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보물

보물 (제2177호) 영천 인종대왕 태실

오늘의 쉼터 2023. 4. 16. 10:10

 

종    목 보물 (제2177호)
명    칭 영천 인종대왕 태실 (永川 仁宗大王 胎室)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조선시대
수량/면적 2기(태실1, 비1)
지 정 일 2022.08.26
소 재 지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산 24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국유 
관 리 자 영천시 
문화재설명

「영천 인종대왕 태실」은 조선 왕실이 태를 봉송(奉送)하여 태실에 봉안하는 의례에 따라 1521년(中宗 16)에 처음 설치되었다. 이후 인종이 즉위하면서 1546년(明宗 1)에 가봉(加封)공사가 완료되었으며, 1680년(肅宗 6)에 개수되었고, 1711년(肅宗 37) 태실비에 대한 재건이 이루어졌다. 이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하여 전국에 소재한 54개소의 태실에서 태항아리와 태지석 등을 서삼릉으로 이안하고 석물을 폐기하면서, 영천 인종대왕 태실의 태항아리도 1928년 서삼릉으로 이안되었다. 이후 영천 인종대왕 태실은 방치되었다가 1960∼70년대 매몰된 석재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1999년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이후 2007년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정비되었으며, 현재는 태실 1기, 비 1기 및 기타 석물로 이루어져 있다.

「영천 인종대왕 태실」은 위에서 볼 때 8각형의 평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변에 난간석을 두고 중앙에 태가 안치된 승탑(僧塔)형태의 중동석(中童石)이 놓여 있다. 중동석은 연화문(蓮花紋)으로 장식된 네모난 큰 돌 위에 놓여 있으며, 중동석 위에는 두툼한 처마를 지닌 옥개석 형태의 개첨석(蓋檐石)을 얹었다. 개첨석 위에는 연주문(蓮珠紋)이 2단으로 장식된 보주(寶珠)를 올렸다. 중동석 주변으로는 여러 매의 방사형(放射形) 석재를 놓아 8각형의 평면을 구성하고, 바깥 주변으로 석조 난간을 둘렀다. 전면에 위치한 가봉비(加封碑)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인 귀부(龜趺), 비신(碑身) 그리고 이수(螭首)로 이루어져 있다. 비신의 앞면에는 ‘仁宗大王胎室’, 후면에는 ‘嘉靖二十五年五月日建’(1546년)이라고 새겨져 있어, 태실의 주인과 태실비의 건립 시기를 알 수 있다.

「영천 인종대왕 태실」은 설치 과정과 내력을 알 수 있는 관련 기록이 비교적 자세하게 전해지고 있으며, 전체적인 조영기법과 구조 등은 조선왕실의 태실 의궤의 내용에 부합된다. 또한 태실과 태실비의 전체적인 조영기법이 우수하며, 태실을 구성하는 석물의 세부 치석이나 장식기법이 정연하고, 문양과 조각 기법이 우수하여,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기술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된다.

「영천 인종대왕 태실」은 처음 설치된 이후 원 위치를 유지하고 있으며, 전체적인 구성과 입지 등은 원래의 조영 의도와 가치를 보존하고 있다. 또한 태(胎)를 안치하는 당대의 문화적 전통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현존하는 조선왕실의 태실 가운데 규모가 크고, 문화유산으로서 지녀야할 보편적 가치와 함께, 완전성과 진정성도 구비하고 있어,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될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영천 인종대왕 태실 전경
영천 인종대왕 태실 후경
영천 인종대왕 태실 원경 1
영천 인종대왕 태실 원경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