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종 양식을 보이는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거대한 범종으로, 높이1.44m, 입지름 0.87m, 무게 1.5톤이다.
종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 주는 용통이 있고,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두 발로 힘차게 몸을 들어 올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어깨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하고 있는데, 아래 위 서로 어긋나게 반원을 그리고 그 안에 꽃과 구슬무늬을 새긴 넓은 띠를 두르고 있다. 이 띠는 사각형 모양의 유곽과 한 면이 붙어 있다.
4곳의 유곽 안에는 9개의 돌출된 연꽃 모양의 유두가 있는데, 남아 있는 것은 1곳 뿐이다. 종의 몸체 앞뒤에는 비천상을, 좌우에는 삼존상(三尊像)을 두었고, 4곳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두었다. 비천상과 삼존상은 모두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모습으로 옷자락이 가볍게 날리고 있다. 종 입구 부분의 넓은 띠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하고 어깨띠와는 다르게 덩굴무늬를 두고 있어 이 종의 특징이 되고 있다.
종 몸체에 통일신라 문성왕 16년(854)에 조성된 것이라는 후대에 새긴 글이 있으나, 종의 형태와 문양이 그 시대와 일치되지 않아 학계에서는 고려 전기의 종으로 추정하고 있다. 용통에 약간 금이 가고 유두가 부서진 것 외에는 보존 상태가 좋으며, 조각한 수법이 뛰어나 고려 종의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전문설명 이 종은 고려시대(高麗時代) 초기(初期) 범종(梵鐘)으로서 우리나라 범종의 양식을 충실하게 갖춘 종(鐘)이다.
종의 정상(頂上) 는 신라종(新羅鐘)에서 보이는 음통(音筒)과 용뉴(龍유)를 갖추고, 종신(鐘身)에는 위아래의 문양대(紋樣帶)는 연주문(聯珠紋)과 여의두문(如意頭紋)으로 장식된 반원권(半圓圈)의 문양과 당초문(唐草紋)으로 조식(彫飾)되어 있고, 웃띠인 어깨띠에는 4개의 유곽내(乳廓內)에 각각 돌기된 9유(九乳)를 갖추고 있다.
종복(鐘腹)에는 네 군데에 연화문(蓮華紋)과 와문(渦文)으로 장식한 당좌(撞座)와 비천상(飛天像)을 배치하고 있는데, 비천상은 앞뒤에 배치하고, 좌우(左右)에는 두광(頭光)을 갖추고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삼존상(三尊像)을 배치 조식하고있어, 고려시대 다른 종과는 특이한 배치방법(配置方法)을 하고 있다. 특히 당좌(撞座)는 8개의 연꽃잎을 중심(中心)으로 와문(渦紋)을 연속시켜 원형(圓形)을 이루었다.
아래띠인 구연대(口緣帶)는 웃띠와 달리 위아래 연주문 안에 보상당초문(寶相唐草紋)이 장식되어 있는 점이 주목된다. 종신에 음각(陰刻)으로 새긴 명문은 주조 당시부터의 것이 아니고, 후대(後代)에 새겨넣은 것이다.
전체적인 종의 형식(形式)과 양식(樣式)으로 보아 고려초기(高麗初期)의 범종으로는 중요한 것 중의 하나다. 높이 144cm, 입지름 87cm.
용주사 동종 용주사 동종 용주사 동종 용주사 동종 용주사 동종 용주사 동종 용주사 동종 용주사 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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