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인생전략

제 23 계 원교근공(遠交近攻)

오늘의 쉼터 2008. 1. 27. 21:24

                         

 23계, 원교근공(遠交近攻) -먼 나라와 사귀고 이웃 나라를 공격한다.

 

 

 원교근공은 적의 연맹은 와해시키고 자기 나라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나라와 친교를 맺어 먼저 가까운 나라를 공격하는

전략적 계략이다.

이것은 전국시대 때 진나라가 채용한 일종의 외교 책략으로 이웃국가를 정복하여 통일왕조를 건립할 목적에 사용하였다.

원교근공의 출전은 <전국책(戰國策)·진책(秦策)>. 군사 목표를 실현하려는 기도(企圖)가 지리적 조건의 제한을 받아

달성하기 어려울 때는 먼저 가까운 적을 공격하여 취해야한다.

가까운 적을 넘어 먼 적을 공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적군의 연맹을 방지하기 위하여 천방백계로 적을 분열시킨다.

 가까운 적을 섬멸한 후 친교를 맺은 먼 나라도 다시 새로운 공격 대상으로 변한다.

'먼나라와의 친교'목적은 실제적으로 적의 수가 많아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채택하는 외교 술수.


춘추초기, 주천자의 지위가 실제로 이미 허수아비에 불과했으며 군웅이 할거 하며 중원을 각축하고 있었다.

정장공은 이런 혼란국면을 교묘하게 '원교근공'의 책략을 사용하여 수습하고 패권을 잡는 위치에 올랐다.

당시, 정국(鄭國)과 이웃한 나라로는 송국, 위국이 있었는데 정국과는 원한이 깊은 관계였고, 모순으로 아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정국은 늘 두 나라사이의 협공을 받는 위기에 있었다.

정국은 외교상으로 주동적으로 주(지금의 산동성 추현(鄒縣) 일대),노나라 등과 동맹을 맺고 있었고,

오래지않아 또 막강한 제나라와 결맹을 맺었다.

기원전 719년, 송-위가 진, 채 두 나라와 공동으로 정국을 공격하였는데, 노나라에서도 파병을 하여 싸움을 도왔다.

정나라 동문을 포위한지 5일 밤이 지났다.

 비록 아직 공격을 감행하지는 않았지만 정나라는 이미 자신들과 노나라의 관계가 아직 존재하고 있다고 보고 온갖

방책으로 노나라와 다시 수교하여 공동으로 송과 위에 대적하려 했다.

2년 뒤 그러니까 기원전 717년, 정나라는 주나라의 도움으로 설욕하기위해 송나라를 공격하였다.

동시에 노나라에게 적극적으로 동참하도록 외교공세를 폈다.

노나라에 사신을 보내는 등 공을 들인 결과 노나라는 정나라와 다시 옛 우정을 되찾았다.

제나라가 정나라와 송나라의 관계를 조정하기위해 나섰는데, 정장공은 제나라의 의견을 존중하여 잠시 송나라와 관계가 좋아졌다.

기원전 714년, 정장공은 송나라가 주천자에게 알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천자를 대신해 송나라를 공격하도록 명령했다.

정, 제, 노나라 대군은 아주 빠른 속도로 송나라의 영토를 점령하였다.

정장공은 점령한 송나라의 영토를 제, 노나라에게 나누어 주고 즉시 돌아왔다.


 ◐ 원교근공(遠交近攻) ◑ - 병법 삼십육계 (兵法 三十六計)중 제23계

▶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는 정책. 지형상의 제약을 받을 때에는 가까이 있는 적을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며, 먼데 있는 적을 공격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경우가 흔히 있다. 불은 위로 타오르고 물은 밑으로 흐른다. 같은 적이라도 대책은 달리해야 한다.

▶ 전국 시대, 위(魏)나라의 책사(策士)인 범저(范雎)는 제(齊)나라와 내통하고 있다는 모함에 빠져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진(秦)나라의 사신 왕계 (王稽)를 따라 함양(咸陽)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진나라 소양왕(昭襄王)은 진나라는 '알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다 [누란지위(累卵之危)]'고 자국(自國)의 정사를 혹평한 범저를 환영하지 않았다. 따라서 범저는 소양왕에게 자신의 장기인 변설(辯舌)을 펼쳐 볼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소양왕 36년(B.C. 271), 드디어 범저에게 때가 왔다.

당시 진나 라에서는 소양왕의 모후인 선태후(宣太后)의 동생 양후(穰侯)가 재상으로서 실권을 잡고 있었는데, 그는 제나라를 공략하여 자신의 영지인 도(陶)의 땅을 확장하려 했다.

이 사실을 안 범저는 왕계를 통해 소양왕을 알현하고 이렇게 진언했다.

"전하, 한(韓),위(魏) 두 나라를 지나 강국인 제나라를 공략한다는 것은 득책(得策)이 아닌 줄 아옵니다. 적은 병력을 움직여 봤자 제나라는 꿈쩍도 않을 것이옵고, 그렇다고 대군(大軍)을 출동시키는 것은 진나라를 위해 더욱 좋지 않사옵니다.

가능한 한 진나라의 병력을 아끼고 한,위 두 나라의 병력을 동원코자 하시는 것이 전하의 의도인 듯하오나 동맹국을 신용할 수 없는 이 마당에 타국 너머 멀리 떨어져 있는 제나라를 공략한 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옵니다.

지난날 제나라의 민왕이 연(燕)나라의 악의(樂毅)장군에게 패한 원인도 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초(楚)나라를 공략하다가 과중한 부담을 안게 된 동맹국이 이반(離反)했기 때문이옵니다.

그때 덕을 본 것은 이웃 나라인 한나라와 위나라이 온데, 이는 마치 '적에게 병기를 빌려주고[借賊兵(차적병)] 도둑에게 식량을 갖다 준 꼴[齎盜糧(재도량) ]'이 되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나이다.

지금 전하께서 채택하셔야 할 계책으로는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는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이 상책(上策)인 줄 아옵니다. 한 치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촌토(寸土)이옵고 한 자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척지(尺地)가 아니옵니까?

이해득실(利害得失)이 이토록 분명 하온데 굳이 먼 나라를 공략하는 것은 현책(賢策)이 아닌 줄 아옵니다."

이 날을 계기로 소양왕의 신임을 얻은 범저는 승진 끝에 재상이 되어 응후 (應侯)에 봉해졌고, 그의 지론인 원교근공책은 천하 통일을 지향하는 진나라의 국시(國 是)가 되었다.

▶ 遠 멀 원. 交 사귈 교. 近 가까울 근. 攻 칠 공.

▶ [참조] 누란지위(累卵之危).

▶ [출전] 史記 范雎列傳

정치의 세계는 사방이 적이다, 먼곳의 적에게 미소를 보내고 가까운 곳에서는 비수를 들이댄다.

원문에 보면 '군사적인 목표가 지형상의 제약하에 놓여 있을 때는 가까이 있는 적을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며 먼곳에 있는 적을 공격하는 것은 여러모로 불리하다."고 되어 있다.

이런 이치처럼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혼란한 상황에서는 서로가 이합집산과 권모술수를 총동원하여 각자 최대한의 이익을 얻으려 한다.

이런 때일수록 먼 곳에 있는 적은 공격하지 말고 친교를 맺어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적은 멀리 있는 적과 달리 친교를 맺어서는 안된다. 자칫 가까이 하게 되면 자신의 심장부에서 변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의 세계에서는 정치의 뜻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친형제 사이라 할지라도 적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정치에 뜻을 두고 있지 않은 이웃이나 낯선 사람이 가까이 할 만한 상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