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서울유형문화재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259호 (강북구) 도선사 청동 종 및 일괄 유물

오늘의 쉼터 2011. 12. 15. 17:19



종 목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259호 (강북구)
명 칭도선사 청동 종 및 일괄 유물(道詵寺 靑銅 鐘 및 一括遺物)
분 류유물 / 불교공예/ 의식법구/ 의식법구
수량/면적11점
지정(등록)일2008.05.08
소 재 지서울 강북구  우이동 264번지 대한불교조계종 도선사
시 대고려시대
소유자(소유단체)대한불교조계종 도선사
관리자(관리단체)

대한불교조계종 도선사

상 세 문 의서울특별시 강북구 문화공보과 02-901-6412
 
일반설명
 
1972년에 청담대종사의 사리탑 및 사리탑비·사적비 등을 조성하기 위해 사리탑 부지를 터파기할 때 고려 범종 1점을 비롯한 청동시(靑銅匙) 5점, 청동저(靑銅箸) 1짝, 청동국자 2점, 동경 1점, 동전 1점이 일괄로 출토되었으며, 현재 청담기념관에 보관중이다. 출토지가 분명한 이 유물들은 전형적인 고려시대 금속공예품과 조선시대 상평통보(常平通寶), 그리고 일본 에도시대 동경이 서로 섞여 있는데 이는 사리탑 부지가 오랜 기간 존속된 건물지임을 증명해주고 있다.

청동종은 총고 35.5cm, 구경 23cm, 종두께 1.5cm, 종뉴고 13cm, 종뉴폭 11cm, 종신고 23.5cm, 종정폭 17.5cm, 상대 2cm, 하대 2.5cm, 유곽 가로 5cm 세로 4.8cm , 유곽대 1.5cm, 당좌 3.2cm 부분적으로 청녹이 있는 이 종은 음통이 있는 종뉴 아래에 평평한 이중정부(二重 頂部)를 한 종신이 연결된 형태의 고려시대 소종(小鍾)이다. 종뉴는 여의주를 든 사조룡(四爪龍)의 신체로 용통(音筒)을 삼았는데, 용의 눈과 용신인 음통의 표면에는 [◎]모양 도구로 용린(龍鱗)을 표현했고, 그 상단에는 만개한 연화를 장식했다. 종신에는 늘어진 곡선을 보이는 당초문으로 상대 ·하대를 표현했고, 상대 아래에는 4개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유곽이 있으며, 구연부 위쪽에 2개의 당좌가 있다. 당좌의 문양은 고려 전기에 유행했던 수파형(水波形) 국화문으로 이 종에서는 퇴조된 느낌이다. 일반적으로 당좌 문양은 연화문이나 보상화문인데, 이처럼 국화문으로 표현된 경우는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성화 6년명(成化 6年銘) 범종(1470)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종 정부(頂部)에는 종뉴의 좌우에 2.3cm X 1cm 크기의 용탕주입구가 남아있는데, 이중 정부의 윗선은 미리 제작해 둔 종뉴를 종신에 주입된 용탕이 식기 전에 자연 접합시킨 흔적이다(주형의 분리선). 종신에는 2개의 크랙선과 정부에 작은 구멍이 2곳 있다.
이 종은 고려후기 범종의 특징인 입상화문데(立狀花文帶)가 없으나 전체적인 제작수법, 상·하대의 문양, 사다리꼴이 아닌 사각형 유곽 및 밀집된 종유(鍾乳) 모양, 국화문 당좌 등을 감안하면 14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숟가락은 전형적인 고려시대 숟가락으로 3점은 완형이고, 2점은 부분 파손된 것이다. 대략 26cm 크기인 이 숟가락들은 늘어진 S자형으로 유엽형(柳葉形) 시면(匙面)과 연미형(燕尾形) 술총의 손잡이가 연결된 형태이다. 손잡이의 굽어진 부분에는 죽절문(竹節文)이 양각되었고 술총의 안쪽 가운데는 구멍이 뚫려있으며 좌우는 3단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런 숟가락은 중국 요녕성 금(金)·원대(元代) 묘장 출토 청동숟가락과 같은 유형인데, 고려 중기에 출현해서 12~13세기 유행했으며 고려 말기로 갈수록 연미형이 퇴화된다. 이와 똑같은 숟가락이 경남 남해군 송전리, 충북 중원군 사암리와 중원군 쌍봉리 등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젓가락은 길이 24.6cm, 폭 3mm 1짝만 남은 젓가락은 아무런 장식이 없고 단면은 사각형이다.

국자(杓子) 중 큰 것은 사용을 많이 해서 시면 한 쪽이 마모되었고, 손잡이 끝은 약간 결실되었다. 작은 국자는 안으로 오므라든 원형 시면에 연봉이 달린 죽절문 손잡이가 연결된 형태인데, 작지만 조형미가 돋보이는 유물이다. 도선사의 숟가락 및 국자들의 제작년대는 유엽형 시면과 연미형 손잡이·술총의 모양을 볼 때 13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와 똑같은 유물이 충남 괴산 동부리에서도 출토된 바 있어 유엽형 匙箸와 대·소 국자는 당시에 한 조합으로 부장되는 기물이었던 것 같다.


일본봉래문경(日本 蓬萊文鏡)크기 : 직경 12.2cm, 현재 폭 7cm 왼쪽 부분이 결실된 이 거울은 전체적으로 검은 빛을 띠고 청녹이 슬어있으며, 경면에 작은 알갱이 같은 凸문(文)이 가득해 전형적인 일본 거울임을 직감케 한다. 위쪽에는 나무가 표현된 3개의 산이 배치되었고, 아래쪽에는 파도가, 중간에는 소나무가지가 뻗어있으며 우측에는 횡으로 「松岡豊前守藤原吉次(마쓰오까부젠노가미 후지와라요시쯔구)」이라는 명문이 있다.
이 거울은 소나무가지로 보아 결실된 부분에는 가지가 크게 꺽어진 소나무가 있었을 것이므로 가마쿠라 시대(鎌倉시대) 중기 이후에 정형화된 소나무와 산악, 파도, 학과 거북으로 구성되는 봉래문경(蓬萊文鏡)으로 추정된다. 또한 밑 부분이 약간 안으로 오므라들어 병경(柄鏡)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명문에 보이는 「松岡豊前守藤原吉次」는 18세기 중엽에 오사카에서 활동한 유명한 주경사(鑄鏡師)인 “藤原政重(후지와라마사시게)”로 “正重”,“吉次”로도 썼던 동명인이며, “松岡豊前守”는 그의 직책이다. “藤原政重”의 거울은 주로 끝이 동글동글한 파도를 전면에 배치한 병경(柄鏡)이 특징으로 많은 작품이 남아있다.
따라서 이 거울은 18세기 중엽에 일본 大阪에서 제작되어 국내에 유입된 것으로 판단된다. 


상평통보(常平通寶)는 크기 : 직경 2.5cm, 내구 1cm 조선 숙종 4년(1678)에 주조된 상평통보(常平通寶)로서 표면에는 청녹이 많이 슬었고, 내구는 주조시의 주형(鑄型) 분리선이 남아있다.
도선사 출토 동종 및 일괄 유물은 동종이 일부 크랙이 있기는 하지만 원형을 잘 갖추고 있고, 청동시저와 국자, 동전도 상태가 양호한 편이고 동경은 반파되었기는 하지만 명문이 있어 자료사적인 가치가 있다.
그리고 출토지가 명확한 고려시대 유물이라는 점과 고려후기 범종 연구와조합기물로서 숟가락 및 국자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라는 점, 또한 일본 에도시대의 유명한 주경사(鑄鏡師)의 거울이 국내에 수입되어 무역사 및 공예사적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는 점에서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한다.



도선사 청동종 및 유물일괄

상평통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