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코리안루트 탐사취재단’ 1만km 대장정 ‘우리역사 바로보기’
동아시아 고대문명 건설 주역인 우리민족사 새로운 시각과 접근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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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여행할 때 도시와 시골 곳곳에서 ‘문명성시건설(文明城市建設)’이라는 표어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내년 올림픽을 앞두고 길에 침을 뱉는다든가 아파트 베란다에 빨래를 너는 등 ‘비문명적’인 요소를 척결하자는 뜻이다.
고대 4대 문명 가운데 하나인 황하(黃河) 문명의 주인공이었고 역사시대에는 동아시아 문화의 중심이었던 중국이 이제 와서 “문명도시 건설에 매진하자”고 외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로 치더라도 지독한 아이러니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중국은 지금 경제뿐 아니라 역사, 민족사, 심지어 문명사까지 ‘문명적으로’ 바꾸려고 애쓰고 있다. 고구려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하여 우리와 마찰을 빚고 있는 동북공정은 그 한 단면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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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신 사해 유적 입구에 세워진 여신상. 중국 최초 용 형상의 돌무더기가 발견돼 ‘중화제일촌’ 으로 부르고 있다. <김문석 기자> |
동이족의 ‘요하문명’ 중국사 새로 써
1980년대 이후 중국 고고학계는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동이족(東夷族)의 영역이었던 요하(遙河)·
대릉하(大凌河) 유역에서 황하 문명보다 시기적으로 앞서고 질과 양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문명의 증거들이 무더기로 나왔기 때문이다. 1982년 사해(査海), 1983년 흥륭와(興隆窪)에서 발견한 주거 유적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집단 취락지로서 각각 ‘중화(中華) 제일촌’, ‘화하(華夏) 제일촌’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취락이 조성된 시기인 8200~7600년 전 이곳은 화하족의 중심지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출토된 유물인 빗살무늬토기, 옥장식(귀고리) 등도 동이족, 나아가서 한반도 문화 유형과 더 가까웠다.
뒤에 이어지는 이른바 홍산(紅山) 문화(6500~5000년 전)와 하가점하층(夏家店下層) 문화(4000~3500년 전)도 돌무덤, 석성, 제단 등과 같은 우리 고대 문화의 특징적인 모습들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요하·대릉하 유역 일대에는 이런 정체불명의 고국(古國) 문명 유적이 확인된 것만도 수천 개가 될 정도로 쏟아지듯이 나오고 있다.
중국 고고학계는 이제 중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사마천이 ‘사기’에서 제외시킨 주나라 공화 원년(BC 841) 이전의 왕조사 연대를 확정하는 ‘하상주 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를 통해 2000년 중국사의 상한선을 BC 2070년(하나라 건국 연도)으로 연대를 끌어올렸다. 올해부터는 전설상의 오제(五帝) 시대까지 1000년을 더 끌어올리기 위한 ‘중화문명 탐험공정’에 들어갔다.
그 중심에는 우리 동이족의 문화인 요하·대릉하 유적이 있다. 중국 고고학계는 이를 ‘요하 문명’이라고 명명하고 황하 문명과 더불어 중국 문명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 즉 황하 문명에 기초한 중화주의를 폐기하고 “동이의 요하 문명과 한족의 황하 문명, 그리고 남방·서북 문화가 중원으로 모여 완성된 문명”으로 거의 정리한 상태다.
심양(瀋陽) 요녕성박물관에서 열리는 요하문명 특별전에서는 요하 유역에서 출토된 28만 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 금우산인(金牛山人)의 유골 화석을 전시하고 있다. 이를 두고 중국 언론은 모든 인류가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한 여성, 이른바 ‘미토콘드리아 이브’의 후손이라는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이처럼 중국은 문명과 역사, 심지어 인류의 기원 문제까지 ‘중화’라는 용광로 속에 녹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 있었는가. 또는 어디에서 왔는가.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역사 왜곡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하면서 우리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해서는 이제껏 어떻게 접근해왔는가. 분단과 일제가 심은 식민사관에 알게 모르게 젖어 반도의 좁은 시야에서 민족을 생각하고 스스로 ‘반도사관’에 함몰돼 있지는 않았는가.
최근 ‘주몽’ ‘대조영’ ‘태왕사신기’ 등 북방 대륙을 무대로 한 역사 드라마의 붐과 더불어 우리 고대사와 민족사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재야뿐 아니라 강단 사학계에서도 우리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 민족사, 민족문제에 대한 폭넓은 시야와 다각적인 접근은 우리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우리 문화의 콘텐츠를 깊고 풍성하게 하기 위한 초석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트로이’ 풍납토성을 발견한 선문대 이형구 교수(고고학)는 중국의 ‘요하문명론’에 대응해 ‘발해문명론’을 주창하고 있다. 동아시아 고대 문명을 요하 유역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황하, 대릉하, 요하, 압록강, 유역을 포함하는 하나의 문화권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대 문명은 모두 강과 바다를 끼고 발달했고, 이 강들은 모두 발해만으로 흐르며, 이 일대의 문화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유사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황하·요하 문명을 발해 문명의 틀에서 본다면 동이족은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주역 가운데 하나다. 황제와 치우천왕의 충돌, 동이족의 나라인 상(은)나라와 기자조선 문제 등 우리 고대사의 많은 미스터리가 이 틀에서 실마리가 풀리고, 그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 교수는 20년 전 발해문명론을 주창한 이래 그 지역을 수시로 답사하며 많은 논문을 발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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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루트 탐사 과정에서 만난 우리와 비슷한 소수 민족들. |
‘반도사관’ 버리고 ‘해륙사관’ 필요
동아시아 해양사에 정통한 동국대 윤명철 교수(고구려사)는 이 교수의 발해문명론과 궤를 같이하면서 그 범위를 해양으로까지 확장한 ‘동아지중해론’을 펴고 있다. 유럽의 지중해처럼 발해만뿐 아니라 서해까지 포괄하는 지역을 하나의 문화권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해양과 대륙 부분을 배제하고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일본이 만든 반도사관”이라며 “서해와 한반도, 북만주 일대를 포함한 대륙을 연결시켜 바라보는 ‘해륙(海陸)사관’만이 우리 역사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역사관”이라고 말했다.
언어학자인 시미즈 키요시 순천향대 초빙교수는 윤 교수와 같은 맥락에서 ‘동아지중해’의 범위를 남해, 동중국해, 동해, 타타르해까지 확대한 일본 사학계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고구려어와 일본어 어원을 추적해 많은 유사성을 발견해낸 시미즈 교수는 “언어학적으로 고구려와 일본열도는 한 계통”이라며 동해를 사이에 두고 대륙과 한반도, 일본열도 간에 활발한 교류가 있었음을 강조했다.
삼양 요녕성박물관 요하문명전 전시실의 금우산인 유골과 복원 모형. 연대 측정 결과 28만 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로 나타났다. <김문석 기자> |
수년 동안 연해주 유적을 발굴해온 한국전통문화학교 정석배 교수(고고학)는 북만주뿐 아니라 연해주 북쪽 아무르강 유역까지 우리 민족사의 범위를 확장시켜나가고 있다. 정 교수는 “아무르강 중류지역에서 한반도 동해안지역이나 남해안, 그리고 제주도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평저융기문토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만주를 중심으로 요하 유역과 연해주까지 포괄하는 지역을 우리 선조들의 중심 활동 공간으로 보고, 이를 가칭 ‘환(環)만주 문화권’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우리가 역사시대에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그보다 시대가 올라갈수록 아무르강 유역, 초원지대, 시베리아와 더 많은 관련성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세종대 주채혁 교수(몽골사)는 우리의 고대사를 초원유목사의 틀에서 파악하고 있다. ‘주어+목적어+동사’형인 우리말의 구문 구조, 나라나 종족 이름, 생태 생업을 반영하는 수조(獸祖) 전설 등으로 볼 때 초원유목사를 제외하고 우리의 뿌리와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주 교수는 스키토-시베리안 언어로 고조선의 국호인 조선은 순록치기, 고구려 또는 고려는 순록을 가리키는 뜻으로 해석했다.
당뇨병 연구의 권위자인 서울의대 이홍규 교수(내과)는 질병 인자를 연구하다 유전인류학의 전문가가 됐다. 이 교수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한국인의 구성이 70%는 북방계, 25%는 남방계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한국인의 원형이 4만 년부터 1만5000년 전 사이에 바이칼호 밑 동굴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학설을 내놓기도 했다. 최근에는 러시아 학자와 공동 연구를 통해 동아시아 여성의 미토콘드리아 유전형은 남방, Y염색체는 중앙아시아-시베리아에서 온 것이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우리 신화와 비슷한 이야기 많아
알타이-시베리아의 무속, 신화, 설화를 채록·연구해온 부산대 양민종 교수(러시아문학)는 문화인류학적 입장에서 우리 문화와 역사를 새롭게 구명하고 있다. 나무꾼과 선녀, 콩쥐팥쥐, 흥부와 놀부, 심청 이야기 등 우리 설화가 지닌 코드들이 이 지역들의 설화 속에 담겨 있음을 발견했다. 양 교수는 특히 우리의 단군신화와 알타이-바이칼 지역의 게세르 신화를 비교 분석, 우리 문화가 북방에서 전래됐을 것이라는 고정된 사고를 깨고 오히려 역류했을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우리의 정체성과 역사,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고학, 역사학, 문화인류학, 유전학, 언어학 등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역사 이전 시대에 국경이 없었듯이 21세기는 나라와 민족을 초월한 글로벌 마인드가 필요하다. 우리도 이제는 한반도에서 벗어나 열린 눈으로 우리의 현실과 역사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민족에 대한 개념과 역사도 새롭게 써야 할 것이다.
경향신문 코리안루트탐사취재단은 눈을 크게 열고 2007년 7월 9일부터 8월 1일까지 23박24일간의 1만㎞ 대장정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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