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 추성산성은 4~5세기 백제 토축(土築) 산성으로는 도성 이외의 지방에 존재하는 최대 규모의 성곽이며,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의 중첩구조로 남성(南城)․북성(北城)이 배치된 구조는 추성산성만이 가지는 특별한 평면구조로서 백제 성곽사 연구에 가치가 높다.
남성의 남문지(南門址)는 계곡부 중앙에 위치하여 타 지역의 문지와 다른 특징을 보이는 것으로 고대 수문(水門)에 있어 독특한 양식을 보여주며, 북문지는 바닥을 단단하게 다진 후 그 위에 부정형 석재를 이용하여 측벽과 바닥석을 조성하였다. 또 바닥면은 성내에서 성외방향으로 사면을 이루고 있으며 바닥석 하부에는 암거식(暗渠式) 배수로를 설치하였다. 이러한 문지구조는 한성백제 단계의 수문의 분화 발전단계를 밝혀 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초기 석재 가공과 관련된 철착(鐵鑿)과 토축 공정의 흔적이 확인되어 초기 석축과 토축 조성방식의 실체를 규명한 고고자료이며, 성벽의 축성방식은 초기단계의 판축기법(版築技法)과 성토다짐이 사용되어 우리나라 축성사에 있어 다른 유적에서 찾아보기 힘든 귀중한 자료이다.
남성의 성벽 기저부(基底部) 유구에서 출토된 심발형(深鉢形) 토기의 편년을 통해서 적어도 4세기 후반에 재지계(在地系, 토착계) 및 한성백제에 의해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지금까지 금강 유역권에서 조사된 토성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고고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자료이다.
북성에서는 광구소호(廣口小壺), 평저광구호(平底廣口壺), 원형 압인문 (押印文) 토기, 고배(高杯) 등 가야지역, 충남 서해안 및 영산강 유역의 토기기종으로 판단되는 외래기종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이들 외래기종 토기류는 대체로 4세기 후반의 시기에 집중되고 있으며, 가야와 영산강 유역권과의 국제 정세를 파악할 수 있는 실증자료라 할 수 있다.
또, 성벽 하부의 매납(埋納)유구는 백제 토축산성 중에서 의례행위를 알려주는 희귀한 자료로서 향후 지속적인 연구 자료 등 백제사 연구에 있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증평 추성산성 전경 남성 남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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