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보

국보 제291호 용감수경(龍龕手鏡)

오늘의 쉼터 2008. 2. 2. 11:53


종     목 국보  제291호
명     칭용감수경(龍龕手鏡)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목판본/ 관판본
수량/면적

1책

지 정 일 1997.01.01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안암동1가 1-2 고려대학교중앙도서관
시     대고려시대
소 유 자고려대학교
관 리 자고려대학교중앙도서관

일반설명

중국 요나라 성종 15년(997)에 행균스님이 편찬한 한자의 자전이다.

행균의 이 책은 재래 중국의 자전과 달리 부수별로 먼저 배열하고, 또 같은 각수안에서는 운(韻)별로 배열하여 여러 가지를 병용하는 방법을 취하였고, 정자 이외의 속자까지도 전부 망라하여 해설을 붙인 것이다. 이 책을 우리나라에서 언제 중간했는지는 알 수 없으며, 단지 나주에서 권득령의 책임하에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원형인 『용감수경』은 중국에서는 벌써 없어지고 남송 때에 와서 『용감수감』으로 이름이 바뀌어 나왔으므로, 요나라 때의 원판본은 일찍부터 전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금강산 유점사에서 발견된 『용감수경』권1과 최남선의 장서 가운데에서 발견된 권3 및 권4가 있었는데, 이 책의 원본은 고려시대에 다시 새긴 본으로 짐작된다. 결국 국보 제291호는 『용감수경』의 원형으로 세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본이라고 할 수 있어 1996년 11월 28일 보물 제130호에서 등급이 조정되었다.

본자가 26,430여 자이며, 주가 163,170자에 달하여 자전으로서 매우 귀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요나라의 음운 연구에는 유일하므로 자료로서의 가치가 대단히 높게 평가된다.


전문설명

 

요(遼) 성종(聖宗) 15년(997)에 요(遼)의 승려 행균(行均)이 편찬한 한자자전이다.

재래 중국의 자전(字典)은 양(梁) 고야왕(顧野王)의 옥편(玉篇)과 같이 부수별(部首別)로 된 것과 수(隋) 육법언(陸法言)의 광운(廣韻)과 같이 사성(四聲)의 운별(韻別)로 글자를 배열하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

행균(行均)의 이 책은 부수별로 먼저 배열하고 또 같은 부수 안에서는 운별(韻別)로 배열하여 여러 가지를 병용하는 방법을 취하였고 정자(正字) 이외에 속자(俗字)까지도 망라하여 해설을 붙인 것이다. 본자(本字)가 26,430여자(餘字)이며 주(註)가 163,170자에 달하여 자전(字典)으로서 매우 귀중한 것일 뿐 아니라 요대(遼代)의 음운(音韻)을 연구하는 데에 유일한 자료가 된다. 행균(行均)은 승려였으므로 특히 불전에 나오는 글자까지 빠뜨리지 않고 망라한 것이 이 책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용감(龍龕)이란 말이 곧 불전(佛典)을 의미하는 것으로 행균(行均)은 그 서(序)에서「신음편어용감(新音偏於龍龕), 유수지어란경(猶手持於鸞鏡), 형용사감(形容斯鑒)」이라 하여 서명의 뜻을 풀이하였다.

그런데 이 책의 원형을 가진 『용감수경』은 중국(中國)에서는 진작 사라지고 남송대(南宋代)에 이르러 『용감수감(龍龕手鑑)』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 나와서 근래 속석일총서(續石逸叢書)에 수록, 간행되었다. 그러므로 한국에 남아있는 이 책은 『용감수경』의 원형으로 천하의 고본(孤本)이다.

이 책 이외에 강원도 유산사(江原道 楡山寺)에 같은 판본(板本)으로 권일(卷一)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보존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다. 모두 사권(四卷)으로 되어 있으며 권일(卷一)이 존재한다 해도 권이(卷二)는 결락(缺落)되었다. 한국에서 언제 이것을 중간(重刊)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다만 권사(卷四)의 끝에 「나주목관조각사권입구십삼장(羅州牧官雕刻四卷入九十三丈)」이라고 줄을 올려서 쓰고 다시 줄을 바꾸어 낮게 「사록장서기차양온령권득령(司錄掌書記借良온令權得齡)」이라고 새겨서 나주(羅州)에서 권득령(權得齡) 책임하에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으나 권득령(權得齡)이 다른 기록에는 나오지 않으므로 그 연대를 알 길이 없다. 다만 고려의 복각(覆刻)이 남송시대까지 내려가지 않은 것과 또 요(遼)가 망한 것이 1125년인 점을 미루어 요(遼)의 국권이 존재했을 때에 간행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11세기 경으로 추정할 수 있을 듯하다.

몽산화상법어략록(蒙山和尙法語略錄) 등의 금수온발(金守溫跋)에 인수왕비(仁粹王妃)가 성종(成宗)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성종 3년(1472)에 인행(印行)한 서목(書目) 가운데에 『용감수감』50부가 들어있으나 이 책은 아직 발견된 바가 없다.

그런데 일본의 내각문고(內閣文庫)에 혜각존자 신미(慧覺尊者 信眉)의 장서인(藏書印)이 있는『용감수감』이 소장되어 있으며, 책의 형태나 난외(欄外)의 각수(刻手) 등으로 미루어서 세조초의 간본(刊本)으로 추정된다. 늦어도 성종 3년 인출본(印出本)이거나 그보다 앞선 초인본(初印本)이라 할 것이다. 이 세조조(世祖朝) 간본을 명종 18년(1563)에 황해도 귀진사(歸眞寺)에서 복각한 책은 현재 널리 전하고 있다.

이 『용감수경』은 중국을 비롯한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없어진 책이며 또 이 책이 귀중한 고려본이라는 사실로 인해 1996년 11월 28일 일제지정문화재 재평가에 의해 보물 제130호에서 국보 제291호로 등급이 조정되었다.




용감수경권3

권3본문

권4의권수

권4의권말

용감수경 권3~4

용감수경 권3~4

용감수경 권3~4

용감수경 권3~4

용감수경 권3~4

용감수경 권3~4

용감수경 권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