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정사(億政寺)에 전해오는 비(碑)로, 고려의 승려인 대지국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직사각형의 비받침 위에, 비문을 새긴 몸돌이 올려진 단순한 형태로, 몸돌 윗쪽의 양 끝을 사선으로 잘라냈을 뿐 다른 꾸밈은 없다. 비몸돌의 네 면에는 해서체로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문에는 대지국사가 고려 충숙왕 15년(1328)에 태어나 14세에 출가하고 공양왕 2년(1390) 입적할 때까지의 행적을 기록하고, 대사의 인품과 학력을 기리는 내용이 실려 있다. 비문은 박의중이 짓고, 승려인 선진이 글씨를 썼으며, 혜공이 새겼다. 힘차고 굳센 필체로 짜임도 우수하다.
4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 비는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걸친 과도기적 작품으로, 조형상 별다른 특색이 없는 간략한 형식이다. 전문설명 고려말(高麗末) 고승(高僧) 대지국사(大智國師)의 비로서 조선(朝鮮) 태조(太祖) 2년(1393)에 건립(建立)되었다. 국사(國師)의 속성(俗姓)은 한씨(韓氏), 법명(法名)은 찬영(粲英)으로 고려(高麗) 충숙왕(忠肅王) 15년(1328)에 탄생하여 14세에 중흥사(重興寺)에 들어가 원증국사(圓證國師)에게서 5년 동안 수법(受法)한 후 충정왕(忠定王) 2년(1350) 구산선(九山選)의 상상과(上上科)에 급제하였고 32세 때부터 그가 입적(入寂)한 공양왕(恭讓王) 2년(1390)까지 고려왕실(高麗王室)을 가까이서 섬겼다. 국사가 입적한 후 4년째에 건립된 이 비는 여말(麗末)에서 조선초(朝鮮初)에 걸친 과도기의 작품으로 조형상 특색이 없는 매우 간략한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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