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대모산성은『三國史記』,『世宗實錄』에서 매초성(買肖城)의 기사를 근거로 매초성(買肖城)으로 비정(比定) 되기도 하며, 『新增東國輿地勝覽』,『萬機要覽』,『京畿誌』,『京畿邑誌』,『輿圖備志』,『大東地志』등에서 양주 대모성산(大母城山), 대모산성(大母山城)의 기록이 확인된다.
임진강과 한강 유역을 연결하는 길목에 자리한 대모산성은 주변의 산성 중 주 교통로에 위치하여 단지 방어만을 목적으로 축조된 것이 아니라, 행정치소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던 복합적 성격의 유적으로, 양주지역의 전술적 요충지 또는 치소로서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장방형으로 가공한 화성암계 변성암으로 높이 약 7.5m 내외의 외벽을 쌓아 올린 다음 그 외부에 삼각형 모양의 단면형태를 띤 4∼5m 높이의 보축을 덧대어 축조한 우수한 축성술과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는 현문식(懸門式) 성문구조, 축조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는 성벽 등 6∼7세기의 고대 축성기술을 구체적으로 밝혀낼 수 있는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1980년부터 1998년까지 7차례 이루어진 발굴조사로 635점의 금속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최고 관리 계층이 소유할 수 있었던 청동 팔찌, 청동 도장 등은 대모산성의 위상을 보여주며, 각종 농구류, 공구류 등을 통해 대모산성을 중심으로 그 관할지의 농업·수공업 생산력이 높았고 주변지역에서 생산된 많은 농산물과 수공업품이 대모산성으로 집중·관리되어 물류 거점의 역할도 수행했음을 보여준다.
양주 대모산성(북문지 주면 잔존 성벽) 양주 대모산성(동문지 발굴 유구 현황) 양주 대모산성 양주 대모산성 양주 대모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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