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사터로 알려진 곳에 남아 있는 석조이다. ‘보문(普門)’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되면서 보문사터로 알려진 이 곳에는 부처님을 모셨던 금당터와 쌍탑이 있었던 흔적이 있고, 당간지주, 석등받침돌 등이 함께 남아 있다.
이 석조는 절에서 생활에 필요한 물을 받아 두기 위해 만든 돌물통으로, 지금도 절에서는 이와 비슷한 것이 급수용기로 사용되고 있다. 큰 돌 하나로 내부를 파내어 물을 담도록 하였는데, 윗부분의 가장자리보다 밑부분이 약간 좁아졌고, 아래면은 평평하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형태가 크지만 안팎으로 아무런 장식이 없는 소박한 모습이다. 이 구조는 주변 유물들과 관련지어 볼 때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설명
이 석조는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사찰(寺刹)에서 급수용(給水用)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대형의 돌로 만든 용기(容器)이다.
큰 화강암(花崗岩) 하나를 가지고 내부를 깊이 0.61m, 길이 2.43m, 너비 1.85m되게 장방형으로 파내어서 물을 담도록 했으며 전체적으로 볼 때 비교적 형태가 크나 내외(內外) 어느 곳에도 아무런 장식이나 문양이 없는 소박한 것이다. 그러나 단순하고 소박하면서도 웅장한 모습은 그 시대의 대표적인 석조(石槽)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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