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조 6년(1397) 10월에 공신도감(功臣都監)에서 왕의 명령을 받아 심지백(沈之伯)에게 내린 문서로, 공신임을 입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크기는 가로 140㎝, 세로 30.5㎝이며, 원래는 함경남도 단천군 파도면 심씨 집안에서 물려 내려오던 것이다.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 제도는 조선시대에 개국공신을 늘리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새로운 포상제도로, 1392년부터 1397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1,400여 명에게 봉해졌다. 심지백이 녹권을 받을 때에도 74명이 함께 받았는데, 이때 그들에게 내린 포상으로는 각기 밭 15결(結)을 내렸고, 각 공신의 부모와 처에게는 땅을 주고 벼슬을 내렸으며, 자손에게는 벼슬을 주었다. 이러한 사실은 실록에도 빠져있어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문서에 의하여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
이 문서는 조선 전기의 문서로 이두문(吏讀文)이 많이 사용되어 그 문체와 내용이 귀중한 역사적 자료가 되며, 목활자를 이용하여 찍어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성이 엿보인다. 또한 조선 전기의 목활자 인쇄물로서 상태가 완전하고 남한에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는 이 문서가 으뜸으로 손꼽혀지는데, 두루마리로 되어있는 점에서도 조선 전기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글자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글자배열이 고르지 않는 등 인쇄가 정교하지는 않으나, 현존하는 목활자 인쇄물이라는 점에서 한국 활자 역사상 매우 귀중한 인쇄자료가 된다.
전문설명
이 녹권(錄券)은 홍무(洪武) 30년, 곧 조선(朝鮮) 태조(太祖) 6년(1397) 10월에 공신도감(功臣都監)에서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 사재부령(司宰副令) 심지백(沈之伯)에게 내린 것이다. 심지백(沈之伯)은 홍무(洪武) 28년 11월에 전 황주(黃州) 목사(牧使) 최계용(崔系溶) 등 수십 명과 더불어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열(列)하였으며, 홍무(洪武) 30년 9월 11일에 왕지(王旨)에 의하여 이 녹권(錄券)을 사급(賜給)하여, 대장군(大將軍) 이화영(李和英)의 예(例)에 따라서 포상(褒賞)의 전(典)을 사(賜)한 것이다. 이 사실은 실록(實錄)에도 누락되어 소전(所傳)이 없으나, 이 녹권(錄券)에 의하여 비로소 알려졌다. 심지백(沈之伯)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확실치 않으나, 아마 함경도(咸鏡道) 사람으로 일찍이 이성계(李成桂)를 따라 공을 세웠던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이 녹권(錄券)에 심지백(沈之伯)의 본관(本貫)을 청송(靑松)이라고 하였으나, 그것은 후에 개찬(改竄)한 자취가 보인다. 이것은 조선(朝鮮) 초기의 고문서(古文書)로서 이두문(吏讀文)이 많이 사용되어 그 문제와 내용이 귀중한 사료가 될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사실은 목활자(木活字)를 사용하여 인출(印出)해 낸 점에 있다. 조선(朝鮮) 태조(太祖)가 새로운 왕조(王朝)를 수립하자 관제를 제정하였는데, 그것은 대체로 고려(高麗)의 구제(舊制)를 답습하였다. 따라서 경적인출(經籍印出)의 일을 관장하는 관아(官衙)의 직제에 있어서도 여말(麗末) 서적원(書籍院)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주자인쇄(鑄字印刷)의 업무를 관장하는 영(令)과 승(丞)의 직도 그대로 두게 하였다. 그러나 신왕조(新王朝)의 기반이 아직 잡히지 않아 태종(太宗) 3년(1403)에 계미동활자(癸未銅活字)를 주조해 내기까지에는 목활자(木活字)와 목판(木板)으로 긴요한 것을 우선 찍어서 수요를 충당하였던 것이다. 초기의 목활자본(木活字本)으로서는 태조(太祖) 4년(1395)에 서적원(書籍院)에서 백주지사(白州知事) 서찬(徐贊)이 만든 목활자(木活字)로 인출반행(印出頒行)한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 100여 권이 있으나 실물이 전하지 않고, 태조(太祖) 6년(1397)에 인출반사(印出頒賜)한 이 녹권(錄券)만이 겨우 하나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자체(字體)가 균정(均整)하지 못하고 크기가 일정하지 않으며 배자(排字)가 고르지 못하고, 도각(刀刻)도 조촐한 편으로 목리(木理)가 보이나, 연대적으로 가장 오랜 목활자본(木活字本) 실물이라는 점에서 한국(韓國) 활자사상(活字史上) 매우 귀중한 인쇄자료(印刷資料)가 된다.
주자인쇄술(鑄字印刷術)이 발달된 이후의 조선(朝鮮) 공신록권(功臣錄券)은 활인방책(活印方冊)으로 만드는 것이 상례이나, 이것은 두루마리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또한 조선(朝鮮) 초기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심지백 개국원종공신록권 심지백 개국원종공신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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