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568호) 제2로 직봉 - 성남 천림산 봉수 유적

오늘의 쉼터 2023. 4. 8. 12:35
종 목
사적 (제568호)
명 칭
제2로 직봉 - 성남 천림산 봉수 유적 (第2路 直烽 – 城南 天臨山 烽燧 遺蹟)
분 류
유적건조물 / 교통통신 / 통신 / 봉수
수량/면적
▲지정구역 3필지(1,064㎡) ▲보호구역 6필지(7,955㎡)
지 정 일
2023.01.10
소 재 지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산 35-5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성남시
관 리 자
성남시
문화재설명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달이내고개에 있다. 이곳은 청계산의 주봉인 망경대와 국사봉 사이에 동북쪽으로 뻗은 능선의 해발 170m 지점이다. 해발 고도는 높지는 않지만, 북쪽과 남쪽으로 멀리까지 바라다 보인다.
봉수는 조선 시대의 중요한 군사 통신수단이었다. 전국 각지로부터의 정보를 전달받기 위해 5개의 노선이 설치되어 있었다. 천림산 봉수는 부산 동래 다대포진 응봉에서 출발하는 제2로에 속한다. 용인 석성산 봉수에서 신호를 받아 최종 전달지인 서울 남산봉수로 신호를 전달했다. 봉수의 신호는 맨눈으로 관측되어야 하므로 봉수와 봉수의 거리는 대략 16km(40리) 정도를 유지했다. 봉수에는 5명의 봉수군이 6일씩 번을 서며 낮에는 연기를 피우고 밤에는 불꽃을 피워 봉수를 관리했다. 평상시에는 1거, 적이 관측되면 2거, 접전이 벌어지면 5거 등 국경지역의 전황에 따라 숫자를 달리했다. 남해안에서 봉수를 통해 도성까지 정보를 전달하는데 6일 정도가 소요되었다고 한다.
천림산 봉수는 670여 개에 달했던 조선시대 봉수 중 원형이 잘 남아있는 편이다. 거화시설인 5개의 연조는 사각형으로 기초를 쌓고 그 위에 원형으로 돌을 쌓아 올려 불꽃이나 연기가 높이 올라가도록 했다. 천림산 봉수지에서는 화재를 방지하고 연조를 보호했던 방호벽과 봉수군의 숙소 그리고 창고건물 등도 확인되었다.
조선 최후기 봉수망을 알 수 있는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1908)에 제2거 직봉은 부산 다대포진 응봉봉수에서 초기하는 노선으로 총 44기가 있다. 2로 직봉 유적의 제2거는 직봉과 10개소의 간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백산맥의 주요한 영로(嶺路)를 넘는 노선이 모두 봉수로(烽燧路)가 되었으며, 가장 동쪽의 죽령(竹嶺)을 넘는 노선이 직봉(直烽)이 되고, 중앙의 통로인 계립령(鷄立嶺)을 넘는 노선과 보다 서쪽의 추풍령(秋風嶺)을 넘는 노선이 주요 간봉(間烽)이었다. 따라서 제2거 노선의 경우 직봉과 간봉은 그 중요성에 있어서 구분의 여지가 적었으며, 동남쪽 해안지역에서 최대한 빨리 경보를 서울 한양(漢陽) 도성(都城)으로 연락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 제2로는 직봉 외에 전체 5거의 노선 중 가장 많은 10개소의 간봉을 두었다. 이는 제2거 노선이 영덕 광산봉수(廣山烽燧)를 북방 한계선으로 하고, 남해 설흘산봉수(雪屹山烽燧)를 남방 한계선으로 하는 동해안과 경남 남해안의 긴 해안선을 감시·조망해야 했기 때문이다.
○ 제2로 각 노선의 봉수가 초기(初起)하거나 소재하였던 곳은 영덕·포항·울산·부산·창원·진해·마산·거제·고성·통영·사천·남해 등 경상도의 동·남해 연안이다. 이들 지역에는 연변봉수(沿邊烽燧)와 권설봉수(權設烽燧)가 혼재하고 있다. 그리고, 문헌기록이 없으며 초축시기와 운용상황이 불분명한 요망(瞭望)·망대(望臺)도 일부 확인되고 있다.
성남 천림산 봉수 유적지
 

성남 천림산 봉수 유적 발굴

성남 천림산 봉수 유적 복원
성남 천림산 봉수 유적
성남 천림산 봉수 유적
성남 천림산 봉수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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