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에서부터 조선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편년체(編年體: 역사적 사실을 일어난 순서대로 기술하는 역사서술의 한 방식)로 기록한 책이다.
오대산사고는 1606년(선조 39) 경에 설치되었다. 임진왜란으로 전주사고본을 제외한 나머지 실록들이 모두 소실되자 조선정부는 1603년(선조 36) 7월부터 1606년 3월까지 전주사고본을 바탕으로 태조부터 명종까지의 실록 4부를 재간행했다. 그리고 강화·태백산·묘향산·오대산 등지에 사고를 새로 건축하여 서울의 춘추관사고와 함께 5곳의 사고에 실록을 보관하였다. 당시 실록을 재간행할 때 4부 중 3부는 정본(正本)으로 인쇄했지만, 전란 이후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나머지 1부는 정본 인쇄를 하지 못했다. 이에 조선정부는 최종 교정쇄본을 장정(裝幀)하여 정본을 대신하도록 했는데, 이 교정쇄본이 오대산사고에 보관되었다. 따라서 오대산사고본 실록 중 태조~명종실록은 교정쇄본이고 이후에 소장된 선조~철종실록은 정본이다.
오대산사고본 실록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경에 일제에 의해 동경제국대학 도서관에 기증하는 방식으로 반출되었고,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화재로 인해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화를 면한 오대산사고본 실록 중 27책이 1932년에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된 이후 서울대학교 규장각으로 이어졌다. 오대산사고본실록은 1973년 국보로 지정되었고, 이후 일본에 남아있던 오대산본 실록 47책이 2006년에 환수(2007. 2. 26 국보 추가지정)되어 기존 27책과 함께 현재 74책이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전문설명 오대산본(五臺山本)(27책(冊)). 산엽본(散葉本)(21책(冊)) : 태조(太祖)부터 명종(明宗)까지 실록(實錄)은 임란(壬亂) 평정후 선조(宣祖) 36년(1603) 7월부터 동왕(同王) 39년(1606) 3월 사이에 사사고실록(四史庫實錄) 중 유일한 현존본(現存本)인 전주사고본(全州史庫本)을 모본(母本)으로 하여 새로 인출(印出)할 때의 교정용(校正用)으로 쓰고, 그 이후는 간행되는 대로 『철종실록(哲宗實錄)』까지, 곧 선조(宣祖) 39년 이후 1910년 일제강점시(日帝强占時)까지의 것이 계속 오대산사고(五臺山史庫)에 봉안(奉安)되어 왔다.
이 오대산사고본(五臺山史庫本)은 일제강점후(日帝强占後) 일본(日本) 동경대학(東京大學)으로 반출 보관되어 오다가, 1923년 일본관동(日本關東) 대진재(大震災) 때 거의 대부분을 소실당하였는데, 그 잔여분(殘餘分) 중 30책(冊)은 동경대학(東京大學)에 그대로 존치(存置)되고, 그 나머지 27책(冊)만 1932년 5월 당시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으로 이관(移管)되어 현재 서울대학교(大學校) 규장각(奎章閣) 도서(圖書)에 보존되고 있다.
그 유래를 아직 밝힐 수 없는 실록(實錄)의 산엽본(散葉本)은 정종(定宗)부터 광해군(光海君)까지에 이르는 총(總) 558장의 낱장들로서, 오랫동안 규장각(奎章閣) 도서(圖書) 중에서 파지(破紙)로 존치(存置)되어 오다가, 1972년 6월에 서울대학교(大學校) 도서관(圖書館) 당국에 의해 21책(冊)의 책자(冊子)로 정리(整理) 장책(裝冊)되었다.오대산사고본실록은 1973년 국보로 지정되었고, 이후 일본에 남아있던 오대산본 실록 47책이 2006년에 환수(2007. 2. 26 국보 추가지정)되어 기존 27책과 함께 현재 74책이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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