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을 멸망시키려던 고구리의 민족반역자들
<삼국사기> 신대왕 장남 발기에 대한 기록은 명백한 오류
우리 역사상 가장 악질 민족반역자를 꼽으라면 단연 고구리 연개소문의 아들 연남생(淵男生)을 들 수 있다. 그 죄질은 대한제국의 매국노 이완용보다 훨씬 큰 매국적 민족반역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연개소문의 뒤를 이어 고구리의 대막리지가 된 남생이 도성을 비운 사이 동생 남건과 남산이 정변을 일으켜 도성을 장악하고는 형인 남생을 죽이려하자, 갈 곳이 없어진데다가 생명의 위협마저 느낀 남생은 아들 헌충을 당나라로 보내 망명을 신청한다. 게다가 조국을 칠 군사를 요청하고는 그 선봉에 서서 고구리로 쳐들어와 멸망시킨 인물이다.
고구리에 그러한 연남생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민족반역자가 있었으니 그 이름이 발기(發岐)이다. 발기는 행촌 이암 선생이 쓴 <단군세기>의 서문에 “아아! 슬프도다. 얼마 전에는 잠(潛)·청(淸)과 같은 무리들의 못된 의견이 몰래 수많은 귀신들처럼 어두운 세상을 뒤덮었다. 남생이나 발기 따위들과 같은 반역하는 마음으로 서로 만나 합쳐진 것이다.”라고 언급되는 천하의 역적이기도 하다.
참고로 위에 언급된 잠·청은 고려 때 간신 오잠(吳潛)과 유청신(柳淸臣)을 말하는 것이다. 오잠은 충렬왕·충선왕 부자를 모함해 이간시켰고, 어진 신하들을 모함하고 살해해 많은 원망을 산 인물이다. 그는 유청신과 함께 심양왕 고(暠)를 고려의 왕으로 올리려는 반역을 저질렀으며, 원나라 황제에게 고려에 행성을 설치해 고려라는 국호를 폐하고 원나라의 직속령으로 할 것을 주청한 만고의 역적들이다.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고구리에는 민족반역자 발기가 두 명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 명은 신대왕의 장자로 고국천왕의 형인 발기(拔奇)이고, 다른 한 명은 고국천왕의 바로 아랫동생인 발기(發岐)이다. 두 명의 발기에 대한 <삼국사기>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① “고국천왕의 이름은 남무 혹은 이이모(伊夷謨)라고도 하며, 신대왕 백고의 둘째 아들이다. (백고가 죽자 나라사람들이 왕의 맏아들 발기(拔奇)가 불초하다는 이유로 이이모를 왕으로 세웠다. 한나라 헌제 건안 초 발기가 형임에도 불구하고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원망하여 소노가와 함께 각각 민호 3만여 명을 거느리고 요동태수 공손강(公孫康)에게 가서 항복한 후 비류수가로 돌아와 살았다)” 참고로 ( )는 <삼국지 위서>를 인용해 기록한 것이다.
②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국천왕이 후사 없이 죽자 동생 연우(산상왕)가 뒤를 이어 즉위한다. 그러자 고국천왕의 바로 아래동생이며 산상왕의 형인 발기(發岐)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호응하는 자가 없자 처자들을 데리고 도주해 요동태수 공손도(公孫度)에게 투항하면서 군사 3만 명을 빌려달라고 청해 승낙을 받아 고구리로 쳐들어온다.
산상왕은 아우 계수(罽須)에게 군사를 주어 막게 하니 한나라 군사가 대패했다. 형 발기를 만난 계수가 “형님이 일시의 분한 생각을 못 이겨 나라를 멸망시키려함은 무슨 뜻인가? 죽은 후에 무슨 면목으로 선조들을 대하려는가?"라고 말하자 발기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움을 이길 수 없어 배천으로 도주해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위 <삼국사기>의 두 기록을 종합하면 신대왕에게는 모두 다섯 명의 아들이 있었다. 첫째아들이 발기(拔奇)이고, 둘째아들이 고국천왕(남무/이이모)이고, 셋째아들이 발기(發岐)이고, 넷째아들이 산상왕(연우)이고, 다섯째 아들이 계수(罽須)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대왕의 둘째아들 고국천왕이 태왕위에 오르자 왕위계승에 실패한 장자 발기(拔奇)가 3만 명을 데리고 요동태수 공손강에게 투항하고는 되돌아와 비류수가에서 살고, 고국천왕이 붕어하고 신대왕의 넷째아들인 산상왕(연우)이 태왕위에 오르자 셋째아들 발기(發岐)가 한나라 요동태수 공손도에게 3만 명의 병력을 빌려 조국 고구리로 쳐들어왔다는 말인데, 참으로 믿기 어려운 뭔가 이상한 기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3만 명을 데리고 한나라에 투항한 발기가 그냥 되돌아와 고구리에서 비류수가에 살았다는 것도 그렇고, 당시 한나라 요동태수가 공손강(公孫康)이었는지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신대왕 밑에 발기라는 이름을 가진 아들이 과연 두 명이나 있었을까 하는 강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
결론을 내리자면 <삼국사기>의 발기(拔奇)에 관한 기록은 중국의 <삼국지 위서30 오환·선비·동이·왜전 제30>의 기록을 인용한 것으로, 이는 고구리의 정치상황을 정확하게 모르는 중국에서 대충 적은 기록을 김부식이 아무런 검토 없이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삼국지 위서>에는 이이모(고국천왕)가 죽은 이후 발기(發岐)라는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음에도 말이다.
<중국 백과사전>에서의 산상왕에 대한 설명을 보면 “산상왕은 고구려 제10대 군왕으로 이름이 연우이다. 연우는 사서 중에 이이모로 칭하기도 한다. (일설에는 고국천왕의 이름이 이이모다) 이이모와 연우는 동음이독이다. 고국천왕이 아들이 없었기에 산상왕은 왕위계승과 어우러져 큰 형 고국천왕의 부인인 우씨를 왕후로 삼았다.”라고 하여 이이모를 산상왕으로 보는 반면 <삼국사기>에서는 고국천왕의 이름을 이이모라고 한다. 과연 어느 기록이 옳을까?
(원문) 山上王(?-227年,在位时间:197年-227年)高句丽第10任君王,名延優,延优史书中又称为伊夷模(一说故国川王名伊夷模),伊夷模、延优是同音异读。由于故国川王无子,而继承王位并娶兄长故国川王的妻子于氏为王后。
우선 <삼국사기>가 인용한 <삼국지 위서>에 기록된 발기(拔奇)가 찾아간 요동태수 공손강(公孫康)에 관한 기록은 명백한 오류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고국천왕이 즉위한 해가 179년으로 후한의 12대 영왕의 광화(光和) 2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삼국사기>는 “한나라 헌제 건안 초 발기(拔奇)가 형임에도 불구하고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원망하여 요동태수 공손강(公孫康)에게 항복했다.”라고 기록했다.
헌제의 건안 원년은 196년이고, 고구리 산상왕이 즉위한 해가 197년이다. 따라서 <삼국지 위서>의 발기(拔奇)에 대한 기록은 명백한 오류이고, 그 기록은 고국천왕의 즉위 때가 아닌 산상왕 즉위 때에 발생한 발기(發岐)에 관한 기록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다보니 <중국백과사전>에서 이이모를 고국천왕이 아니 산상왕의 이름으로 잘못 본 것이다.
이번에는 <중국백과사전>으로 한나라 요동태수 공손도와 공손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번역) 공손도(150~204) 원래 요동 양평인으로 어릴 때 아버지를 현토군으로 옮겨 살다가 스스로 요동후와 평주목이 되어 스스로 요동 왕으로 살았다. 204년 공손도에게 적자가 없자 서출인 공손강이 그 자리를 계승했다. 221년 공손강이 병사하자 그 아들들이 어려 동생인 공손공이 계승했다.
(원문) 公孙度(150~204)辽东襄平人。少随父迁居玄菟郡。公孙度自立为辽东侯、平州牧。俨然以辽东王自居。公孙度没有嫡子,继位的是庶出的公孙康。公孙康于曹魏文帝黄初二年(公元221年)病死之后,其子公孙晃、公孙渊年纪还小。于是由弟弟公孙恭继任。
위 연혁에서 보듯이 공손강은 204년 자칭 요동태수인 아버지 공손도가 사망한 후 그 직을 계승했으므로, 고국천왕 즉위 당시 <삼국지 위서>를 인용한 <삼국사기>의 발기(拔奇)에 대한 179년의 기록은 명백한 오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백과사전>에서 언급한 이이모가 산상왕의 이름이라는 설명 역시 오류인 것이다.
고국천왕의 즉위에 대해 <고구리사초·략>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신대제 11년(175) 을묘 3월 임금께서 장자인 현(玄) 태자가 선하기는 하나 선(仙)을 좋아하기에, 차자인 남무 태자를 정윤(계승자)으로 삼으려 했다. 남무는 ‘형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고 말하고는 전국을 두루두루 살피며 제나에 이르러 오래도록 머물렀다. 이에 현태자가 찾아가 ‘예로부터 현명한 자가 뒤를 잇는 것이 옳다’라고 말하고는 해산으로 선을 즐기러 떠나가자 남무가 돌아왔다. 이듬해 3월 남무를 정윤으로 삼았다.”
즉 고국천왕의 형은 발기(拔奇)와는 전혀 다른 인물인 현(玄)태자였던 것이다. 따라서 <삼국사기>의 발기(拔奇) 관한 기록은 분명한 오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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