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경기유형문화재

ㅁ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51호 류상운 약재집 초고본

오늘의 쉼터 2014. 4. 10. 21:09

 ㅁ

 

 

종 목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51호
명 칭 류상운 약재집 초고본 (柳尙運 約齋集 草藁本) 
분 류

기록유산 / 전집류/목판본 / 기타

수량/면적 6책
지정(등록)일 2011.03.08
소 재 지 경기 양평군  옥천면 148-41. 옥천면 용천로 463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유민성
관리자(관리단체) 유민성
상 세 문 의 경기도 양평군 문화관광과 031-770-2473

 

일반설명

  

류상운(柳尙運, 1636~1707)의 본관은 문화()이며 자는 유구(), 호는 약재()·누실()이다. 좌랑 류성오()의 아들이다. 1660년(현종 1) 진사가 되고, 1666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교리 등을 지냈다. 1679년(숙종 5) 문신정시에 장원급제하여 1680년 대사간에 특진되었다. 이때 서인으로 경신대출척()이 일어나자 남인에 의해 추대되었다하여 복성군()을 탄핵하고 평안도관찰사로 나갔다. 1683년(숙종 9) 사은부사(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서인이 분당되자 소론에 속하여 노론 김석주()의 전횡을 탄핵했다. 1685년 호조판서 등에 이어 형조판서를 지냈다. 1694년(숙종 20) 인현왕후() 민씨를 비방하는 서한을 장희빈()에게 보낸 장희재()의 처형을 둘러싸고 노론의 반대에 부딪혀 사직하고 성밖에서 대죄했다. 그 뒤 우의정 ·좌의정을 지냈고 1698년 영의정 때 소론의 영수 최석정()을 변호하다가 삭직되었다. 1699년 다시 영의정에 복직되었으나 당쟁을 일삼는다는 노론의 탄핵으로 판중추부사에 전직되었다. 1701년 무고()의 옥사가 일어나 장희빈()까지 연루되자 세자의 생모를 사사()할 수 없다고 주장하다가 노론의 반대로 파직되었다. 이듬해 직산()에 유배되었다가 1705년 행판중추부사로 복직되었다. 나주() 죽봉사()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간()이다. 약재집(約齋集)은 목판본(木版本)으로 약재공(約齋公)의 십대주손(十代胄孫) 류민성(柳民城)의 집에 소장되어 있던 것인데, 그 내용을 펴 보니 시(詩)가 1,000여수이고, 소차(疏箚 : 上疏 箚子)와 인가문자로서 행장(行狀), 묘문(墓文), 시장(諡狀), 제문(祭文), 기문(記文) 등이 100여장이다. 본 문집의 집일본이 아닌 저자의 자편초고를 바탕으로 성서가 되었다는 점과, 성서 시기도 18세기에 전반부로 추정되며, 특히 전사본이 없는 유일본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인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