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10년(1464) 세조의 왕사인 혜각존자 신미 등이 학열, 학조 등과 함께 임금의 만수무강을 빌고자 상원사를 새롭게 단장하면서 지은 글로, 이 사실을 전해들은 세조가 쌀, 무명, 베와 철 등을 보내면서 쓴 글과 함께 월정사에 소장되어 전한다. 각각 한문 원문과 번역으로 되어 있는데, 신미 등이 쓴 글에는 신미, 학열, 학조 등의 수결(지금은 서명)이 있으며, 세조가 보낸 글에는 세조와 세자빈, 왕세자의 수결과 도장이 찍혀 있다. 한글로 번역된 것은 가장 오래된 필사본으로 유명하다. 세조와 상원사 및 신미와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역사적 자료이며, 당시의 국문학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가장 오래된 한글서적이면서도 보존 상태가 완벽하여 1996년 11월 28일 보물 제140호에서 국보 제292호로 등급이 조정되었다.
전문설명 세조의 왕사(王師)인 혜각존자 신미(慧覺尊者 信眉) 등이 왕의 수복을 빌기 위하여 상원사(上院寺)를 중창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세조가 채색·쌀·무명·베와 철재(鐵材)를 보내면서 그 취지를 쓴 글과, 왕의 하사품(下賜品)을 받고 신미(信眉) 등이 쓴 글로 구성된 2책이다.
한 책은 한문의 원문만으로 되어 있는데 신미(信眉) 등이 쓴 글에는 신미(信眉)·학열(學悅)·학조(學祖) 등의 수결, 세조가 쓴 글에는 세조와 왕세자의 수결과 인기(印記), 이어 효녕대군(孝寧大君) 이하 여러 종실(宗室)과 신하들의 이름과 수결이 있으며, 다른 한 책은 권선문을 한문으로 쓴 다음에 다시 한글로 번역한 것을 붙이고 뒤에 세조(世祖)와 세자의 수결과 인기(印記), 왕비·세자빈·공주 및 외명부(外命婦)의 기명(記名)과 인기(印記)가 있다.
이 글이 쓰여진 시기는 신미 등의 권선문(勸善文) 끝에 「천순팔년랍월십팔일(天順八年臘月十八日)」이라 있으므로 세조 10년(1464) 12월이다. 표장(表裝)은 붉은 색깔로 당초문(唐草文)이 들어있는 비단으로 쌌다.
이 문서는 조선조의 왕가(王家)에서 사찰에 대하여 보조한 기록으로서 귀중할 뿐 아니라, 또한 당시의 학승(學僧)으로 유명했던 신미(信眉)·학열(學悅)·학조(學祖)와 세조(世祖)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료(史料)로서 더욱 중요하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제정한 이후에 판각이나 활자로 발행된 한글문헌은 많이 있으나 직접 묵서(墨書)한 것으로는 이것이 가장 오래된 진적(眞蹟)이므로 초기의 한글 서체를 연구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밖에 세조(世祖)와 세자(世子), 당시의 유명한 학승(學僧)과 수많은 문신(文臣)들의 수결이 있으므로 우리나라 수결(手決)의 연구자료로 크게 이용될 수 있다. 이것은 세조와 세자 및 문신, 그리고 학승들의 수결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오래된 한글 서적(書蹟)이고 보존상태도 완벽한 것이므로 1996년 11월 28일 일제지정문화재 재평가에 의해 보물 제140호에서 국보 제292호로 등급이 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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