을 1977년에 기단(基壇)을 설치하고 보호각(保護閣)을 건립하였다. 비신높이는 약 2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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