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대전문화재자료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2호 연산서씨·김익겸 정려

오늘의 쉼터 2012. 6. 28. 20:31

 

 

 

 

 

 

종 목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2호 

명 칭

연산서씨·김익겸 정려

분 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인물기념/ 사우

수량/면적

2기

지정(등록)일

2008.08.22

소 재 지

대전 유성구 전민동 산18-54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
관리자(관리단체) ?
상 세 문 의

대전광역시 유성구

 

일반설명

 

열녀 연산서씨(連山徐氏)는 참판 김반(金槃)의 처로 충신정려를 받은 김익겸(金益兼)의 어머니이다. 병자호란 때 피난지 강화도에서 적과 싸우다 순국한 아들 김익겸(金益兼)의 뒤를 따라 그 이튿날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1639년(인조 17) 국가로부터 열녀 정려가 내려졌다. 함께 있는 연일정씨(延日鄭氏)의 정려는 1752년(영조 28)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후손으로 대제학과 예조판서를 역임한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의 아내에게 내려진 것이다. 정씨는 죽천(竹泉)의 두 번째 부인으로 남편이 죽자, 이듬해 27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남편의 뒤를 따랐다. 국가에서는 그녀의 슬픈 열정을 기려 열녀로 칭하고 이 정려를 하사했다. 김반(金槃)과 연산서씨(連山徐氏)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김익겸(金益兼)은 그 조부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으로 자는 여남(汝南)이다. 21세에 생원시에 장원급제하였으나, 이듬해 병자호란이 일어나 어머니 서씨를 모시고 강화도로 피난하였다. 청병(淸兵)이 성을 공격해 오자 남쪽 성루에서 폭약을 터트려 분신 순국하였다. 1816년(순조 16) 유생들의 상소로 정려가 내려졌다.

 

 

 

 

연산서씨·김익겸 정려

 

연산서씨·김익겸 정려

 

연산서씨·김익겸 정려

 

연산서씨·김익겸 정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