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보

국보 제121호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安東 河回탈 및 屛山탈)

오늘의 쉼터 2008. 1. 26. 08:04



종    목 국보  제121호
명     칭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安東 河回탈 및 屛山탈)
분     류 유물 / 생활공예 / 목공예 / 가구류
수량/면적 13개
지 정 일 1964.03.30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국립중앙박물관 보관)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하회병산동민
관 리 자국립중앙박물관


일반설명

경상북도 안동군 하회마을과 그 이웃인 병산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탈로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탈놀이 가면이다.

하회탈로는 11개가 전해지는데 주지 2개, 각시, 중, 양반, 선비, 초랭이, 이매, 부네, 백정, 할미 탈이 있다. 병산탈은 총각, 별채, 떡다리 탈이 있었다고 하나 분실되어 현재 2개가 남아 있다.

한국의 가면은 대개 바가지나 종이로 만든 것이 많아서 오래 보존된 예가 드물며, 그 해 탈놀이가 끝난 후 태워버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하회탈과 병산탈은 드물게 보이는 목조탈이며, 격식과 세련됨을 갖춘 유물이다.

원래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거행되는 별신굿에 쓰이던 것이며, 마을마다 따로 가면들을 보존해 왔을 뿐만 아니라 탈에 대한 금기나 제약이 매우 엄격했다. 이 탈의 재료는 오리나무로서 그 위에 옻칠을 두겹 세겹으로 칠해 정교한 색을 내었다. 턱은 따로 조각되어 있어서, 아래턱을 노끈으로 달아 놀이할 때 말하는 것처럼 움직이게 함으로써 생동감을 주도록 만들었다. 하회 가면 중에서도 특히 양반과 백정은 입체감과 조각기술면에서 우수함이 돋보인다.

이 탈들의 제작자와 정확한 제작연대는 알 수 없으나 마을에는 허도령이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다만 하회마을에 살았던 사람에 대한 기록으로 허씨가 살았고, 안씨 집안이 들어온 후, 유씨가 조선 전기에 살았다고 기록이 되어 있어 대체로 고려 후기쯤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설명

 

안동군(安東郡) 풍천면(풍川面) 하회(河回)마을과 병산(屛山)마을에서 전승되어 오는 것으로서 현존하는 한국(韓國) 최고(最古)의 탈놀이 가면(假面)이다.

한국(韓國)의 가면(假面)은 대개 바가지나 종이로 만든 것이 많고, 따라서 오래 보존된 예가 드물며, 그해 탈놀이 끝난 후 태워 버리는 유습(遺習)까지 있었다. 그러나 이 하회(河回)탈과 병산(屛山)탈은 드물게 보이는 목조(木彫)라는 점과 또 탈놀이 가면으로서 드물게 보이는 격식과 세련을 보인 가장 고격(古格) 있는 유물이다.

원래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거행되는 별신(別神)굿놀이에 쓰이던 것이며, 부락에서는 따로 동사(洞舍)를 세워서 가면들을 보존해 왔을 뿐더러, 이 탈에 대한 금기나 제약이 매우 엄격했었다. 9종 외에 떡달이·별채·총각의 3종이 더 있었으나 일인(日人) 삼파선길(三波羨吉)이라는 자가 빼앗아 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가면들의 재료는 모두 오리나무이며, 원래 설채(設彩)했었고, 턱이 따로 조각되어 있어서 아래턱을 노끈으로 달아 놀이할 때 움직이게 함으로써 생동감을 주도록 되어 있다. 하회가면(河回假面) 중에서도 특히 양반과 백정은 세련된 입체감과 표현기교를 보여 주고 있다.

이 탈의 제작연대를 밝힐 자료는 현재 없다. 그리고 병산(屛山)탈 갑(甲)·을(乙) 2면(面)은 병산동(屛山洞)에서 전래되어 오던 옛 가면을 하회동(河回洞)에 옮겨서 함께 보존해 온 것으로서, 가면 이름도 짐작할 수 없었다. 다만 이것도 오리나무 조각이며, 하회(河回)탈과 함께 모두 대륙에서 전래된 민속신앙 가면의 양식을 남겨 준 것으로 간주된다.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