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보

국보 제229호 보루각자격루(報漏閣自擊漏)

오늘의 쉼터 2008. 1. 29. 20:56


종     목 국보  제229호
명     칭보루각자격루(報漏閣自擊漏)
분     류 유물 / 과학기술/ 천문지리기구/ 천문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 1985.08.09
소 재 지 서울 중구  정동 5-1 궁중유물전시관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궁중유물전시관
관 리 자문화재청

일반설명

물시계는 물의 증가량 또는 감소량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로서, 삼국시대부터 나라의 표준 시계로 사용하였다. 조선 세종 16년(1434) 장영실에 의해 정해진 시간에 종과 징·북이 저절로 울리도록 한 물시계가 처음 제작되었으나, 오래 사용되지는 못하였고, 중종 31년(1536)에 다시 제작한 자격루의 일부가 현재 남아 있다.

물시계의 원리를 보면, 맨 위에 있는 큰 물그릇에 넉넉히 물을 부어주면 그 물이 아래의 작은 그릇을 거쳐, 제일 아래쪽 길고 높은 물받이 통에 흘러든다. 물받이 통에 물이 고이면 그 위에 떠 있는 잣대가 점점 올라가 미리 정해진 눈금에 닿으며, 그곳에 장치해 놓은 지렛대 장치를 건드려 그 끝의 쇠 구슬을 구멍 속에 굴려 넣어준다. 이 쇠구슬은 다른 쇠구슬을 굴려주고 그것들이 차례로 미리 꾸며놓은 여러 공이를 건드려 종과 징·북을 울리기도 하고, 또는 나무로 만든 인형이 나타나 시각을 알려주는 팻말을 들어 보이기도 한다. 지금 남아 있는 물시계는 쇠구슬이 굴러 조화를 이루던 부분이 없어진 채, 물통 부분들만 남아 있다.

청동으로 된 큰 물그릇은 지름 93.5㎝, 높이 70.0㎝이며, 작은 물그릇은 지름 46.0㎝, 높이 40.5㎝이다. 작은 물그릇이 놓였던 돌 받침대는 지금 창경궁 명정전 뒤에 2개가 남아 있다.

현재 중국 광동에 남아 있는 명나라의 물시계보다 조금 늦게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규모가 크고 만듦새가 훌륭하여 매우 귀중한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전문설명


물시계는 삼국시대(三國時代)부터 나라의 표준 시계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에 종, 징, 북을 저절로 치도록 만든 자동 물시계로는 조선(朝鮮) 초(初) 세종(世宗) 때 장영실(蔣英實)의 자격루가 처음으로 기록되어 있다.

세종 16년(1434)의 자격루는 그대로 보존되지 못했기 때문에 중종(中宗) 31년(1536)에는 다시 자격루를 만들었는데, 그 일부가 지금 여기 남아 있는 것이다.

세종 때 장영실의 자동 물시계에 대해서는 유물이 남지 않았지만 자세한 설명이 전한다. 한편 중종 때의 자격루는 여기 일부가 남아 있지만, 그 상세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둘은 상당히 비슷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제일 위에 있는 물 보내는 큰 그릇에 넉넉히 물을 부어 주면, 그 물은 아래의 작은 물 보내는 그릇을 거쳐 같은 시간에 같은 양의 물이 제일 아래 길고 높은 물받이 통에 흘러든다. 물받이 통에 물이 고이면 그 위에 떠 있는 잣대는 점점 올라가 미리 정해진 눈금에 닿으며 그곳에 장치해 놓은 지렛대 장치를 건드려 그 끝의 쇠알을 구멍 속에 굴려 넣어 준다. 이 쇠구슬은 다른 쇠알을 굴려주고, 그것들이 차례로 미리 꾸며놓은 여러 공이를 건드려 종, 징, 북을 울리기도 하고, 또는 인형이 나타나 시각을 알려 주는 팻말을 들어 보이기도 한다.

이 유물은 쇠구슬이 굴러 조화를 일으키는 부분은 없어진 채 지금은 물통부분들만 남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오래된 자동 물시계 유물은 세계적으로 귀중한 과학문화재이다.




창경궁 자격루

창경궁 자격루

창경궁 자격루

창경궁 자격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