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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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김취려 묘 (金就礪 墓) |
분 류 | 유적건조물/무덤/무덤/기타 |
수량/면적 | 1기 |
지정(등록)일 | 2010.12.06 |
소 재 지 | 인천 강화군 |
시 대 | 고려시대 |
소유자(소유단체) | 언양김씨대종회 |
관리자(관리단체) | 언양김씨대종회 |
상 세 문 의 | 인천광역시 강화군 문화예술과 032-930-3627 |
일반설명
김취려(金就礪)(?∼1234) 장군의 본관은 언양(彦陽), 시호는 위열(威烈), 음관(蔭官)으로 정위(正尉)에 임명되어 동궁위(東宮衛)를 거쳐 장군으로서 북동국경을 진압한 후 대장군이 되었다. 1216년(고종 3) 거란(契丹)의 군사들이 가족까지 이끌고 의주(義州)·삭주(朔州)·영주(寧州) 등지로 침입하여 식량을 약탈하고, 그곳을 생활의 근거지로 삼으려 하자, 후군병마사(後軍兵馬使)로 임명되어 그들을 크게 물리치고 금오위상장군(金吾衛上將軍)이 되었다. 다음해 다시 전군병마사(前軍兵馬使)가 되어 충청도 제천(堤川)까지 침입한 거란군을 크게 무찔러 격퇴시켰다. 1218년(고종 5) 그들이 다시 침입하자 원수 조충(趙冲)과 함께 이를 격퇴하였고, 이듬해 강동성(江東城)을 근거지로 저항을 계속하는 거란군을 협격(挾擊)하기 위하여 몽골군과 동진군(東眞軍)이 당도하자 이들과 연합하여 그들 잔당을 일소하고, 같은 해 의주에서 한순(韓恂)·다지(多知)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평정하는 등 공로가 많아 병부판사(兵部判事)까지 되었다. 성미가 곧고 청렴결백하여 군기가 엄하였고 부하들을 고루 사랑하였다. 조충과 함께 고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현재 그의 묘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 산15번지 화장산 자락에 있으며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7호이다. 또 한 곳 경기도 강화군 양도면 하일리에도 묘가 있다. 이 두 곳에 소재한 김취려(金就礪) 장군의 묘소 때문에 진위논쟁이 일기도 했으나 1981년(신유보 간행) 문중에서 두 곳을 다 수호하기로 결정했다. 언양 송대리의 묘소는 언제 천장됐는지 불분명하지만 이곳에는 1577년(선조10)에 세웠다는 위열공 묘비와 1857년(철종8)에 세웠다는 태지유허비(胎地遺墟碑)와 비각이 있다. 주목사였던 정곤수가 적은 묘비에는 공의 14세손 김천일이 경상도 도사로 임명돼 부임길에 언양현에 들려 공의 묘소를 참배 후 봉분을 새로 하고 석물 갖추어 표시해 놓았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또한 강화군 양도면 하일리 진강산에 있는 묘소는 1234년(고종21) 강화에서 사망한 뒤 장사한 곳인바 이 묘는 1909년 도굴꾼이 도굴하다 흘린 지석이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김취려 묘 김취려 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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