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416. 솔롱고스(5)

오늘의 쉼터 2014. 8. 31. 17:27

416. 솔롱고스(5)

 

 

 

유빈

 

 

(1426) 솔롱고스-9

 

  

 “왜요?’”

하고 요기가 물었지만 조철봉의 시선이 닿은 발가락은 이미 잔뜩 오무려져 있었다.

 

요기의 두 볼이 상기돼었다.

“됐어.”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시선을 돌리자 요기는 발을 떼었다.

 

이제 감동이 일어났다.

 

욕실로 들어가는 요기의 뒷모습을 보면서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가끔 그런다.

 

여자의 홀랑 벗은 알몸이나 신음소리 따위에도 전혀 반응이 일어나지 않을 때도 있는가 하면

 

발 뒤꿈치쪽 발바닥의 때를 보고 울컥 충동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요기와 섹스를 하고 싶다는 욕망은 일어나지 않았다.

 

요기가 슬슬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을 뿐이다.

 

룸서비스로 아침 식사를 시켜서 먹은 조철봉이 최갑중에게 연락을 했을 때는 11시경이었다.

“준비 되었습니다.”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으로 갑중이 대뜸 말했다.

“차도 대기하고 있습니다.”

갑중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오랜만에 나온 관광 여행이다.

 

자유롭게 둘러볼 작정으로 아무한테도 일정을 이야기하지 않았으므로

 

주위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바트가 이번에는 승합차를 대기시켰는데 이것도 한국산이었다.

 

몽골의 차량중 6할 이상이 한국산이라는 것이다.

 

과연 승합차가 울란바토르 시내를 통과할 때 차체에 한국어로 교회 명칭을 붙인

 

버스도 보았고 태권도장 이름이 찍혀진 승합차도 지나갔다.

 

차만 보면 한국 같았다.

 

그러나 도로 포장이 덜 되어서 테를지까지 80킬로를 세시간 가깝게 걸렸다.

 

차가 흔들렸으므로 조철봉은 전신 안마를 받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테를지에 들어선 순간부터 조철봉은 감동했다.

 

이번은 성욕 때문이 아니다.

“와아, 저 하늘을 좀 봐.”

갑중이 창 밖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감탄했다.

“세상에, 저런 하늘도 있었구나.”

갑중은 지금 몽골에서 올려다본 하늘을 전에는 한번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조철봉도 하늘에 시선을 준 채 심호흡만 했다.

 

유리창을 열어놓아서 9월의 맑고 신 초원의 공기가 폐로 가득 흡입되었다.

 

푸른하늘은 티 한점 없이 맑았다.

 

조철봉도 이곳 저곳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몽골초원에서 올려다본 하늘만큼

 

맑고 푸른 하늘은 처음이었다.

“이런곳에서 일년만 산다면 10년은 더 젊어지겠다.”

조철봉도 탄성을 뱉었다.

“과연, 이러니까 자연을 보호해야 되는 거야.”

“이 하늘이 그러니까 옛날 칭기즈칸이 뛰어 댕기던 하늘이구만요.”

“이보다 더 푸르지는 않았겠지.”

둘이 주고 받고 떠드는 사이에 승합차는 초원속으로 더 깊숙히 들어갔고

 

나무 하나 없는 초원 위에 희고 둥근 겔이 드문드문 세워진 지역도 지났다.

 

테를지는 몽골이 세운 원나라가 다시 초원으로 쫓겨난 후에 몽골의 영광을 되찾고

 

마지막 기마제국을 세우려던 용장 갈단이 청의 강휘제가 이끄는 기마군을 만나

 

대결전을 벌인 장소이다.

 

여기서 갈단이 청의 서군에게 패한 때가 1696년이며

 

1924년 독립할 때까지 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자, 여깁니다.”

바트가 차를 세운곳은 평원 한 복판에 세워진 겔의 앞이다.

 

끝없는 평원 위에 겔만 10여개 세워져 있었는데

 

이 둥근 겔이 바로 몽골인의 거주지이며 숙소이다.

 

칭기즈칸도 여기서 자랐다. 

 

 

 

 

(1427) 솔롱고스-10

 

 

 

겔의 주인은 꼭 한국 시골의 오두막 주인처럼 생긴 노인이었다.

 

주름 투성이가 된 얼굴에 이가 서너대밖에 남아있지 않았지만 잘 웃었다.

 

웃는 얼굴은 하회탈을 닮았다.

 

바트는 겔을 세개 빌렸는데 하나는 저하고 운전사 몫이었다.

“요즘은 날씨가 좋아서 별이 잘 보인답니다.”

바트가 겔로 들어서는 조철봉의 뒤에 대고 말했다.

“7시쯤 양고기가 다 될것입니다. 그때 나오시지요.”

어린양 한마리를 잡기로 한 것이다.

 

겔 안으로 들어선 조철봉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둥근 방이었다.

 

문은 안에서 잠그게 되어 있었는데 안쪽에 이인용 나무 횡대가 놓여졌고

 

중심에는 난로가 설치되었다.

 

기둥에 가스등이 켜져 있어서 안은 밝다.

“좋구나.”

난로 앞쪽의 나무 의자에 앉은 조철봉이 웃음띤 얼굴로 말했다.

 

난로의 연통이 뻗쳐진 위쪽은 푸른 하늘이 보인다.

 

둥글게 일미터쯤의 크기로 뚫려있는 것이다.

“화장실이 딸리지 않아서 불편하실것 같아요.”

요기가 침대를 정돈하며 말했다.

“화장실용 겔은 바로 옆입니다.”

그러고는 요기가 구석쪽에 세워진 휘장을 들쳐 보였다.

“여긴 간단하게 씻는 곳입니다.”

몸을 기울여 그곳을 본 조철봉의 얼굴에 다시 웃음기가 떠올랐다.

 

임시로 샤워시설을 만들어 놓았는데 겔과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밤에는 추워요.”

난로에 장작을 넣고 불을 피우면서 요기가 말했다.

 

겔에 익숙한지 천장의 구멍을 좁히더니 곧 장작에 불을 붙였다.

“어렸을 때 여름에는 겔에서 살았어요.”

요기가 등을 보인 채 말했다.

“이쪽 저쪽 이동을 하면서 살았지요.

 

하지만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울란으로 돌아왔지요.”

“아버지는 뭘 하시는데?”

“전기 기술자.”

자랑스럽게 말한 요기가 덧붙였다.

“공무원이죠.”

“그렇군.”

“삼촌은 교사였는데 한국에 가서 돈을 벌어왔지요.

 

그래서 지금은 큰 상점을 하죠.”

“그런가?”

“지금도 내 사촌 한명하고 친척 한명이 한국에 있어요.”

몸을 돌린 요기가 조철봉을 똑바로 보았다.

 

어느덧 두눈이 반짝였고 불빛에 비친 얼굴은 상기되었다.

“사촌은 이삿짐 센터에서 일하고 친척 아주머니는 식당일을 해요.

 

두사람 모두 한달에 백만원씩은 번다고 했어요.”

“백만원.”

“여기서는 백만원을 모으려면 이년을 꼬박 일해야돼요.”

차분하게 말한 요기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가 풀었다.

“한국에서 룸살롱에 나가면 큰 돈을 번다고 하더군요.

 

한국 손님 하나가 그렇게 말했어요.

 

소개시켜 줄 수도 있다고.”

“….”

“한달에 5백만원도 번다고 했지만, 어깨를 늘어뜨린 요기가 가늘게 숨을 뱉었다.”

“몸 팔러 한국에 가기는 싫었어요. 그건 솔롱고스가 아녜요.”

그러고는 이번에는 머리까지 저었다.

“그래서 이제는 다 포기했어요.

 

여기서 룸살롱도 그만 다닐거예요.

 

내 분수에 맞게 살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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