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경남기념물

경상남도 기념물 제292호 합천 정인홍 묘

오늘의 쉼터 2018. 11. 11. 10:34



종 목

경상남도 기념물  제292호 

명 칭

합천 정인홍 묘 (陜川 鄭仁弘 墓)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봉토묘

수량/면적

1기(526㎡)

지정(등록)일

2018.09.20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진주시

관리자(관리단체)

진주시

상 세 문 의

경상남도 합천군 문화체육과 055-930-3175

 
일반설명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 1536-1623)은 선조(宣祖) 초기에 유일(遺逸)로 출사하여 사헌부 장령(掌令)으로 있을 때 곧은 명성을 크게 떨친 바 있고, 임진왜란 때는 남명학파의 리더로서 동문과 수하의 문인들을 대거 기의(起義)케 하여 경상우도 지역을 보전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임진왜란을 승리로 끝나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던 인물이다.

전쟁이 끝난 뒤 선조(宣祖)의 지우를 입어 사헌부 대사헌에 임명되기도 하였고, 광해군(光海君)의 지우를 입어 1609년 광해군 원년부터 1623년 인조(仁祖)가 정권을 차지할 때까지 한 번도 현직에 나아가 업무를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사헌으로부터 영의정에 이르기까지의 고관(高官) 현직(顯職)을 왕이 거두어들이지 않았던 인물이다.

비록 인조반정 후 폐모살제(廢母殺弟)의 죄를 뒤집어 씌워 처형하고, 그 이후 약 300년 가까이 집권 세력들이 끊임없이 그의 못된 점을 드러내려 하였지만, 그의 꼿꼿한 선비정신에 바탕을 둔 언행과 그를 추종한 수많은 문인 집단이 해내었던 의병활동 등을 모두 가리지는 못하였다. 그리하여 오늘날에 와서는 많은 역사학자들이 광해군 시대의 의미와 정인홍의 정치적 역할 및 그 학자적 위상에 대해 의미있게 해석하고 있는 추세이다.

정인홍의 묘소는 적신으로 처형당했기 때문에 세상에 알리지도 못하고 있다가, 고종 때에 와서 현재의 위치로 이장했다고 하며, 그 앞에 세워진 석물 또한 모두 일제 강점기 이후에 조성된 것이다.




합천 정인홍 묘

합천 정인홍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