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와 역사/뿌리찿기

김 충유 (金 冲裕)에 대하여

오늘의 쉼터 2011. 5. 21. 11:31

김 충유 (金 冲裕)에 대하여

 

 

경주김씨 경순왕 제3자 영분공의 장손 (두계공파) 두계공 김충유 입니다.

 

節義補遺(절의보유)

 

김 충유 (金 冲裕) : 생몰년 미상. 고려 후기 문신. 자는 광한(光漢)·선경(善卿), 호는 두계(杜溪)이며,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전라북도 남원(南原) 출신으로,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평장사(平章事) 김인경(金仁鏡)의 현손이다.

 

 

증조부는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김궤(金軌)이며, 조부는 전객시령(典客令) 김영(金瑩)이고, 부친 판도정랑(版圖正郞) 김서인(金瑞仁)과 모친 민부전서(民部典書) 형군소(邢君紹)의 딸 진주형씨(晉州邢氏) 사이에 4남중 장자로 출생하였다.

 

동생은 예의판서(禮儀判書) 수은당(樹隱堂) 김충한(金沖漢)이다.관직은 대광대부(大匡大夫) 문하찬성사 판도판서(門下贊成事版圖判書) 행 중산대부(行中散大夫) 문하중서시랑(門下中書侍郞)에 이르렀다.

 

일찍이 정세운·김득배 등과 홍두적을 토벌하고 개선하니 소인들이 무고(誣告)하여 충량들을 살상하는지라 벼슬을 버리고 전북 남원군(南原郡) 송동면(松洞面) 두신리(杜新里)에 거하며 다시 출세할 뜻이 없었다.

 

 

고려가 망함에, 동생 수은공 김충한과 두문동으로 들어갔다가, 그 후에 남원 지리산(智異山) 요천위로 피신하여 정학(正學)을 밝히고 사설(邪說)을 배척하며 형제가 우애롭게 살았다.

세상을 떠나면서 유언을 하되 장례는 간소하게 하고 비석도 세우지 말라고 하였다.

 

아들은 11남을 두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남원군 송동면(松洞面) 두신리(杜新里)에 신도비(神道碑)가 있으며, 송동면 두곡리(杜谷里) 두남사(杜南祠)에 배향(配享) 되었다.

 

 

 

 

 

 

 

 

節義補遺

 

 

冲裕 慶州人 字 善卿 號 杜溪 樹隱 冲漢 兄 與圃牧冶陶 爲道義之交與

 

 

弟 樹隱 初八 杜門洞 遯于 南原以杜各 谷遺戒薄 葬勿立石 晉于蘭 南原人麗朝學

 

士 當革命之日

 

遯八 頭流山 望松 京痛 哭恭靖朝恩命累下 終不屈節焉 李湯休 寧川人 侍中淩

 

孫官 翰林見時事

 

日非布衣角 巾徜徉山 水之間及革命先自 放火 廣明洞 所居室 送子 還鄕戒之 曰

 

具由告先墓 從今勿

 

赴科且曰吾則今無耵歸後欲 祀我以今 爲忌日 遂毁冠裂裳 八杜門洞 蘇後 晉州人

 

官節 度使慷慨有大

 

節魯陵賓天 遯跡于 南原鶉子 江上樑節里因等一 壇北向而哭 李耕隱題其亭曰 考

 

槃名其 壇曰慕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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