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569호) 제2로 직봉 - 용인 석성산 봉수 유적

오늘의 쉼터 2023. 4. 8. 16:58
종 목
사적 (제569호)
명 칭
제2로 직봉 - 용인 석성산 봉수 유적 (第2路 直烽 – 龍仁 石城山 烽燧 遺蹟)
분 류
유적건조물 / 교통통신 / 통신 / 봉수
수량/면적
▲지정구역 2필지(1,393㎡) ▲보호구역 2필지(5,941㎡)
지 정 일
2023.01.10
소 재 지
경기도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산림청
관 리 자
용인시
문화재설명
봉수는 외적의 침입 등 급한 소식을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도성인 한양에 전했던 군사·통신시설이다.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에 있는 석성산 봉수는 1423년(세종 5년) 설치된 5개의 봉수 노선 중 부산 다대포에서 지금의 남산인 한양 목멱산까지 연결되는 제2로 직봉 노선 중 42번째 내지봉수(내륙에 설치한 봉수)다.
석성산 봉수는 건지산 봉수(처인구 원삼면)의 신호를 받아 성남 천림산 봉수로 연결하는 주요 봉수로에 있는 것으로 확인돼 그 역사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석성산 봉수는 18세기 축조된 수원 화성의 봉돈과도 연결돼 있어 수원 화성 축성 이후에 봉수 체계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연구에도 보탬이 될 중요한 사적이다. 이런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20년에는 경기도 기념물 제227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조선 최후기 봉수망을 알 수 있는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1908)에 제2거 직봉은 부산 다대포진 응봉봉수에서 초기하는 노선으로 총 44기가 있다. 2로 직봉 유적의 제2거는 직봉과 10개소의 간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백산맥의 주요한 영로(嶺路)를 넘는 노선이 모두 봉수로(烽燧路)가 되었으며, 가장 동쪽의 죽령(竹嶺)을 넘는 노선이 직봉(直烽)이 되고, 중앙의 통로인 계립령(鷄立嶺)을 넘는 노선과 보다 서쪽의 추풍령(秋風嶺)을 넘는 노선이 주요 간봉(間烽)이었다. 따라서 제2거 노선의 경우 직봉과 간봉은 그 중요성에 있어서 구분의 여지가 적었으며, 동남쪽 해안지역에서 최대한 빨리 경보를 서울 한양(漢陽) 도성(都城)으로 연락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제2로는 직봉 외에 전체 5거의 노선 중 가장 많은 10개소의 간봉을 두었다. 이는 제2거 노선이 영덕 광산봉수(廣山烽燧)를 북방 한계선으로 하고, 남해 설흘산봉수(雪屹山烽燧)를 남방 한계선으로 하는 동해안과 경남 남해안의 긴 해안선을 감시·조망해야 했기 때문이다.
제2로 각 노선의 봉수가 초기(初起)하거나 소재하였던 곳은 영덕·포항·울산·부산·창원·진해·마산·거제·고성·통영·사천·남해 등 경상도의 동·남해 연안이다. 이들 지역에는 연변봉수(沿邊烽燧)와 권설봉수(權設烽燧)가 혼재하고 있다. 그리고, 문헌기록이 없으며 초축시기와 운용상황이 불분명한 요망(瞭望)·망대(望臺)도 일부 확인되고 있다.
용인 석성산 봉수 유적
용인 석성산 봉수 유적
용인 석성산 봉수 유적
용인 석성산 봉수 유적
용인 석성산 봉수 유적
용인 석성산 봉수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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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석성산 봉수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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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석성산 봉수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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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석성산 봉수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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