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의 대적광전에 모셔진 철로 만든 불상으로, 현재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를 잃고 불신(佛身)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불상의 왼팔 뒷면에 신라 헌안왕 2년(858) 무주장사(지금의 광주와 장흥)의 부관이었던 김수종이 시주하여 불상을 만들었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어서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달걀형의 얼굴에는 약간 살이 올라 있다. 오똑한 콧날, 굳게 다문 입 등에서 약간의 위엄을 느낄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다소 추상화된 모습이다.
팽창된 체구와 가슴의 표현 등은 당당해 보이면서도 긴장감과 탄력성이 줄어 들었고, 몸에 비해 지나치게 작은 손과 넓은 무릎은 불상의 전체적인 균형을 흐트러뜨리고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가슴 앞에서 U자형으로 모아지며, 다시 두 팔에 걸쳐 무릎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옷주름은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지만 탄력을 잃은 모습이다. 이런 형태의 표현은 신라 불상에서 보여주던 이상적인 조형감각이 후퇴하고 도식화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9세기 후반 불상 양식의 대표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손은 왼손의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일반적인 손모양이다.
이 작품은 만든 연대가 확실하여 당시 유사한 비로자나불상의 계보를 확인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신라말부터 고려초에 걸쳐 유행한 철로 만든 불상의 첫번째 예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전문설명 이 불좌상은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잃었으나 신라(新羅) 하대(下代)에 유행하던 철로 만든 불상의 특징을 알 수 있게 하는 대표적인 불상이다.
탄력이 감소되고 느슨해진 신체의 윤곽선과 몸 전체를 두텁게 감싸고 있는 법의(法衣)의 느슨하면서 얇게 빚은 듯한 옷주름(평행밀집계단식(平行密集階段式) 의문(衣文)) 등에서 9세기 후반기 불상양식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왼쪽 팔 뒤의 명문(銘文)에 의하면 신라(新羅) 헌안왕(憲安王) 때 무주장사(武州長沙)(현 광주(光州)·장흥(長興))의 부관(副官)이었던 김수종(金遂宗)이 헌납하여 헌안왕 2년(858)부터 1년간에 걸쳐 완성된 것으로, 시주자(施主者)인 김수종이 불상을 헌납한 장선사(莊禪寺)는 바로 선종9산문(禪宗九山門)의 하나인 보림사문파(寶林寺門派)를 연 보조선사(普照禪師)이므로 이 불상은 선사상(禪思想)과 화엄사상(華嚴思想)의 융합에 의하여 만들어진 비로자나불상임을 알 수 있고, 이후 크게 유행하는 비로자나불상의 시조격이 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헌안왕 3년(859)에 불상이 완성되었다는 불상조성 절대연대를 알 수 있어서 불상편년연구(佛像編年硏究)에 귀중한 자료가 되며, 9세기 후반기 철불 유형의 확실한 첫 예이자 새로운 양식의 선구적인 걸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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