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강당 뒤쪽의 보호각에 보존되어 있는 사리탑으로, 「불국사사적기(佛國寺事蹟記)」에서 말하는 '광학부도(光學浮屠)'가 곧 이 사리탑을 가리킨다는 견해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여래의 사리탑인지 승려의 사리탑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겉모습이 석등과 비슷하게 생긴 사리탑으로, 사리를 모시는 탑신(塔身)을 중심으로 아래는 받침이 되는 기단(基壇)을 두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두었다. 기단은 연꽃잎을 새긴 반원모양의 돌을 위 · 아래에 두고, 그 사이를 북(鼓)모양의 기둥으로 연결하고 있는데 기둥에 새겨진 구름무늬에서 강한 생동감이 묻어난다. 탑신(塔身)은 가운데가 불룩한 원통형으로, 네 곳마다 꽃으로 장식된 기둥모양을 새겨두었다. 기둥에 의해 나뉘어진 4면에는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안쪽으로 움푹 파놓은 후, 그 안에 여래상(如來像)과 보살상(菩薩像)을 돋을새김하여 모셔놓았다. 지붕돌은 추녀끝에서 12각을 이루다가 정상으로 올라가면서 6각으로 줄어든다. 경사면은 완만하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일부만 남아있다.
평면이 8각인 기본형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화려한 조형과 섬세한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1905년 일본인에 의해 동경의 우에노(上野)공원으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1933년에 반환된 것으로, 일제시대 당시 모진 수난을 당한 우리 문화재의 아픈 역사를 잘 말해주고 있다.
전문설명
고려시대에 건립된 사리탑으로 높이는 2.06m이다. 현재 불국사의 강당 뒤쪽 비로전 곁에 단칸의 보호각을 지어 보존하고 있다. 1905년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33년에 반환된 것으로, 지금의 위치는 원래의 위치가 아니다. 전체적으로 표면 장식이 아름답고 단아하며, 외형적으로는 석등과 비슷한데, 「불국사사적기(佛國寺事蹟記)」에 '광학부도(光學浮屠)'라 한것이 바로 이것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구조는 상대석 ·중대석 ·하대석 위에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을 놓았다. 기단부(基壇部)는 방형의 지대석(地臺石)위에 8각형의 기대석(基臺石)을 놓았는데, 각 면에는 상하로 테를 돌리고 그 사이에 안상(眼象) 1구씩을 조각하였으며, 지선(地線)에서는 꽃무늬 문양을 새겨 간지(間地)를 메우고 있다. 그 위의 복련석(伏蓮石)에는 소박하고 큼직한 단판연화(單瓣蓮華) 8잎을 새겼고, 중대석은 고형(鼓形) 표면에 구름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상대석의 하부에는 단판 연화 9잎을 돌렸고, 연판의 가운데에는 꽃 문양 형식의 원좌(圓座)가 있으며 상면에는 옥신 주위로 20과(二十顆)의 연자(蓮子)가 음각되었다.
옥신(屋身)은 배가 부른 원통형의 특이한 형태로 상하 방향으로 연꽃과 보상화문(寶相華文)의 기둥을 조각해 세워 네 부분으로 구분하였다. 각 면에는 얕은 불감(佛龕)을 만들어 그 안에 여래좌상(如來坐像) 2구와 보살입상(菩薩立像) 2구를 양각하였으며, 감실 상부에는 장막이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옥신 상부에는 하면에 연판이 돌려진 12각의 기와지붕을 본떠 만든 옥개석이 얹혀 있다. 옥개석은 추녀 끝에서 12각을 이루다가 정상을 향하면서 6개의 능선이 소멸되어 6각을 이루고 있다. 옥개석 하면에는 16판 연호가 중첩되었고, 옥개석 상면의 낙수면은 경사가 매우 완만하다. 옥개석 정상에는 낮게 6각형의 노반(露盤)이 놓이고 그 위에 횡대(橫帶)와 꽃 문양이 조각된 편구형(扁球形)의 복발(覆鉢)이 얹혀 있다. 한편 옥신 상부 중앙에는 지름 5cm의 둥근 구멍이 뚫려 옥개석을 관통하고 있는데, 이 구멍은 찰주공(擦柱孔)으로 생각되며, 양련석(仰蓮石) 중앙에는 홈이 패어 있어 사리공(舍利孔)으로 추정된다.
불국사사리탑
불국사사리탑
불국사사리탑
불국사사리탑
불국사사리탑
불국사사리탑
불국사사리탑
불국사사리탑
불국사사리탑
불국사사리탑
여래좌상
보살상
보살상
사리탑 기단부
사리탑 보호각
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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