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대전무형문화재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9호 무수동 산신제

오늘의 쉼터 2012. 6. 28. 19:48

 

 

 


종 목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9호

명 칭

무수동 산신제 (無愁洞 山神祭)

분 류

무형유산 / 전통연행/ 의식/ 공동체의식

수량/면적

단체

지정(등록)일

2011.10.28

소 재 지 대전 중구 운남로 90
시 대대한민국
소유자(소유단체)

무수동 산신제 보존회

관리자(관리단체)

무수동 산신제 보존회

상 세 문 의 대전광역시 중구 문화공보과 042-606-6284

 

일반설명

 
산신제의대전광역시 중구 무수동에서 해마다 음력 정초에 길일(吉日)을 택해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는 의례. 역사는 300여 년 전 무수동에 정착한 안동 권씨(安東 權氏)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 이후 무수동은 안동 권씨 집성촌으로 크게 부각되는 마을이 되었다. 입향조는 조선시대 때 호조판서를 지낸 유회당(有懷堂) 권이진(權以鎭)이다. 그는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의 사위이자 자신의 부친인 권유(權惟)가 세상을 뜨자 무수동에 장례를 치르고, 1707년(숙종 33)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마을로 이거하였다. 당시 풍수지리에 밝은 권이진은 마을 뒷산에 손수 제당의 위치를 정하고 해마다 산신제를 지냈다고 구전된다.이러한 사실은 1851년에 작성된 『무수동계첩』을 통해 뒷받침되고 있으며, 조선 후기 이래 줄곧 향론을 주도한 안동 권씨가 중심이 되어 지금까지 이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무수동산신제는 19세기 중엽에 중단될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른바 민중봉기 시대와 맞물려 인구의 과반수가 떨어져 나가고, 이에 따라 여러 대를 이어온 산신제는 폐지되거나행하더라도 조악하여 제대로 예를 갖추지 못했다. 자구책으로 1850년(철종 1)에 의논을 정하고 재물을 모아 산신제를 주관할 동계를 결성하였다. 이는 안동 권씨 집안에서 “산속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산신을 제사해야 한다”고 생각할 만큼 산신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전제되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까닭에 “한 마을이 흥하고 망하는 것은 제사로증명이 된다”는 명분을 내세워 산신제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나아가 “산신은 진실로 산의 주인이요, 우리 권씨 또한 동네의 주인이다”라는 논리로 동계 결성의 당위성을 역설하였다. 더욱이 무수동의 주산(主山)인 운람산은 인간에게 미치는 재복(灾福)이 여느 산과 사뭇 다른 신비스런 산으로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무수동산신제는 6·25전쟁 이후 동계의 파산 및 급속한 산업화의 여파로 몇 차례 중단과 복원이 거듭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최근에는 인근의 사찰에 산신제를 위임하기도 했으나 2008년 제49회 한국민속예술축제 출전을 계기로 무수동산신제보존회가 결성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무수동산신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