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1. 1996년 1월, 카운트다운

오늘의 쉼터 2014. 12. 16. 10:52

1996년 1월, 카운트다운(1)  


조선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 평양.
넓은 회의실은 정적에 싸여 있었다.

천장의 육중한 샹들리에가 화려한 빛으로 방을 밝히고 있었으나 분위기는 무겁다.

회의실의 중앙에 가로놓인 타원형의 탁자 양쪽에는 여덟 명의 사내가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북한의 고위급 인사들로 국가 비상 회의가 진행되는 중이다.

모두 초로의 사내들로 오른쪽의 세 명은 가슴의 반쪽이 훈장으로 뒤덮인 장군들이었다. 

그들은 상석에 앉아 있는 사내를 주시한 채 석상처럼 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소리 죽여 기침을 하였는데 금방 시치미를 었으므로 방안은 다시 침묵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김정일이 허리를 비틀면서 의자에서 상체를 조금 세웠다.
   "우리가 요구했던 북미 통상 회담은 결렬될 것 같소.

미국측은 정치범 수용소를 개방해야 된다는 헛소리를 하고 있소."
그는 근래 들어 더욱 처져 가는 양쪽 볼을 의식한 듯 잠시 입을 굳게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인권 문제를 들고 나오다니 뜻밖이야.

대통령 선거가 몇 달 앞으로 다가오니까 우파에게 꼬리를 쳐줄 작정인 모양이오."
좌우를 둘러보던 그의 시선이 오른쪽 첫번째에 앉은 장군에게 머물렀다.

오진우 대신으로 무력 부장 겸 당 중앙 정치국 상임 위원이 된 최광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앞쪽을 바라보고 있는 육중한 몸집의 최광은 70대 후반인데도

근력이 50대 사내에 못지 않다.
김정일의 시선이 왼쪽의 세 번째 좌석에 앉은 노동복 차림의 사내 에게로 옮겨졌다.

50대 후반으로 검은 피부에 눈매가 날카로운 모습의 그는 외교 부장으로

정치국 후보 위원인 최대민이다.
   "최 동지, 일본측의 반응은 어떻소?"
   "예, 수령 동지."
   최대민이 긴장으로 몸을 굳혔다.
   "무라야마 외상은 저희 강일수 동지에게 북미 회담의 결과를 보고 난 뒤 의논하자고 했습니다.

따라서 차관 도입 관계는 얼마쯤 보류되어야‥‥‥‥
   "꼭두각시 같은 놈들‥‥‥‥
   "예, 수령 동지, 그렇습니다. "
그들의 대화는 그 내용이나 분위기에는 어울리지 않게 넓은 회의 실의 벽에 부딪치며 맑은 여운을 남겼다.

방에 모인 여덟 명은북한의 최고위급 지도자들이었다.
군을 장악하고 있는 최광과 참모 총장 이을설, 군사위 부위원장이며 군 충정치국 국장인 김인철이

모두 모여 있었고 수상 겸 당비서인 김사훈, 보위부 사령관인 이동석,

그리고 새로 신설된 당의 산업 경제부를 맡은 부수상 김달현이 말석을 차지하고 있다.
   "남조선의 경제 협력단이 곧 공화국에 들어을 작정입니다만,

수령동지 ‥‥‥‥ 
문득 김달현이 입을 열었다.
   "중소기업 사장단으로 백 명이 넘는 대규모 투자 조사단입니다. "
김달현은 머리 회전이 빠르다.

미국이 북한의 인권 문제를 들고 나와 경제 협력과 정상 수교 관계에 제동을 걸고,

일본이 그것과 손발을 맞추어 차관 제공 문제를 연기시킨 상황이다.

이런 때에 남한측 대규모 투자 유치단의 방북 계획은 긴장을 조금 완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김정일이 머리를 돌려 김달현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것, 보류시켜. 아니, 취소시켜."
   김정일의 말소리가 방안을 울리자 모두 긴장으로 몸을 굳혔다.
   "알TR습니다, 수령 동지 "
당연한 지시라는 듯 김달현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남한은 이쪽이 바라지도 않는 경제 협력 문제를 자주 들고 나온다.

그들은 북한에 산업 시설을 건설하고 상품을 가져오려고 애를 쓰고 있었는데 얼핏 보면

진정한 동포애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통일의 과정이 성숙해 간다고 남한 정부는 은연중

그들 국민에게 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따라서 김정일은 남한과의 관계에서는 언제나 주도권을 쥐는 입장 이었고

그들은 갖가지 수모를 당하면서도 대개는 입을 다문다.

인민군 총참모장인 이을설이 헛기침을 했다.

그는 이번에 정치국 정위원에다 당 군사 위원에 임명되었다.
   "수령 동지, 말쏭 드릴 것이‥‥‥‥
   그는 허리를 세우고는 김정일을 바라보았다.
   "인민군의 사기는 충천합니다.

수령님의 명령이면 불속에 라도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다만‥‥‥‥ 
말을 계속하라는 듯 김정일이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이을설이 혀로 입술을 축였다.
   "식량과 기름, 기타 필수품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전후방을 차별하여 급식해 주는 것에 대해서 약간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러나 그 문제는‥‥‥‥
   "수습되었지요?"
   "예, 완전히 수습되었습니다. "
후방 부대에서 난동을 부린 백여 명의 사병과 군관을 체포한 것이다.

그들 중 20여 명은 총살형에 처해졌다.
   김정일이 장군들을 둘러보았다.
   "국가 비상 시국입니다.

군의 사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동지들도 잘 알고 계실 거요."
   인민 무력 부장 최광이 김정일을 바라보았다.
   "사기는 충천합니다, 수령 동지.

그리고 군의 급식과 필수품 문제는 총참모장과 다시 상의해서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나도 검토해 보겠습니다. "
김정일이 펼쳐 놓았던 서류를 덮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두들 의자를 밀어젖히고 따라 일어섰으므로 회의실은 잠시 어수선해졌다.
일주일에 한번 열리는 국·가 비상 회의가 끝난 것이다.
김사훈이 방으로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있던 김정일이 앞쪽 자리를 가리켰다.
    "앉으시오, 수상 동지."
    "감사합니다, 수령 동지."
김사훈이 주춤거리며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60대 후반으로 당 비서와 정치국 정위원을 겸하고 있는 당의 실력자인데

김정일에 의해 금부상된 인물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자강도의 도당 비서였던 그의 출세 배경에는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이 있었다.

김사훈은 김정숙의 조카였던 것이다.
한동안 김사훈 머리 위쪽의 벽을 바라보고 있던 김정일이 시선을 내렸다.
"비상 회의는 이제부터 사흘에 한 번씩 열도록 합시다, 수상 동at . "
"예, 수령 동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려운 시국이니만치
"군인들은 단순해.그렇지 않소?"
"네 , "
대답부터 해놓고 김사훈이 긴장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의 비상 회의에서 이을설이 군의 사기는 충천해 있다고 하고는

식량과 필수품 부족 문제를 거론했었다.
그것은 간접적인 경고와 비판의 성격을 떤 발언으로

그 말을 들은 김사훈은 온몸이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무력 부장 최광이 능란하게 이을설의 발언을 덮는 것을 보면

그들이 미리 말을 맞춘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수상 동지, 인민군이 흔들리면 안됩니다. 내 말을 이해하시겠소?"
    김정일이 묻자 김사훈이 커다랗게 머리를 」1덕였다.
   "그렇습니다,수령 동지.인민군 총사령관이신 수령 동지 아래서
인민군은 철통같이 단결해야 됩니다. "
인민군의 실력자인 최광과 이을설은 본래 사이가 좋지 않았다.
김일성의 호위군 시정관이었던 이을설은 총참모장이었던 최광에 의해 군복을 벗게 되었었다

그뒤 그는 함경도의 농장으로 하방되었다.

5년쯤 후에 복권된 이을설은 오진우와 함께 최광을 아오지의 탄광으로 쫓아냈었다.
오진우의 병사로 인한 군부의 공백을 김정일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두 축으로 운영하려고 했던 것인데 그의 의도와는 다른 상황이 되어 가고 있다.
군부는 입으로는 충성의 맹세를 되풀이하면서도 점점 김정일의 손안에서 벗어나는 중이었고

오늘의 사건도 그것을 반증하는 한 예가 될 것이다.
김일성 시대였다면 회의 석상에서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일성과의 독낄에서 은밀히 보고하고는 그 자리에서 지시를 받아처리했을 것이다.
   "수상 동지, 공화국을 위해서 수상 동지가 취리히에 가러야3f소."
다시 입을 연 김정일의 말에 김사훈이 긴장했다.
   "취리히에 말입니까?"
   "그렇소. 가기 전에 미국측에 연락을 해두어야 할 것이오.

   외교 부장 동지에게는 내가 이야기해 두었소."
   "통상 회담에 제가 합류하는 것입니까?"
통상 회담에는 외교부 부부장인 안정석이 대표로 참석하고 있다.
   "아니, 그것과는 종류가 다릅니다, 수상 동지."
김정일이 소파에서 허리를 떼었다.

넓은 집무실 안은 따뜻했고 적당한 습도가 유지되고 있어서 쾌적한 상태였으나

김사훈은 온몸이 끈적이는 듯 느껴졌다.
   "당신은 외교 부장 동지와 함께 가도록 하시오. 저쪽에서도 중요 한 인물들이 올테니까 말이오."
김정일이 미리 준비해 둔 서류를 탁자 위에 펼치고는 김사훈을 바라보았다.
   "이 서류를 읽어 보시오. 수상 동지가 해야 할 일들이오."


    스위스, 취리히.
정상혁 중령이 콘래드 호텔의 커피숍에 들어섰을 때는 오후 2시가 되어 있었다.

구수한 커피 향이 배어 있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는 창 쪽으로 발을 떼었다.
창가의 탁자 쪽에 앉아신문을 읽고 있던 여자가 머리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늦었어요, 10분씩이나."
짧게 커트한 머리와 반짝이는 눈이 밝은 느낌을 주는 20대의 여자였다.
    "왜 내가 항상 기다려 야만 하죠?"
정상혁은 잠자코 그녀의 앞자리에 앉았다.
지희은은 스위스에 거주하는 교포 2세로 아버지와 함께 취리히에서 조그만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매사에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의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 대사관에 취직했는데

정상혁의 전임자였던 이명규 대령이 그녀를 조수로 이용했던 것이다.
이제 그녀는 대사관 일을 그만두고 호텔업에 종사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4년 경력의 첩보원이 되어 있었다.

스위스의 한국 대사관의 정보 책임자로 부임한 지 일년도 채 못되는 정상혁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다.
   "어제는 말루치와 안정석의 회담이 없었어요.

말루치는 로열 호텔에서 나오지 않았고 안정석도 북한 대사관에서 움직이지 않았어요."
지희은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햇볕에 그을린 듯한 피부가 윤기를 내고 있었는데 스키를 즐기기 때문이다.
   "그래, 날 보자고 한 이유는 뭐야? 그런 신문에 난 이야기를 하려고 불러낸 것은 아닐테고."
정상혁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40대 초반으로 그의 짧은 머리와 목을 보면 영락없는 레슬링 선수였는데

실제로 그는 해군사관학교시절에 레슬링 15킬로그램급자유형 챔피언을지 내기도 했다.
   "말루치가 경고 선언에 대한 계획을 취소했어요."
   "취소하다니?"
정상혁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미국 대표인 말루치는 북한측의 무 성의한 회담 진행 자세에 대해

경고 선언을 하기로 이미 언론에 발표해 놓고 있었다.

미국과 수교를 맺고 정상 통상 관계를 수립하면서 남한측은 철저히 무시하려 드는

북한의 속셈을 모를 사람이 없다.

리고 미국측은 남한의 정부로부터 심한 압박을 받고 있는 터였다.

려 다니기만 했던 미국이 이제는 명확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여론도 압력을 넣고 있는 참이다.
   "그건 어디서 들은 소리야? 발표는 내일 하기로 되어 있는데."
   "미국측의 공보관에게서요."
   "확실해?"
   "맨스필드는 나하고 친해요."
   "이유가 뭐야?또 본국의 훈령인가?"
   "아니 . "
   "연기한 것도 아니고?"
   "취소예요. 그리고‥‥‥‥
   "그리고?"
   "당분간 회담 일정이 없어요. 말루치는 대기 상래로 있을 거래요."
   "글쎄, 그 이유가‥‥‥‥
   "그걸 내가 알 수가 있겠어요? 큰 것은 내 눈앞에 놓여 있어도 보이지 않아요.

나에게 보이는 것은 조그만 것뿐이에요."
   "내 선에서 알아볼 건 다 했어요. 이젠 중령님 차례예요."
건성으로 시킨 커피가 날라져 왔으나 정상혁은 손도 대지 않은 채 잠자코 지회은을 바라보았다.
밖은 횐 눈이 내리는 흐린 날씨였지만 어제처럼 바람은 불지 않았다.

코트 어깨에 눈송이를 묻힌 손님들이 커피숍에 들어서면서 떠들썩한 웃음 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더욱 가슴이 답답해진 정상혁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독일, 베를린,
베를린 중심가의 그랜드 호텔 옆에 10층짜리 횐색 빌딩이 있다.
독일이 통일된 후에 지어진 새 건물이어서 유난히 눈에 띄었는데

빌딩의 5층과 6층은 일본의 가토 무역 상사가 사용하고 있었다.

일 지역을 담당하는 일본 정보국이 위장한 회사였다.

지사장인 시바다 겐지가 도청 방지 장치가 되어 있는 무선실로 들어가자

다케무라 한죠가 수화기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시바다는 다케무라가 건네 주는 전화를 받아 귀에 대었다.
   "전화 바긴습니다, 국장님 ."
   "시바다, 취리히로 가라, 당장."
   정보 국장 혼다 다카오의 칼로 내려치는 듯한 말투가 들려 왔다.
   "취리히로 말입니까?"
   "그래, 부하들을 데리고, 베를린에는 꼭 필요한 인원만 남겨 두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긴장한 시바다가 전화기를 고쳐 쥐었다.

취리히에서는 산유국 석유 장관들의 OPEC회의가 다음주에 열릴 예정이었고

영국의 찰스 황태자가 겨울 휴가를 보내고 있다.
 "북미 회담이 있어, 취리히에서."
혼다의 말에 시바다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북한과 미국의 통상 회담은 지금 한 달이 넘게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언론들의 관심도 끌지 못하는 3급 기사강이었다.
   "국장님, 북미 회담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직은 없어. 하지만 가서 정보를 수집해, 모든 정보를."
   "회담 내용 말입니까?"
   "그래, 시바다. 내용이 큰 것이 걸릴지 모른다. "
시바다가 잠자코 있자 혼다는 스스로 생각해도 애매한 지시인 것을 깨달은 모양인지 말을 이었다.
   "시바다, 조총련을 통해 정보가 들어왔어.

   북한 고위급이 취리히로 날아간다는 거야. 미국의 고위층과 회담을 하려고."
   "통상 회담을 하려고 말입니까?"
   "통상 회담을 하려고 김사훈이 날아가겠나, 제3인자가?"
   "외교 부장 최대민까지 동행하고 가는 거야. 그들과 상담하려고
   미국의 고위층이 떠날텐데 국무 장관 로젠스턴일 가능성이 많아."
   "그것, 큰 건이군요."
   "더구나 비밀 회담이야.

김사훈은 러시아를 방문한다고 어제 출발 했고

외교 부장 최대민은 지금 북경에 있어,

그들은 취리히에서 합류할 거야."
   "저도 곧 떠나겠습니다, 국장님 "
   "당사자들 외에 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 우리뿐일 것이다.
   우리는 조총련의 고정 라인을 통해 확실하게 얻어낸 거야."
   "알겠습니다, 국장님. 뭔가 큰일이 날 것 같군요, 제 예감도."
   "북한놈들의 깜짝쇼라고 미리부터 가볍게 생각하지 말어, 시바다.
   놈들은 쇼처럼 보이다가도 방심하면 찌르고 들어오는 놈들이야."
   수화기를 내려놓은 시바다는 가까운 곳에 서 있는 다케무라를 손짓으로 불렀다.
   "다케무라, 베를린 요원들을 필요한 인원만 남겨 두고 모두 소집해라.

   오늘중으로 취리히로 떠난다. "
   "예 , 조장님 ."
   선뜻 대답한 다케무라가 몸을 돌렸다.

   그는 무엇 때문에 가느냐고는 묻지 않았다.

   직분에 충실한 사내였으므로 자신의 분수를 알고 있는 것이다.
   대 한민국, 서울.
   1월 초순의 차가운 날씨였다.

   안보 수석 유경렬이 청와대 본관 앞에서 차에서 내리자 낯익은 경호실 간부가 서둘러 다가왔다.
   "수석님, 각하께서는 산책하고 계싣니다. 그쪽으로 모시고 오라는 분부셨습니다. "
   "어디 계시오?"
   "뒤쪽 산책로에 계십니다. "
   본관 건물 뒤쪽으로 조깅을 겸한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었는데 집무실과 가까운 관계로

   대통령이 자주 이용하고 있었다.
   서류 뭉치를 옆구리에 긴 유경렬은 경호원을 따라 본관의 모퉁이를 돌았다.

   뒤쪽은 그늘이 져 있는 데다가 인왕산을 훌고 내려온 얼음날 같은 바람이 가슴에 닿았으므로

   그는 어깨를 움츠렸다.

   영하 7도의 기 은이라고 했지만 오후 4시가넘어 있어서 수은주는 더 내려가 있을 것이다.
   대통령은 잔디밭의 갓길로 해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는데 금방 달리기를 마쳤는지 얼굴이 붉다.
   "유 수석, 추울텐데 이리 오라고 해서 미안해."
   다가선 대통령이 횐 입김을 뿜으면서 말했다.

   경호원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이제 넓은 잔디밭 위에 서 있는 건 그들 둘뿐이었다.
    물론 본관 건물 2층에서는 이곳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2층의 여러 수석 비서관들은 모두 이곳에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을 것이었다.

   유경렬은 이제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
   "그래, 결과는 어떻게 되었어?"
   대통령이 묻자 유경렬은 반걸음쯤 앞으로 다가가 섰다.
   "미국측과의 연락 업무를 더욱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외무부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지원단을 구성하기로 했습니다. "
   "그래, 그건 알겠고."
   대통령이 길가에 있는돌로 만든 벤치에 앉았으므로 유경렬은그의 옆에 섰다.
   "여론이 좋지 않아. 남북 대화를 기피하고 미국만 상대하는 북한측에게

    우리가 당하고만 있다는 거야."
   "각하,언론은 책임이나 대책도 없이 떠들고 있습니다 그들이 발표한 여론 조사라는 것도

   신빙성이 희박하고‥‥‥‥
   "미국에 대한 반감도 증폭되고 있어 우리 입장을 가끔씩 무시하고 있는 것 같다고 나도 느껴져 ."
   "각하, 그럴 리가 없습니다. 미국은 어디까지나·
   "학생들의 데모 내용 알고 있지?"
   "예, 각하."
   찬바람이 휘몰려 왔으므로 유경렬은 그제서야 추위를 느꼈다.

   대통령이 힐끗 그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일어섰다.
   "걸으면서 이야기하지."
   "네 , 각하." 

 

 

 

1996년 1월, 카운트다운(2

 

 

 대통령의 발길이 본관의 뒷문을 향하고 있었으므로 유경렬은 숨을 내쉬었다.
 그는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 주재로 열린 안보 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길이다.

회의의 주제는 지금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열리고 있는 북미 수교 및 통상 회담에 대한 대책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안보 회의에는 부총리와 외무 장관, 국방 장관,

안기부장과 청와대의 안보수석이 참석한다.
   "학생들은 이제 주권을 회복하자는 데모를 하고 있어.

미국은 필요 없으니 떠나라는 것인데 ‥‥‥‥ 
대통령이 머리를 돌려 유경렬을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쓴웃음이 떠올라 있다.
   "북한은 우릴 상대해 주지도 않는데 미국보고 떠나라니, 아주 얄궂게 되었어."
   "북한놈들의 술수에 말려들어 버렸어. 놈들은 우리가 미국의 식민지이니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식이고."
   "각하. "
   "학생 놈들은 미국은 손을 떼고 떠나라고 하니."
   "미국은 북한이 남한을 상대하려 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면서

우리 대신 모든 협상을 하는 상황이고."
   "우리 정부만 허공에 떠 있는 느낌이 들어.민심은 우리 정부 편도, 미국 푄도,

그렇다고 북쪽 놈들 편도 아니란 말이야."
   그들이 됫문 앞으로 다가가자 어디선가 나타난 경호원이 문을 열어 주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유경렬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따스한 실내 공기가 온몸을 감쌌고 은은한'향내도 콧속으로 들어왔다.
   "각하,그것은 극히 일부분의 학생들이 떠드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안정을 바라고 있습니다. "
   복도를 걸으면서 유경렬이 말했다.
   그는 요즘 들어 대통령이 북미 회담에 대해서 예민해져 있는 것을 안다.

북한은 미국과의 정상 수교와 정상 통상 관계를 요구하고 있었는데,

그 회담의 진행 과정은 이틀에 한번 꼴로 짧은 전문으로 들어올 뿐이다.
   "야당은 어때?"
   B층으로 향한 계단을 오르면서 대통령이 그를 바라보았다.
   야당 대표 김기표는 남북간의 경제 협력을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미국에 대한 은근한 반감을 여론에 흘리고 있었다.

가끔씩 운동권 학생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것 같은 발언도 한다.
   "당분간 미국측에 대한 비난 발언은 삼갈 것입니다.

김 대표의 비서 실장한테서 오전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각하."
    계단을 오른 이영만 대통령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경제 협력이 이루어질까?"
   "예, 각하. 북한은 개방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
   "우리가 얼마나 더 참아야 할까?"
    "각하 통일이란 대업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각하께서는 그 대업을
    "그만. "
    대통령이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나는 이제 그것이 겁나네. 통일 통일 하고 있는데,

그리고 우리가 그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것이 어떤 통일이 될지 겁난단 말이야."
   "각하, 우리측이 주도권을 잡고 저희가 경제 협력을 하면서 이끌어 가게 되면‥‥‥‥
    집무실 앞에 선 대통령이 문의 손잡이를 잡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저런 식으로 나오는 북한놈들을 근래에 겪으면서

우리 남한의 국민들이 통일을 진정으로 바라고 있을까? 말하자면 중산층들이?"
   "각하, 통일은 민족의 염원입니다. "
   "중산층에는 이제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는 봉급 생활자들도 포함시켜야 돼, 유 수석."
    "이왕 기다렸으니 10년이나 20년 더 이런 상태로 살자고 하는 사람들도 많은 모양이던데 ."
   그들은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소파에 앉은 대통령이 손으로 앞자리를 가리키자

유경렬은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나는 유 수석의 방식을 지지하고 있네.

하지만 미국측이 보다 더 우리의 입장을 살려 주기를 바라네 "
대통령의 얼굴에 다시 쓴웃음이 떠올랐다.
   "우리와 협상을 거부하는 북한놈들한테는 이젠 무얼 바랄 수도 없구만 그래."

   스위스, 취리히.
   창 밖에는 매서운 겨울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으나 방안은 훈훈했다.
   짙은 색 카펫이 깔린 넓은 방 복판에는 육중한 장방형의 마호가니
탁자가 놓여 있을 뿐 다른 장식은 없다.
   창을 가린 짙은 색 커튼으로 방안은 어두웠지만 밖은 한낮이었다.
태양마저 하알게 얼어 있는 듯한 취리히의 1월이다.
   나무 창살이 촘촘한 19세기 양식의 유리창 밖을 바라보던 김사훈이 머리를 돌렸다.

그러자 그의 정면에 앉아 있던 넓은 어깨에 붉은 얼굴을 한 백인과 시선이 마주쳤다.

차분한 시선이었다. 회담장에 서로 자리를 잡고 인사를 나누고 나서 이쪽의 김사훈이

긴 침묵을 시작했는데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미국 대통령의 안보 보좌관인 지미 패트릭스였다.

그의 왼쪽에 앉은주름 투성이의 얼굴에 대머리가번들거리는사내는국무 장관 빌 로젠스턴이다.
   김사훈과 시선이 마주친 그는 입가에 엷은 웃음을 띠고는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패트릭스의 오른쪽에 앉은 사내가 조그맣게 헛기침을 했다.

이번 북미 회담의 미국측 대표인 말루치였는데 오늘의 회담에서는 말석에 앉게 되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말씀 드리겠소.

난 미국을 대표하고 있는 여러분에게 우리 당의 결정 사항을 통보해 드리려고 온 겁니다. "
   김사훈이 입을 열었다.
   그의 좌우에 벌려 앉은 외교 부장 최대민과 통상 회담 대표인 안정석이 긴장으로 몸을 굳히고 있다.
    "친애하는 여러분,우리는 이 결정 사항이 귀국의 대통령께 신속히 보고되어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배려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하시도록."
    김사훈의 영어는 유창했으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어서인지 발음이 어색했다.
   패트릭스와 로젠스턴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계속하시오, 수상. 우리는 듣고 있으니까."
   패트릭스가 가볍게 말했다.
   "마치 선전 포고를 하는 것 같군요, 수상 "
   "우린 한 달 후인 2월 10일에 남조선을 해방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
   패트릭스와 로젠스턴이 한동안 말없이 김사훈을 바라보았다.

정적이 감돌고 있는 방안으로 희미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 왔다.
   이윽고 패트릭스가 입을 열었다.
   "농담이 아니신 것 같군, 수상."
   "농담이 아니오, 여러분 "
   "남조선을 해방시킨다고? 침공이군.

그렇다면 그것은 미국에 대한 도발이라고 간주할 수 있소.

미국에 대한 선전 포고로 말이오."
   로젠스턴의 음성은 굳어 있었다.
   "한미 방위 조약에 의해 미군은 즉각 출동하게 되어 있소, 수상 "
   "이유야 어떻든 미군이 출동하면 중국군도 출동합니다, 로젠스턴 01 "
   "유엔군은 어떻고? 6 · 25의 재판이 될 거요, 수상."
   "이번에는 우리가 이깁니다, 로젠스턴 씨."
   "당신, 미쳤군. 아니, 당신네 일당들 모두가 미쳤어."
   찌푸린 얼굴의 패트릭스가 머리를 저었다.
   "지금이 어떤 때라고 전쟁을 선포하는 거야?"
   "미국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힘을 행사하는 시기요.

동서로 나뉘어 냉전을 하던 시대도 끝이 났고."
   김사훈이 말을 이었다.
   "따라서 소련을 의식할 필요가 없게 된 때이고 통일된 한반도가

더욱 강력한 무력을 가지고 일본과 중공을 견제해야 할 때요.

미국의 맹방으로 말이오."
   "잠간, 우리가 맹방이라니? 미국과 북한 이야기를 하는 거요, 지금?"
   로젠스턴이 묻자 김사훈이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우리 조선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은 미국의 맹방이 되겠습니다.
이것은 당의 결정이오."
   "당신들의 결정이지 우리하곤 상관이 없는 일이야.

우린 이미 남한과 방위 조약을 맺은 동맹 관계에 있어."
   "남조선이 없어지고 나면 우리가 그 관계를 이어받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신사 양반."
   "잠간. "
   패트릭스가 자리를 고쳐 앉고는 김사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당신, 이 자리가 비록 비공식적인 자리지만 지금 남한을 침공하겠다고 선언했는데,

2월 10일에 말이오."
   "그렇소, 한 달 후에."
   "한 달 동안 남한과 미국이 북한의 침공에 대비할 시간을 주겠다는 것이군 "
   "잘 알아들으셨소."
   "기습 공격이 오히려 더 유리할텐데, 그러지 않고 한 달 전에 통보하는 이유가 있겠지."
   "묻는다면 대답해 드릴 용의가 있소."
   "공갈인가? 더 나은 협상 조건을 끌어내기 위한 협박용 선언인가?"
   그러자 이제까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최대민이 자세를 바로 세웠다.
   "우린 이번 협상에서 어떤 것을 얻어내도 우리의 절박한 상황을 타개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공갈이나 엄포가 아니오. 준 선전 포고로 간주하셔 도 됩니다. "
   "당신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텐데."
    로젠스턴이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한 달 동안이면 방위 조약대로 미 본토에서 30개 사단 병력이 공수되어 올 수 있고

태평양, 대서양의 함대가 모두 모여들 수 있어,"
    "알고 있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최대의 전쟁이 될 거야."
    "우리가 바라는 바요."
    "북한은 망하게 돼."
    "당신들이 핵을 쓰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소. 우리도 핵은 안 씁니다.

미리 약속하겠소. 하지만 우린 이라크와는 다르니까, "
    "핵이라,당신들의 보물 단지인 핵이란 말이지? 과연 그 핵이 있기나 할까?"
   로젠스턴의 말에 김사훈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리고다시 입을 열었다.
   "150마일 휴전선을 일제히 돌파하면 쌍방의 피해가 엄청날 거요.
인민군의 사기는 충천해 있어. 해방 전쟁이야."
   "굶주림의 해방이지."
   "옳게 보았어. 우리 모두는 굶주려 있지. 남조선은 배불리 먹고 있고."
   "남조선 군대는 군대가 아냐."
   그러면서 최대민이 나섰다.
   "당신들만 없으면 열흘이면 무너져 , 열흘이면 우리는 남조선을 해방시킬 수가 있단 말이오."
   최대민의 말을 받은 김사훈이 탁자위로 상체를 기울이며 그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공격 날짜를 통보한 이유를 말해 드리지.

짐작하고는 계시는데 입 밖에 그 말을 내놓기가 어려우신 것 같아서‥‥‥‥
   "열흘이오. 열흘 동안만 참전하지 말아 주시오.

열흘 후에는 남조선을 해방하고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게 됩니다.

남조선의 반미 분자들까지 소탕해서 철저한 친미 동맹국이 되겠습니다. "
   "당신들이 참전하면 중국군도 옵니다.

유엔군이 온다고 해도 한반도에서는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게 됩니다

미국도 수십만 명의 사상자가 생기게 되겠지요.

과연 이 시대에 그럴 가치가 있는 일입니까?
미국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할까요?"
   "미국은 한미 방위 조약을 지킬 의무가 있어,

수상 씨. 우리는 정의를 지켜야 한단 말이오."
   "세계 질서는 이미 세워졌어. 한반도의 남북한 문제로 질서가 깨지지는 않아.

수십만의 미국인 생명을 없앨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도 당신들이 잘 알 것이고."
   "그리고 이것은 침공이 아니오. 남조선의 무력 시위에 대응하려다 일어난 전쟁이 될테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패트릭스가 묻자 김사훈이 빙그레 웃었다.
   "당신들은 우리의 계획을 곧장 백악관에 보고할 의무가 있지요.
그리고 당신 정부는 남조선 정부 쪽에도 알려 주어야만 할 것이고."
   "남조선 정부는 당장 전군을 비상 대기 상태로 만들Tf지.

예비군을 소집하고, 아마 계엄령을 선포할지도‥‥‥‥
"이것은 남조선측이 우리 공화국에 대한 도발이오."
"우리가 남한측에 연락해 주지 않아도 침공 계획은 변하지 않겠지
"그렇다면 더 쉬워지는 거지 "
"도박이야, 엄청난.그걸 알고 있나?"
"우리는 위기 상태야, 솔직히 말하면."
"굶주림과 정권의 위기겠지."
"해방 전쟁에는 모두가 일심단결이 돼."
   그러자 로젠스턴과 패트릭스는 입을 다물고는 멍한 얼굴이 되었다.

말루치가조그맣게 헛기침을 했고 안정석이 이마의 땀을조심스럽게 닦아내었을 뿐

나머지 네 사람은 한동안 입을 열지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비행기가 흔들리는 것은 멈추었지만 천장에 불은 좌석 안전 벨트의 사인은 아직도 켜져 있었다

유리창 밖으로는 짙은 어둠이 깔려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12인승의 쌍발제트기는 더글러스사 제품으로 시속 1천 킬로를 너끈하게 내었으나 진동이 심했다.

러나 공군의 B -737보다는 좌석이 편안했고 무엇보다도 앞쪽 선반에 위스키가

진열되어 있는 것이 로젠스턴의 마음에 들었다.
   비행기가 독일 상공을 지날 때 이미 그는 '발렌타인 17년'을 반병쯤 위 속에 부어 넣고 있었다.
   "지미, 저 미친 놈들에게 우리가 꼼짝없이 말려들고 있어. 난 그것이 화가 나."
로젠스턴이 술잔을 든 채 패트릭스를 바라보았다.

눈자위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놈들은 위협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어. 정말로 쳐내려을 작정이야. "
   머리를 끄덕인 패트릭스가 의자에서 등을 떼었다.
   "한 달의 여유가 있어. 빌, 그 동안에 궁리를 해보자구."
   "그 빌어먹을 한 달은 주한 미군에게 대피하도록 배려해 주는 기간이야. 그 망할 놈들이‥‥‥‥ 
    "이거야 어디에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막막하단 말이야,그놈의 새끼들은."
패트릭스가 입맛을 다시고는 벨트를 풀고 일어나 앞쪽의 선반으로 다가갔다.

그는 보드카를 골라 쥐고는 나머지 다른 손에는 유리잔을 들고 돌아왔다.
    "김정일은 우리가 공격하지 않으리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아."
보드카를 잔에 따른 그는 커다랗게 한모금을 삼켰다.

로젠스턴이 반병 넘게 마실 때까지 술을 입에 대지 않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만 있던 그였다.
    "그리고 놈은 우리가 반격한다고 하더라도 일을 낼 작정이야."
   "한국측에 알려 주어야 정상인데."
   "흥. "
   패트릭스가 어깨를 한번 치켜올리더니 잔에 남아 있던 술을 마저마셨다.
   "아수라장이 되겠지. 아마 백만 명은 빠져 나갈 거야. 항공사들이 재미를 보겠군."
   "그래도 60만 대군을 가지고 있어. 세계 5위의 병력이야."
   "북한놈들이 적개심을 키우는 동안 남쪽은 통일 무드에 젖었다가
간첩들을 체포하고 오락가락했어 병사들은 정치 군인들을 경멸하고,

병사들을 지휘할 장군들은 부패해서 수십 명이 목이 달아났지.
북한은 남한을 원수로 보는데 남쪽은 어설프게 북한과 동족이라고 착각하고 있어. 게임이 안돼."
   다시 술잔에 보드카를 채운 패트릭스가 머리를 저었다.
   "우리 미군만 놈들 말대로 수만 명이 희생될 거야,

그 빌어먹을 조그만 땅에서. 이젠 러시아를 견제할 필요가 없는데도‥‥‥‥
   "개자식, 한 달 후에 공격하겠다니, 이런 미친 놈이 어디 있어?"
   로젠스턴이 술잔을 내려놓고 패트릭스를 노려보았다.

술기운에 감정의 절제가 풀려 마구 말이 쏟아져 나온다.
   "그 동안에 남한이 군비를 재정비하고 선제 공격을 해와도 좋다니 말이야.

이런 놈들은 폭탄 한두 개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로젠스턴이었으나 말은 그렇게 흘러나온다.
   패트릭스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남한 쪽에 이 사실을 비밀로 할 수도 없어.

빌, 무방비 상태에서 놈들에게 당하게 할 수는 없단 말이야."
   "놈들에게 말려들고 있어."
    "그들 말대로 이라크와는 다른 집단이니까.

놈들은 바로 눈앞에 인질을 잡아 두고 있어.

그 인질 속에 주한 미군 4만 명도 들어가 있 fl ."
    비행기가 상하로 심하게 흔들렸으나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중국에 가야 할 것 같은데."
    이윽고 패트릭스가 한숨과 함께 말을 뱉었다.
    "그 빌어먹을 중국놈들은 시치미를 떼겠지만 말이야.

처음 들은 것처럼 놀라면서 시간을 끌겠지."
    "소용없어, 빌. 남한이 북한의 손안에 드는 것이 그들에게 여러가지로 이득이야.

차라리 일본의 손을 빌리는 게 나아."
    "자위대가 파병될까?그것도 한 달 안에 말이야.

지미, 한국인들이 일본군들을 그들 땅에 받아들이려고 할까?"
   "무슨 소리, 당장에 나라가 망하려는 판인데."
   "망하기는, 땅덩이는 그대로야. 국민들도 그대로 남아 있고.

남한쪽 학생들이 들고일어설 거야.

어떤 놈은 일본군의 도움을 받느니 북한군을 받아들이자고 할지도 모르지."
   패트릭스는 잔에 보드카를 다시 채우고는 이제 천천히 한모금을 마셨다
   "한 달이야, 빌. 한 달 동안 우리가 무얼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돼."
   "김정일을 암살하는 방법도 있겠지."
   "그건 불가능해. 아니, 효과가 없는 방법일 거야."
   패트릭스가 머리를 저었다.
   "김사훈 이야기를 들었지 않아? 전 인민이 전쟁을 원하고 있다고.
그들은 남쪽의 풍요한 재물을 탐내고 있어.

수령부터 말단 인민들에 이르기까지 말야."
   "그렇다면 전쟁인가?"
술잔을 내려다보면서 패트릭스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남북한의 전쟁이지 ."
   "두 달 후면 선거야, 빌. 전상자의 가족들이 집회 때마다 나타나서 소동을 피울 거야."
   "어쨌든 열흘 후에 다시 만나기로 했으니 그 동안에 방법을 생각해 보자구."
지친 듯 로젠스턴이 의자에 등을 기대자 패트릭스도 말을 멈추고는 창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비행기는 이제 어들을가르며 곧게 날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말은 공갈이 아닙니다, 대통령 각하. 이건 실현 가능성이 높은 일입니다. "
   키드먼이 클린트 대통령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방금 로젠스턴, 패트릭스 들과 위성 대담을 끝마치고 난 그들은

3분 3회전을 뛴 아마추어 복서들처럼 의자에 앉아늘어져 있는 중이었다.

CIA 국장 키드먼은 CIA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상황을 즐기는 스타일이었으나

정치색이 없어 클린트가 신임하고 있었다.
   "월리엄, 한국 전쟁이 일어나면 이건 쿠웨이트 전쟁과는 다른 형편이 돼요.

유엔군을 모집할 여유도 없어."
   클린트가 손톱 끝으로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우린 한미 방위 조약에 따라 즉각 파병하도록 되어 있단 말이
   "유엔군은 모이지도 않을 겁니다.

원체 격렬한 전쟁이 될테니까요.

지독한 인명 피해가 발생하게 됩니다. "
   "열흘이라고 했던가?"
   "기습 작전을 하겠지요.

하지만 북한측은 우리가 남한에 침공 계 획을 그대로 전해 주리라는 것도 계산에 넣고 있을 겁니다. "
   "자신만만해서 그런가?"
   "그들의 통보 내용을 듣는 즉시 남한의 미스터 리는전군에 비상을 걸 겁니다.

계엄령을 선포할지도 모르지요. 북한은 그것을 계기로 전시 체제로 돌입합니다.

주민들의 불만이 일시에 다른 곳으로쓸리게 되는 것이지요.

동양 속담처럼 돌멩이 하나 던져서 새를 여러 마리 잡는 효과를 얻게 니다. "
   "태평양,대서양 양쪽에 우리 함대를 한반도에 진입시킬 수는 있 fR구만."
   "시간은 충분합니다, 각하."
   "공군력은?"
   "우리가 3 대 2정도로 우세하지요. 하지만 북한도 이라크와는 다릅니다.

   그쪽도 초토화되TE지만 우리측 피해도 클 겁니다. "
   "공군과 해군만을 보낼 수는 없지요. 각하, 4만 명의 주한 미군이 문젭니다. "
   "미군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했다지 않소? 열홀 동안만 영내에 대기시켜 달라고."
   "불가능한 이야깁니다, 각하, 미군의 일부는 최전선에 나가 있습니다. "
   "본토에서 대략 50만 명의 부대를 보내야 돼요,

월리엄. 이건 월남전 이상이 될 거요, 피해로 말하면."
   "단기간에 내는 사상자로는 세계 전사상 최대 규모가 되겠지요."
   "막아야 돼."
   클린트가 손놀림을 멈추고는 키드먼을 바라보았다.
   "한국 정부에 통보를 해주시오. 월리엄, 당신이 KCIAB. 내가 미
스터 리에게 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나을 것 같소."
   "그렇게 하지요, 대통령 각하. 각하가 하시게 되면 나중에 절충할 여유가 적어집니다. "
   "열흘 후 재회담 때 놈들의 의중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아야겠고,
우리측의 조건도 준비해 두어야겠소.로젠스턴과 패트릭스가 돌아오면 다시 이야기합시다. "
   "당사자인 한국측은 어떻게 할까요? 기를 쓰고 끼여들려고 할텐데요,각하."
   클린트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입맛을 다셨다.
   "그렇다고 열흘 후의 재회담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 수도 없지 않소?"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들도 정보 기관이 있으니까요. 만약 비밀
로 했다가 알게 된다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
   클린트가 입술을 부풀리며 웃었다.
   "러시아와 중국은 그들에게 너무 멀어, 오히려 북쪽과.가깝지."
   "북한은 벌써 3년째 남한과의 대화는 우리를 통해 해오고 있습니다.

    각하, 남한을 끼워 넣을 특별한 방법도 없고 그럴 상황도 아닙니다. "
   "내 생각에도 이번에 남한이 끼여들지 않는 편이 회담진행이 잘 될 것 같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반발이 심하겠지요. 그들 생사에 관한 문제니까요."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그들이 참아야TR지."
   클린트가 의자에 둥을 기대고 앉으며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안전 기획부 부장 임떵섭이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는 다음날 아침인 1월 12일이다.

이영만대통령은내무부의 업무 보고회의 참가를 미루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발이 희끗희끗 내리는 영하의 날씨였고 창 너머로 눈 덮인 인왕산이 보인다.

대통령 비서 실장인 박종환이 =1를 따라 집무실로 들어왔다.
     "한강이 언 것은 몇 년 만이야? 쾌 되었지?"
     대통령이 앞자리를 손으로 가리켜 보이면서 두 사람에게 물었다.
     "네, 각하."
     박종환이 우선 대답부터 했다.
    "그것이 ‥‥‥‥
    "무슨 일이라도 있나?"
    박종환의 그 다음 말을 기다리지 않고 대통령이 임병섭을 향해 물었다.

60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단단한 몸매였고 혈색 좋은 얼굴은 붉다.
    "각하, 어젯밤에 CIA의 키드먼 국장에게서 전화 연락이 왔었습니다. "
    "키드면 국장?"
    "예, 각하. 중대한 일입니다. "
    임병섭이 상체를 꼿꼿이 세우자 대통령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긴장할 때의 버릇이다.
    "무엇인가? 남북 관계인가?"
    "예, 북한이 B월 10일 남한을 공격하겠다고 통보해 왔답니다. "
    박종환이 번쩍 머리를 치켜들었고 대통령의 온몸은 석고처럼 fof 졌다.
   임병섭의 말소리가 집무실을 다시 울렸다.
   "북한 수상 김사훈이 취리히에서 지미 패트릭스 안보 보좌관과

로젠스련 국무 장관을 이틀 전에 만났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통보했다는데요."
"그놈들, 제정신인가?"
어깨를 늘어뜨린 대통령이 혼잣소리처럼 말하자박종환이 헛기침 했다.
"그래서 미국측은 뭐라고 했답니까?"
"경고를 했다는군요. 전쟁이 일어난다고, 세계 대전이 "
"그래서요?"                                                  으
"각오하고 있다고 했답니다.

인민이 아사 직전이라고 하면서 굶어ㄹ죽느니 싸우다 죽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는군요."
   "저런."
   미친 놈 소리는 대통령 앞이어서 삼가는 모양이었으나 박종환의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각하, 키드먼 국장은 그들의 이야기가 엄포가 아니라고 합니다.
2월 10일 휴전선을 돌파해서 2월 20일에는남한전역을점령할계획이라고.

미군은 공격하지 않을 것이니 그쪽도 작전을 열홀만 지연시켜 달라고 했다는군요."
   대통령이 낮고 길게 헛기침을 하였는데 그것은 마치 신음소리처럼 들렸다.
   "그래서 미국측은 어떻게 하겠답니까?"
   잠자코 있는 대통령을 대신하듯 박종환이 다그쳐 묻고는 제 말에 대답한다.
   "한 달이면 준비할 수가 있어요.

본토에서 미군을 몇십 개 사단이라도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태평양 함대뿐만 아니라 대서양 함대까지도."
    그러자 임병섭은 입을 닫았고 그런 그의 얼굴을 대통령이 쏘아보았다.
    그의 시선을 감당하지 못한 임병섭이 머리를 숙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각하, 미국측은 태평양 함대와 대서양 함대를 모두 동해와 서해에 집결시킬 예정이라고 합니다. "
   "그리고 한미 방위 조약에 따라 본토의 병력을 공수해 보낼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
   "이것은 내가 클린트 대통령에게 직접 물어 보겠어, 실장."
   대통령이 박종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북한 놈들의 속셈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아야겠어.

공격 날짜까지 통보해 주고 미군더러 비켜 달라고 하다니.

1월 20일에 북측 고위급과 다시 만나기로 했다니 그때 그들의 의도를 조금 더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
   대통령이 숨을 들이 마시면서 허리를 폈다.
   "실장, 안보 회의를 즉각 소집시키도록."
   "예, 긱-하."
   "삼군 참모 총장과 군 사령관들도."
   "예 , 각·31. "
   "극비로 소집해. 언론은 철저히 통제시키고."
   "알겠습니다. "
   이번에는 대통령이 임병섭을 바라보았다.
46 밤의 대통령 제3부 -I
    "어처구니가 없군. 하지만 능히 그런 일을 저지를 만한 놈들이
야. "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각하."
    "인민은 굶주려 있어.남쪽에는 이제 이람에 고깃국이 널려 있다는 것도 모두가 알고."
    "예 , 긱fr. "
    "그것이 우리 잘못인가? 우리가 그들에게 죄의식을 느낄 이유라도 있나?"
   "이제 균형 외교는 끝났다. "
   대통령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 인민의 기아와 불만을 해소시키려고 남한을 침공한단 말이지?그래서 빼앗아 갖겠단 말이지?"
   "이제 그들은 당에서 선동하지 않아도 차ㄹH 전쟁이나 났으면 좋겠다는 풍조가 배어 있습니다, 각하."
   잠시 세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주한 미군 사령관 존 매그루더는 부관이 건네 주는 전화를 받아 들고는 힐끗 부관을 바라보았다.

눈치 빠른 부관이 몸을 돌리고는 방을 나갔다.
   "여보세요,토니,나요."
   "존, 골치 아픈 일이 생겼어. 급한 일이야."
   합참 의장인 토니 미첨과는 HATO에서 2년 동안 같이 근무했었다.

냉정해서 좀체로 흥분하지 않는 그가 오늘은 조금 들뜬 것같이 느껴졌다.
    "존, 북한놈들이 로젠스턴과 패트릭스를 불러다가 남한을 치고 내려가」3다고 했다는데 ."
   미첨이 서두르듯 말을 이었다.
   "2월 10일이야. 한 달 후에 침공하겠다는 거야. 이건 준 선전 포고라고 봐도 돼, "
"미친 놈들이군. 토니, 그런 공갈은 여러 차례 들어 왔어. 그놈들 입이 더러워서‥‥‥‥

   "존, 가볍게 생각하면 안돼. 놈들은 주한 미군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했어,

한 달의 기간을 준 것은 우리에게 준비할 시간을 준 것이야. "
   "그렇지, 한 달이면 충분해. 토니, 한미 방위 조약대로 본토에서 지상군이 공수되어 오고

태평양, 대서양 함대가 집결될 수 있어. 난 전시 작전권을 이양받게 될 것이고."
   "이봐,존."
   미첨이 답답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자네, 들떠 있군. 서두르는 것을 보니."
   "토니, 나는 당신이 들뜬 것 같은데."
   "존,내 말을 잘 들어.난 지금 대통령을 만나고 나온 길이야."
   "북한측은 열흘이면 남한을 점령하고 미국 정부와 우호 조약을 맺겠다고 해왔어.

우리가 준비를 하건 말건 침공하겠다는 각오야. 존,
이건 농담이 아니니까 신중하게 들어. 자레, 듣고 있나?"
   "듣고 있어."
   "존, 이건 단기간에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내는 전쟁으로 기록될 거야.

세계 역사상 가장 지독한 전쟁이 될 것이네. 자레가 제일 잘 알겠지만. "
   "이봐, 토니 ."
   매그루더가 와락 이맛살을 찌푸렸다.
   토니 미첨은 군인보다도 정치가에 가까웠는데 결국은 같은 연배인 데도

그가 미군의 최정상인 합참 의장에 먼저 올랐다.

그러나 매그루더는 그런 토니 미첨을 은근히 경멸하고 있었다.
   "도대체 날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리고 자낸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사상자 없는 전쟁이 어디 있어?체스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미국과 한국은 46년 전부터

한미 방위 조약이라는 군사 협정을 맺어 놓고 있단 말이야."
   "알고 있어, 존."
   "무엇 때문에 그런 난리를 치르면서 팀스피리트 훈련을 했는데?
이런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야."
   "존, 대통령의 지시를 자네에게 전하겠네. 잘 들어."
   미첨의 목소리가 딱딱해졌다.
   "미국 정부는 북한의 침공 통보를 한국측에 전해 주었어.

아마 지금쯤 청와대가 시끄러울 거야."
   "당연한 이야기를 길게 하지 말어."
   "이제 곧 한국이 발칵 뒤집힐 거야.

그 소동은 안 봐도 뻔해. 월남의 붕괴 직전 상황이 될 거야."
   "이봐, 토니, 자네가 상상력이 있는 사람인 줄은 몰랐는데,"
   "한국은 전시 체제로 옮아갈 거야.존,그렇지 않나?"
    매그루더의 비꼬는 말도 무시한 미첨이 물었다.
   "당연하지. 한 달 후에 북쪽 놈들이 쳐내려온다고 선포를 했다는

이쪽은 바지 저고리만 모였나?"
   "자넨 친한파가 다 되었군."
   "토니, 말이 빗나가는데, 자넨 친북파인 가? 아니면 국적이 없나?"
   "존,내 말을 잘 들어 "
   "듣고 있어."
   "남한이 전시 체제가 되면 한국군의 작전 통제권도 한미 연합사령관인 지레가 쥐게 돼."
   "당연하지."
   "대통령의 명령이야. 한국군을 철저히 출제하도록 해,

    대통령의 명령 없이는 절대로 움직이면 안돼, 존 "
   "북쪽 놈들이 쳐내려와도 말인가?"
   "대통령이 명령을 내릴 거야,존."
   "존, 자네는 미국인이야, 미국 군인이고. 그걸 명심하도록."
   "토니, 자네 몇 년 전에 보스니아의 작전에 참가했었지?"
   수화기를 바러 쥔 매그루더가 묻자 저쪽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매=1루더가 말을 이었다.
   "그때 우리 미군은 사상자가 한 명도 없었지.

대신 그곳에서 수십 만의 시민이 살륙을 당했어."
   "존, 자넨 너무 다혈질이야. 그런 이야기를 미국인은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냥 해본 소리야, 토니 ."
   "알고 있어, 존. 너하고 나 사이니까."
   전화기를 내려놓은 매그루더는 한동안 우두커니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의 의자 뒤쪽 벽 위에는 밥 클린트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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