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열전(仙女列傳) 14
14부
노 태영 암행어사는 잠시(暫時) 혼란(混亂)에 빠졌다.
사실 고을 사또가 주색잡기에 사로잡혀 선아 아가씨의 어머니와 고모를 옥에 가두고 아무 잘못도 없는
그녀의 아버지에게 곤장을 때려서 고통을 안겨 주고 그의 가정이 곤경(困境)에 빠지도록 했다는 사실은 정말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다.
그리고 선아 아가씨의 아버지가 말한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쭉 정리를 해 보면 고을 사또가 선아 아가씨의
어머니 외모에 혹(惑)하여 흑심(黑心)을 품고 나쁜 짓을 하려다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자기를 찾아 와 항의(抗議)를
한 선아 아가씨의 고모에게도 음흉한 생각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가 자기의 뜻대로 되지를 않자 두 여자를
옥에다 가두고 이들이 스스로 자기의 요구(要求)를 들어줄 때 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선아 아가씨의 아버지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고을 사또는 자기의 왼팔 오른 팔 같은 허 광수와 이 성근 이를
시켜서 선아 아가씨의 아버지를 아주 못 살게 괴롭혔다. 그기에 다가 고을 사또인 장 동구는 자기와
의형제(義兄弟)를 맺은 포도대장 왕 송하를 시켜 만일 자기의 말을 듣지 않으면 선아 아가씨의 가족(家族)들을
몰살(沒殺)시키겠다고 협박(脅迫)을 했다는 것이다.
노 태영 암행어사는 선아 아가씨의 아버지로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들을 낱낱이 다 알게 되자 이런 것을
해결하라고 임금님이 암행어사를 파견(派遣)한 것인데 지금 자기가 한가롭게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보아 온 것으로 보면 언제나 선아 아가씨는 선두(先頭)에 서서 직접(直接) 모든 사태(事態)를
수습(收拾)하고 능란(能爛) 능숙하게 일을 처리(處理)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선아 아가씨는 곧 바로 고을 사또가 있는 관아(官衙)로 출동(出動)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미주와 옥자는 앞장을 서고 서진이 너는 뒤를 단속하도록 해라! 그리고 송이와 문숙이 너는 중간에서 이끌고
영혜와 정희 수빈 이는 싸움이 벌어지거든 좌우를 날쌔게 공격을 하고 순례와 정순 이는 틈을 보아 옥에 갇혀있는
우리 엄마와 연아 고모를 구해오도록 해라! 그리고 지호 너는 항상 내 곁을 떠나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모든
일을 재빠르게 빈틈이 없이 처리하도록 해라!”
선아 아가씨가 모든 준비를 다 하고서 이제 고을 사또를 찾아 가려고 하는데 노태영이가 선아 아가씨 앞에 급하게
나서며 말했다.
“선녀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러자 선아 아가씨는 노태영이의 이런 행동에 영문을 몰라 물었다.
“갑자기 기다리라니? 왜 그러느냐?”
“네 이번 일은 산적들과 싸우는 그런 일이 아니옵니다.”
“응? 그게 무슨 말이냐?”
“선녀님! 잠시만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아니? 갑자기 왜 그러느냐?”
선아 아가씨는 갑자기 자기 앞을 가로막는 노태영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선녀님! 잠시만 저에게 시간을 주시면 선녀님께서 그리 수고를 하시지 않으셔도 그 포악한 고을 사또를 몰아내고
선녀님의 어머니와 고모를 무사히 풀려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응? 태영이 네가? 고을 사또 놈을 몰아내고 우리 어머니와 고모를 옥에서 풀려나게 한다고?”
노태영이의 말에 선아 아가씨는 영문을 몰라 반문(反問)했다.
“네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노태영이는 자신이 있게 대답을 했다.
“아니? 노형! 갑자기 돌았소! 무슨 한밤중에 봉창 문 뚜드리는 소리를 합니까? 싸움이라고는 전혀 할 줄도 모르는
노형이 어찌 그 포악무도한 고을 사또 놈을 처치하고 감옥에 갇혀 있는 우리 선아님의 어머니와 고모를 구해
온다는 말이오?”
선아 아가씨 곁에 서 있던 조 지호가 노태영이를 쳐다보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아니? 조형은 꼭 무슨 싸움을 잘 해야만 사또 놈을 제압(制壓)할 수가 있다고 생각을 하시는 모양인데 세상에는
싸움을 하지 않고도 나쁜 놈들을 모조리 처치(處置)를 하는 수도 있다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아니? 그렇게 하는 방법(方法)이 있다면야 오죽이나 좋겠습니까만 내가 지금까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보면 노형 같이 그렇게 순리(順理)대로 풀어나가는 것을 한 번도 보지를 못해서 하는 말입니다.”
노태영이의 말에 조 지호는 답답하다는 듯이 그를 보며 말했다.
“아무리 포악한 사또라고 해도 엄연히 임금님이 명하여 내려 보낸 벼슬아치관리(官吏)가 분명한데 함부로
죽였다가는 큰 봉변(逢變)을 당합니다. 그러니 제가 알아서 선녀님의 가족들이나 여기에 같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할 터이니 저에게 이번 일을 맡겨주십시오”
이런 노태영이의 말에 선아 아가씨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윽고 결단을 내린 듯이 말했다.
“그래 태영이 네가 그렇게 자신이 있게 말을 하는 것을 보면 필시 무슨 방안(方案)이 있는 것 같구나 그래 좋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것 너에게 이번 일을 맡길 터이니 아무런 후환(後患)이 없도록 잘 처리하도록 해라!”
“네 감사합니다!”
자기를 믿고 이번 일을 맡기는 선아 아가씨의 결단(決斷)에 노 태영 이는 감격(感激)하여 무릎을 꿇으며 고마움의
표시(表示)를 했다.
“아니? 맹녀님! 갑자기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가
아니옵니다.”
선아 아가씨가 노 태영 이에게 모든 일을 맡기자 미주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사옵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옵니다.”
서진이도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어허! 왜들 그래? 아무려면 태영 이가 하지도 못할 일을 스스로 한다고 제 발로 나서겠니? 내가 이번 일은
태영 이에게 모두 맡겼으니 그리 알고 있어라! 그리고 태영이 너는 혹시 우리가 도울 일이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도움을 청하도록 해라!”
“아 네 지금은 그저 제가 하는 대로 보고만 계시면 되옵니다.”
“응 그래”
노 태영 이의 말에 선아 아가씨는 그를 무척이나 신뢰(信賴)를 하는 듯이 말을 했다.
한참 의기(意氣) 충천(衝天)하게 고을 사또를 찾아가 작살을 내려고 했던 선아 아가씨의 일행은 집에서
노 태영 이가 모든 일을 다 마무리 짓고 올 때 까지 조용히 쉬기로 했다.
이러는 동안에 노 태영 이는 이들을 뒤로 두고 혼자서 밖으로 나갔다.
조 지호는 이런 노 태영 이의 행동을 염려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해가 저물어 갈 때에 밖으로 나갔던 노 태영 이가 선아 아가씨의 집으로 돌아 왔다.
“선녀님! 내일이 바로 고을 사또인 장 동구의 생일이라고 합니다.”
“응? 그래?”
“주막집에서 소문을 듣자하니 장 동구는 내일 자기의 생일날에 선녀님의 어머니와 고모를 주변에 있는 모든
관원들을 초청(招請)한 자리에서 자기의 뜻을 거역한 괘심 죄를 본보기로 다스린다고 합니다.”
“응? 그게 사실이냐?”
“네 그렇사옵니다.”
“그래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내일 제가 못된 사또의 생일잔치 자리에 찾아가 아주 담판(談判)을 짓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너를 믿고 기다려 보도록 하지”
선아 아가씨와 노 태영 이가 서로 주고받고 하는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던 조 지호가 보다 못해 한 마디 했다.
“노형! 괜히 영웅심(英雄心)에 사또 놈 앞에 나섰다가 오히려 선아님 어머니나 고모 보다 먼저 세상을 하직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시오?”
“뭐 조형이 그렇게나 나를 생각해 주는 것이 너무나 고맙기는 하오만 나도 다 해결을 할 방법이 있고 능력이
있으니 괜한 걱정은 안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노 태영 이가 이렇게 자신이 있게 말을 하자 옥자가 거들었다.
“지호야! 태영 이가 다 방법이 있다고 하지 않니! 그러니 태영 이가 알아서 잘 할 것이니 너무 걱정일랑 하지
말거라!”
“응? 아니? 옥자 누님은 언제부터 태영 이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습니까? 정말로 놀랍소이다.”
“아니? 지호 너는 어찌 그리 사람을 못 믿느냐? 태영 이가 아무려면 하지도 못할 일을 한다고 그러겠느냐?”
둘이서 서로 옥신각신 다투는 모습을 보던 송이가 한 마디 했다.
“서로 그렇게 다툴 것이 아니라 내일 이면 모든 것이 다 가려질 것이니 그냥 마음 푹 놓고 우리 한번 기다려
봅시다.”
“그래 송이 네 말이 맞다. 설사 일이 제대로 안 된다고 해도 우리가 곧 바로 동헌으로 쳐들어가 맹녀님의 어머니와
고모를 구하면 되니까 걱정 할 것이 전혀 없다”
서진이가 아주 자신이 있게 말을 하며 결론을 지었다.
다음날!
장 동구는 자기의 생일(生日)을 맞이하여 주변(周邊)에 있는 관헌(官憲)들을 모조리 다 초대(招待)를 하였다.
개성 부사(府使)와 황해도 관찰사 평양 감사도 오고 그리고 의형제를 맺은 포도대장인 왕 송하가 한양(漢陽)에서
올라와 참석을 하였다.
포도대장은 조선시대 한성부 경기도 등 수도권의 치안을 담당하던 포도청(捕盜廳)의 장관이다.
널따란 동헌의 대청마루에 산해진미(山海珍味)가 가득 차려진 잔치 상 앞에서 장 동구는 그를 축하하러
온 관헌들과 함께 온갖 세상 잡담(雜談)을 지껄이며 기생들이 따라주는 술을 받아서 마시고 흥에 겨워 있었다.
“그 듣자하니 저번에 사또의 명을 거역하고 옥에 갇혀서 있는 그년들이 아직도 그 고집들을 꺾지 않고 있다고
하던데 아예 오늘은 물고(物故)를 내어버립시다.”
포도대장인 왕 송하가 거만하게 술잔을 홀짝거리며 말했다.
“그렇잖아도 이참에 이곳 까지 왕림(枉臨)을 해 준 포도대장에게 내가 그 두 년을 내어주어 처리를 하도록 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네!”
왕 송하의 말에 장 동구도 맞장구를 치며 맞받았다.
“먼저 포졸 놈들을 그년들의 집으로 보내어 남편 되는 놈부터 소리 없이 처치를 한 후에 그 두 년을 끌어다가
한 방에 쳐 넣고 마음껏 내 좆을 그 년들의 보지 구멍에 힘껏 쑤셔 박아 주겠소!”
“나리! 거 참 정말 재미가 있겠소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허광수가 흥미를 돋우며 거들었다.
“아우! 우리 사또 나리를 우습게보던 년들인데 이제 제대로 걸린 것 같습니다.
우리 사또 나리는 이곳 고을 사람들의 이목(耳目)이 있어서 차마 그렇게 하지를 못했지만 한양에서 올라오신
포도대장 나리께서 제대로 그년들을 손보아 주신다니 옆에서 듣는 우리들이 속이 다 후련합니다.”
이 성근이도 옆에서 왕 송하를 부추기고 있었다.
“뭐 내가 그년들을 먹지 못해서 약간 섭섭한 것이 있지만 우리 포도대장께서 그년들을 올라타고 재미를 본다고
생각을 하니 그만 흥분이 폭포수처럼 일어나네 그려”
장동구가 은근히 아쉬워하면서도 자기를 대신하여 그년들을 처리해 주려는 왕 송하를 보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옷을 깨끗하게 차려입은 기품(氣品)이 넘치는 한 젊음이가 한참 잔치자리가 무르익어가는 동헌의 마당 안으로
갑자기 들어왔다.
모두들 시선이 그 쪽으로 쏠렸다.
어느 댁 젊은 도령인지 외모가 출중하고 몸가짐도 남다르게 뛰어났다.
“이곳을 지나가는데 웬 풍악 소리가 들려오기에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오늘이 바로 이 고을 사또 나리의 생일날
이라고 해서 이렇게 불청객(不請客)이 찾아 왔습니다.”
“아 그런가? 뉘 댁 자제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좋은 잔치 자리에 찾아왔으니 인정이 많으신 우리 사또 나리께서
어찌 그대를 냉대(冷待) 하겠소! 이리 로 와서 함께 실컷 축하주(祝賀酒)나 마시게!”
허 광수가 마치 선심을 쓰듯이 말했다.
“역시 고을 사또님은 다른 사람과 다른 데가 있습니다. 이렇게 지나가는 불청객에게도 후하게 대접도 하시니
그럼 축하주나 먼저 한잔 마시고 나서”
허광수의 말에 낯선 젊은이는 서슴없이 사또 앞에 다가가 상 위에 놓여 있는 술병을 치켜들더니 아예 잔도 없이
벌컥 벌컥 한 모금을 마시고 나더니 좌중을 한번 휙 둘러보고 물었다.
“그런데 이 중에 누가 사또 나리이시오?”
“엥? 누가 사또 나리라니? 아니? 이 사람이? 그 참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고 있네! 똑똑히 잘 보게 바로 저기 중앙에
앉아 계시는 분이 바로 사또 나리이시네 척 보면 모르겠는가?”
이 성근이가 웬 엉뚱한 황당한 소리를 하는가? 하는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것 참 잘 나가다가 웬 소린 고? 마치 초상집에 가서 실컷 울고 나서 누가 돌아 가셨느냐고? 묻는 것과 똑 같은
꼴이네”
포도대장인 왕 송하가 아주 못 마땅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아 그렇습니까? 나는 하도 소문이 별나서 이곳 사또 나리는 특별하게 생긴 사람으로 잘못 알고는”
낯선 젊은이는 태연하게 그들을 쳐다보며 대꾸했다.
“뭣이? 별난 소문? 그래 그 별난 소문이 어떤 소문인지 말해 보게”
장동구가 은근히 자기에 대한 소문이 무슨 소문인지 궁금하여 물었다.
“뭐 다른 것이 아니오라 오다가 들으니 이 고을 사또는 예쁜 여자라면 사족(四足)을 못 쓰는 이상한 인간이라고
하도 소문이 자자해서 궁금하기도 하고 또 소문을 들으니 김재균 이라는 사람의 아내인 박 복선이라는
여인을 탐내어 아래 것들을 시켜서 남몰래 납치를 해다가 욕을 보였다는데 그게 사실인지요?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항의를 하러 온 그의 시누이 되는 김연아 라는 처녀도 잡아다가 욕을 보였다는데 이런 소문이 정말로
사실인지 알고 싶습니다.”
“뭣이? 아니? 저 놈은 어디서 갑자기 획 나타나 가지고 나의 이 좋은 잔치자리의 흥을 깨는지 모르겠네?
그래 이 놈아! 내가 그랬다면 네 놈이 어쩔 것인데? 아니 그 보다도 저 놈이 하는 말이 정말 나의 속을 확 뒤집어
놓고 있네! 야! 뭣들 하고 있어! 어서 저 놈을 끌어내려 인정사정을 두지 말고 곤장을 치도록 해라!”
그만 장 동구는 화가 머리 꼭대기 까지 나서 큰 소리를 빽 질렀다.
“하~ 그것 참! 아니 소문이 그렇다는데 왜 그리 화를 내는지 모르겠네! 어디 다시 한 번 물어 봅시다.
정말로 그 소문이 사실이오?”
낯선 젊은이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이 화를 내는 장 동구를 보고 물었다.
“뭣이? 왜 그리 화를 내? 아니 저 놈의 새끼는 감히 이 자리가 어디라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고 있어?
당장에 저 놈을 물고를 내라!”
장 동구는 사또의 체면도 없이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사또! 잠깐만 고정하시지요. 그 철없는 젊은이에게 너무 그렇게 몰아서 붙일 것이 아니라 그저 소문을 듣고 와서
저러는 것이니 잠시 참으시고 내게 좋은 방안이 있으니 제가 잘 타일러 보내겠습니다.”
옆에서 듣고만 있던 황해도 관찰사가 지켜만 보다가 좋게 타이르듯이 말을 했다.
“이보게! 젊은이! 아무리 소문이라도 그렇지! 그런 불경스러운 말을 이런 자리에서 하면 어쩌나?
뭐 아직 세상의 물정을 잘 모르고 한 것 같으니 내가 자네에게 물어 보겠네 혹시 자네 부친이 지금 중앙 부처에서
무슨 벼슬을 하고 계시는가?”
“아 역시 황해도 관찰사님은 직책이 높아서 그런지 수준이 다르군요. 그렇지요 백성들을 돌보는 관리라면 당연히
이렇게 자상하게 사람들을 대해야 합니다. 저희 아버님으로 말씀을 드릴 것 같으면 벼슬 같은 것을 멀리하시고
그저 한가하게 책이나 읽으시며 초야에 묻혀서 조용하게 지내시는 분이십니다.
한 마디로 세상의 명예나 권력에 전혀 마음이 없는 분이십니다”
“아 그런가? 그러면 그저 백면서생(白面書生)에 불과하신 분인가 보네”
젊은이가 하도 대차게 나오기에 그 애비가 무슨 큰 벼슬이나 하는 사람 인 줄로 생각을 했다가 아무 이름도 없는
무명의 백면서생의 아들이라고 젊은이가 말을 하자 좌중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다 비웃음이 섞인 표정을 짓고는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요즘 젊은 것들은 천지도 모르고 날뛴다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전혀 자기의 분수도 모르는 것이지요!”
“어디 그 뿐입니까? 앉을자리 설 자리도 모르는 바보 천지 같은 젊은이들이 요즘은 너무 많아서 탈입니다”
황해도 관찰사도 젊은이가 그저 평범한 출신이라고 자기의 신분을 밝히자 별로 경계를 할 대상이 아니라고
느꼈는지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우리 저 젊은이에게 사또의 생일날에 대한 축하의 글이나 한 줄 지어서 올리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금까지 묵묵히 술잔만 기울이고 있던 황해도 감사(監司)가 한마디 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입니다. 외모를 보아하니 글줄께나 읽은 젊은이 같은데 사또! 어디 한 번 시나 한 줄 지어
보라고 하시지요.”
옆에 있던 평양감사도 덩달아 거들었다.
“그것 참 좋은 생각들이십니다. 그래 이 놈아! 네 애비가 책을 보는 백면서생이라고 하니 너도 글줄께나 읽었겠지?
오늘 나의 생일을 맞이하여 시나 한 줄 써서 올려 보거라!
만일 시 한 구절도 적지 못하면 당장 이 자리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니라!”
사또인 장동구가 얼굴에 희색이 만면(滿面)하여 의기양양(意氣揚揚)하여 큰 소리로 말했다.
“제가 별로 글을 잘 몰라서 시를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장 동구의 말에 젊은이가 몸을 사리자 왕 송하가 크게 비웃으며 말을 했다.
“아니? 상놈이 아닌 바에야 어찌 글 한 줄도 쓸 줄을 모른다는 말인가? 그렇게 자신이 없으면 양반 자제라 하지를
말고 머슴 노릇을 해야 마땅하지”
“뭐 그렇다고 그렇게나 비하(卑下)를 하면 어떡합니까? 꼭 그렇게 원한다면 한 줄 써 보지요”
왕 송하의 말에 젊은이는 글을 써 보겠다고 소매를 걷어서 올렸다.
“어서 저 놈에게 지필묵(紙筆墨)을 가져다주도록 해라!”
장동구가 아랫것들에게 소리를 지르니 시중을 들고 있던 관속들이 얼른 달려가 지필묵을 가져다가 젊은이 앞에
놓았다.
그러자 젊은이는 갑자기 생각이 잘 안 나는지 붓을 든 채로 깊은 생각에 잠겨서 있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네! 사또 나리께 엎드려 사죄를 청하고 조용히 물러가는 게 좋을 것 같네”
허 광수가 젊은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는 것이 좋을 것 같네 괜히 쓰지도 못하는 글을 썼다가 개망신 당하는 것 보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사또 나리께 용서를 빌게나”
이 성근이도 덩달아 거들었다.
그러나 젊은이는 붓을 잡은 채 이들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깊은 생각에 골똘해 있었다.
“뭐 보나마나 저 놈은 괜히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것 같으니 우리는 술이나 맘껏 즐겁게 마십시다.
나중에 저 놈의 안달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실컷 비웃어 줍시다.”
사또인 장 동구가 술잔을 들면서 모두에게 흥을 돋우었다.
“그럽시다. 나중에 저 놈이 사또 앞에 엎드려 비는 꼴을 생각하니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왕 송하도 술잔을 들어 마시며 말했다.
다시 기생들이 춤을 추며 한바탕 신나게 풍악을 울리고 있었다.
모두들 진탕하게 술을 마시며 옆에 낀 기생들과 노닥거리고 있는 사이에 젊은이는 간다온다 말도 없이 바람같이
사라졌다.
한참 후에야 갑자기 생각이 난 장 동구가 젊은이를 찾아보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보이지를 않았다.
“하! 그 놈이 재빠르게 도망을 쳤구나! 그럼 그렇지 제 까짓 놈이 제대로 글이나 쓸 줄을 알겠나?”
“그러게 말입니다. 나중에 부끄러움을 당할까봐 틈을 보아 몰래 달아났나 봅니다.”
장 동구의 말에 허 광수가 비위를 맞추며 거들었다.
“그 참 골치 아픈 놈이 제 발로 달아났습니다.”
이 성근이도 장 동구의 말에 가세를 했다.
“자 모두들 신이 나게 술이나 마십시다.”
장 동구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자 모두들 술잔을 들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러는 와중에 황해도 관찰사가 뭔가 기분이 찜찜하여 젊은이가 앉았던 자리에 가서 살펴보니 가지런하게 글을
쓴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술잔으로 눌러 놓은 종이를 펴서 읽어보니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15부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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