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장승 열반축봉문[阿丈僧涅槃築封文]
아장승 축봉문의 내용적인 가치는 다음과 같다.
1. 고구려에 240년대에 출생한 아장승이 고구려에서 불법을 전파하여 고구려 불교의 조사로 추앙되었고
2. 소수림왕 6년인 376년이 고구려 연호인 태녕 3년으로 기록되었고,
3. 소수림왕 6년에 중국 승 도안이 입국하여 설법을 하였고
4. 도안은 고구려에서 범어 불경을 한자로 번역하였고
5. 아장승이 신라와 백제에 포교하여서 371년경에 강화도 전등사(당시 진종사)를 창건한 것이
전등사의 전설이 아니라 사실로 판명됨.
1. 축봉문 해석
3부터 ~12까지, 10장의 글은 그 순서가 흐트러져 있어 그 바른 순서를 알 수 없는데,
필자가 뜻이 통하도록 임의로 연결하였습니다.
3은 나머지 9장이 1행9자체인데 비하여 홀로 1행8자체이므로 앞으로 냈습니다.
5장3행7째자(戶+七七)은 扉와 같은 것으로 추정하고, 9장5행9째자(艹 + 疋)는 從-彳)으로 봅이다.
11장5행9째는 (邪+心)인데 邪와 같은 자로 고려합니다.
驗, 罗 등이 간체자일 수 있습니다.
◇. 函蓋部 (함뚜껑)
晉 太元丙子 七年 동진 태원병자(376년) 7년(382년)
國甄內城 肖門寺 국견내성의 초문사(=절이름)
十方金輪廣善 唪 시방금륜광선봉선하고
禪 冊東罡宮禮司 동강궁(=절이름) 예사를 임명받은
阿丈僧 涅槃築封 아장승이 열반하여 봉축함
1.
廣善金輪 광선 금륜 아장승은
2.
國之聖物 국가의 성인이다
3.
眞佛祖 創東國聖穴。 진불조(아장승의 경칭)가 동국에 성혈을 열고
納五部衆生 廣轉佛。 고구려 오부의 중생을 끌어안아 불법을 전하고
視經文。 불경을 가르쳤다.
天下萬物 存其生。 천하만물 생명의 태어남이 다 존귀하니
無離造。 모든 생명이 차별이 없다고 하시고,
存世誠。 세상만사에 정성을 다하여 살라고 가르쳤으니
造定衆生 存誠 讀經。 (아장승은) 중생들이 정성을 다하여存誠
불경을 읽도록 만들었다.
4.
太寧三年 國佛法盛 376년(소수림왕 6년, 고구려 태녕 3년) 나라에 불법이 성하여,
崇佛聚衆 弘道。 부처를 숭배하는 중생들을 모아 불도를 크게 펼쳐 가는데
問阿丈道 (소수림왕이) 아장도에게 불리의 대가深理重가 누구인지 묻고,
深理重之 請耳。則信奉 초빙하도록 하니 (아장도는) 즉시로 왕명을 받들어서
擧 爲法師 經律論 皆称。 경,률,론에 정통했다는 법사를 찾아갔다.
道安 東渡峴峽 拜參王 도안道安이 동쪽으로 산길을 넘어와 소수림왕을 배알했다.
5.
王聞其榮 出都迎之。 왕이 그 영광스런 소식을 듣고, 도성밖으로 마중나와서,
封爲 高句麗國 太丈法師。 고구려국 태장법사로 봉하고,
二寺 持。 두 절을 주지하게 하였다.
宮東大扉 日誦千偈 궁성 동쪽 대비에서 (도안이) 하루에 천게(千偈)를 외우니,
凡二萬六千言 通意。 대략 26000자인데 스스로 뜻을 깨우친다.
王曰供奉 則說佛道。 왕이 공봉하여 대하니 (도안이) 불도를 가르쳤다.
6.
漢秦曰 中天也。 진秦나라(351-)를 중천이라 하므로,
故輩人 曰 佛東來也。 불교를 따르는 이들은 부처가 동방으로 왔다고 하였다.
方爲大顯 이 나라方에 큰 일을 하러
非凡人也。 비범한 분이 오셨다고도 하였다.
慾世太平。 세상을 태평하게 하고
心善與佛法也。 불법을 펴고
明矣冊法。 불경책의 뜻을 밝히러 오셨다고 하였다.
義三空 融二諦 永無相 삼공三空과 이제二諦, 무상無相을 가르쳤다.
7.
儀咏貴偈頌。 영귀계송咏貴偈頌의 의례를 가르쳤다.
大殊別築 왕大殊은 따로 (궁내에) 왕사를 지어서
寺舍 弘大法淨世之耶。 불법을 크게 하고 세상을 맑게 하였다.
何不言之 義圓滿。 그러니 궁극적인 원만圓滿의 도까지 가르치지 않을 수 없다
故國 佛者多。 그리하여 고구려에 불자가 많아지니
道安譯冊 復宣。 도안은 책을 번역하여 다시 펴내서,
國人漸通。 고구려인들이 더욱 불도에 통하고,
多人知[理佛] 많은 사람들이 [이불]과
8.
[經論][洞其秘奧]。 [경론] 과 [동기비오]를 알게 하고,
言之眞 佛何現 王喜。 (도안은) 진불이어떻게 실현될지를 가르쳐서 왕을 기쁘게 하였다.
道安 涉諸 邑傳之。 도안은 (고구려 전국의) 여러 읍을 다니며불법을 전하였고,
衆跪座側。 중생들이 무릎 꿇고 들었는데
言無 不驗 光始異之。 말씀마다 영험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머리에 광채가 나는 기적이 있었다.
圓道示 因果之理。 완전한 도圓道로서 인과의 원리를 가르쳤다.
王贊德。王立 왕이 도안의 덕을 칭찬하였다. 소수림왕이
9.
創佛地 築內城 肖門寺。 불지를 새로 만들어 내성에 초문사를 짓고
傳經佛法 善護後世衆生。 불경과 불법을 모든 후세 중생에 전하도록 하여
至取正果 마침내 정과正果를 얻었다.
入無主民。 (임금이) 백성을 주재하지 않는 무주민의 경지에 들었으니
可入 無佛門。 (왕은) 불문이 없는 무불문의 경지에 이르렀다.
績經文。 불경을 만들어 펴내는 공적을 쌓으며
取 聖滅惡 念世 성인의 행적을 따르고 악을 멸하고 오로지 세상을 위하여
沮度救苁。 멸도(滅度,沮=滅 同意)하고 무리從들을 구하였다.
10.
經論中百。 중, 백 이론까지 가르치고
還國往漢王。 (도안이) 중국으로 돌아가서 한왕을 만났는데,
以應可 與國東立神穴 동국 고구려에 (부처님의) 신혈을 세웠으므로,
登三果。 삼과三果에 오른 것으로 인정되었다.
道安 大闡 震旦說之。 도안이 진단(중국)에 불법을 펼치며 말하기를
東土高句麗 王民 동쪽나라 고구려 왕과 백성은 대반야경으로
[大般]若經 洗悟蒙俗。 몽속을 깨우치고 씼어냈다고 하였다.
初, 처음에(도안이 고구려에 오기 전에)
11.
國元 佛化內城 宮側東录。 국가의 근원을 부처님의 감화로 하여 내성의 궁옆동편에절宮을 두었다.
(동강궁예사)
王聞頌項聲沸 왕은 불송이 크고 염불 소리도 크면 (책의 심오한) 뜻이
意開 示悟佛道 마침내 스스로 나타나서 불도를 깨닫는다고 듣고,
王民之心 왕과 백성이 한마음으로 염불하면
念佛言 世尊大悲 示。 석가와 관음(대비)이 나타난다고 듣고
初步 佛門 처음 불문에 든 왕도
王求道 得正無邪 구도하면 정을 얻고 무사에 든다고 들었다.
12.
佛高國句心麗終善界 부처의 나라 고구려는 마침내 선계에 이르러서
行善義而 (외도에 빠지지 않고) 오로지 선의만 행하여
東戎王 天下世衆生 동융왕(소수림왕의 별명?)이 하늘에서 세상으로 내려왔다.
故說 衆生有諸佛 그리하여 중생 모두에게 부처가 있다 하고,
大般若經 阿耨多罗 대반야경야뇩타불삼막삼보리(무상의 완전한 깨달음)는
三藐三菩提 亦如日月 해와 달처럼 위대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2. 참고자료
삼국유사에 의하면 아장승阿丈僧, 즉 아도화상阿道和尙은 244년경에 위나라에서 고구려에
사자로 왔던 아굴마我堀摩와 고구려 여인 고도녕高道寧 사이에 태어났다.
247년 위나라 장수 관구검毌丘儉의 침입으로 고구려 국도인 rnr내성이 파괴된 이후에, 아도는
5세이던 249년에 어머니의 명령으로 고구려의 절에 출가하였다.
어머니 고도녕道寧이라는 이름자로서 역시 출가자로 추정된다.
아도는 16세에 위나라에 가서 부친을 만나고 현창법사에 유학하고 19세인 263년부터 284년
까지 신라에서 처음으로 포교하여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가져다가 구미의 태조산에 도리사를
세우고, 경주의 흥륜사를 세우고 284년에 미추왕이 서거하여 죽이려고 하니
가야국의 지리산 남쪽으로 도망해 가서 천봉산 대원사를 창건하고, 이후 고구려에 돌아가서
창불하고, 추정하면 376년-379년 사이에 중국의 3대 고승이며 동방성인으로 일컬어지는
도안道安을 고구려에 초빙하였고, 백제도 포교하여 381년 백제 땅 강화에 전등사를 세우고
당시 진종사眞宗寺라고 하였다.
백제에는 전등사 외에도 갑사, 계룡산 천진보탑을 세웠고
가야에는 순천 선암사, 나주 죽림사, 광주 대원사, 해남 대흥사 부산 마하사
신라에는 구미 도리사, 김천 직지사, 거진 건봉사, 충주 신륵사, 경주 불국사, 흥륜사, 군위군
삼존석굴 등이 아도의 행적과 관련된다.
아도화상은 신라, 가야, 백제, 고구려 사국에 불교사원을 세운 것이고,
신라에서는 구미의 태조산太祖山에 도리사를 지어서 태조선원이라는 이름을 남겼으니
가히 이 땅의 진불조眞佛祖라고 할 수 있다.
아도화상은 138년을 살고 382년에 입적하였다.
이 아도보다 60년 내지 240년 늦게 아도화상 이름으로 창건된 가람들은 후대에 새로운
제2의 아도가 나타나서 신라의 절을 창건했을 수도 있지만, 일찍이 아도화상이 수행하고
지나간 곳에 훗날 창건한 절일 가능성도 많다. 아장승 축봉문은 심오하다.
그러나 488자의 글자 중에서 66자가 틀린 것은 고구려 고승의 실수로서 용납되기 어렵다.
이는 고승이 아니라 도공이 새겼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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