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보물

보물 제14호 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

오늘의 쉼터 2008. 1. 2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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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보물  제14호
명     칭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 (水原 彰聖寺址 眞覺國師塔碑)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경기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13-1
시     대고려시대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수원시

일반설명

진각국사의 행적을 알리는 탑비로 창성사터에 있다. 직사각형의 비받침 위에 비몸돌을 세운 다음 지붕돌을 올려놓았다. 비문을 새긴 비몸돌은 마멸이 심하고 오른쪽 모서리가 떨어져 나갔으며, 지붕돌은 경사면이 완만하다.

비문에는 진각국사가 13세에 입문한 뒤 여러 절을 다니며 수행하고 부석사(浮石寺)를 중수하는 등 소백산에서 76세에 입적하기까지의 행적이 실려있다. 입적한 다음 해인 우왕 12년(1386) 광교산 창성사 경내에 이 비가 세워졌다.

간략화된 고려 후기 석비의 형식을 보이고 있으며, 선봉사대각국사비(보물 제251호)와 신륵사보제존자석종비(보물 제229호), 신륵사대장각기비(보물 제230호) 등과 비교할 만 하다. 글씨는 고려 전기의 힘있는 풍모가 사라진 투박한 것으로, 고려 후기의 글씨가 퇴보하였음을 보여준다. 비문은 이색이 짓고 승려인 혜잠이 글씨를 새겼다.


전문설명


이 탑비(塔碑)는 장방형(長方形)의 대석(臺石) 상면(上面)에 비좌(碑座)를 마련하여 장방형 홈을 파고 비신(碑身)을 꽂았으며 그 위에 개석(蓋石)을 덮은 형식으로 되었다.

비좌는 별다른 조식이 없고 1단의 괴임뿐이며, 개석 하면(下面)에도 대칭으로 받침 1단을 두었다. 낙수면(落水面)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있다.

진각국사(眞覺國師)는 고려(高麗) 충렬왕(忠烈王) 33년(1307)에 출생하여 우왕(禑王) 11년(1385)에 75세로 입적(入寂)하였는데 이 탑비는 입적 다음해인 우왕 12년(1386)에 광교산(光敎山) 창성사(彰聖寺) 경내에 세워진 것이다.




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 정면

비신 상부의 제액

비신의 비문(부분)과 탈락 부분

탑비 및 보호각 전경

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

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 보호각

비각 전경1

비각 전경2

비각 전경3

비신

비신과 비좌

비신과 지붕돌

지붕돌

측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