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ame Bovary - 구스타프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황혼이 깃든 여섯 시쯤 되어서야 겨우 마차는 보브와진느의 어두운 뒷골목에 멈추어 서고
그 속에서 한 여자가 내리더니 베일을 쓴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마른 나무에 한 번 불을 지피면 아주 잘 타오르기 마련이다.
보바리 부인은 다음 날 루앙에서 돌아왔으나 마음은 루앙에 있는 레옹에게만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루앙에 갈 핑계만 찾고 있을 때 남편이 수표 때문에 곤란을 받고 있는 것을 알자
법률적인 지식이 있는 레옹에게 의논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하고 루앙으로 나왔다.
그 곳에서 삼 일 간 두 사람은 밀월과 같은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두 사람은 배를 저었다. 달이 뜨자 그녀는 노래를 불렀다.
고요한 밤에 달빛 아래를
나는 노를 저어 그대 곁에서
웃음 지으며 뱃놀이를 했지...
레옹은 부인이 돌아가자 부인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백만장자가 고향을 찾아가듯 도도한 기분으로 용빌르 라베이에 들어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샤를은 레옹의 방문을 무척 반가워했다.
그 날 밤이 깊어서야 앞 마당의 좁은 길에서 보바리 부인과 레옹은 처음으로 단둘이 만났다.
로돌프와 만나던 그 자리에서 마침 폭풍우가 쏟아져
둘은 번갯불에 비치면서 우산 속에서 속삭였다.
그녀는 헤어진다는 것이 참을 수가 없었다.
"아아, 죽어버렸으면 이대로 죽는 대도 후회는 않겠어"
그녀는 남자의 팔 속에서 몸부림치며 울었다.
"안녕히 언젠가 또 만날 수 있을 테죠"
둘은 되돌아와서 포옹을 했다.
"레옹.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께"
그녀는 레옹에게 이렇게 말했다. 요행히도 그 기회는 쉽사리 왔다. 그녀는
피아노를 조금 칠 수가 있었다.
샤를은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은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그녀가 피아노 치는 것을 즐겨 들었다.
그녀가 좀더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해서 일 주일에 한 번 루앙에 가서
음악 교사에게 레슨을 받고 싶다고 하자 샤를은 두말없이 찬성하였다.
그로부터 그녀는 매주 목요일마다 루앙으로 나가 레옹과 밀회를 했다.
목요일만 되면 소풍을 서두르는 어린애처럼
남편이 아직 잠들고 있을 때 준비를 끝마치고 루앙으로 마차를 달리는 것이었다.
루앙에 도착하면 멀리서 마차를 내려 뒷골목으로 뛰어갔다.
어떤 모퉁이를 돌아서면 레옹이 벌써 기다리고 있었다.
모자 밑으로 나온 머리카락으로 레옹임을 곧 알 수가 있었다.
레옹은 앞서서 들어간다.
방에 들어가면 빨간 터키산의 비단 커튼이 천장에서부터 내려와 두르고 있다.
그녀는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가린다.
아름다운 팔로 가리울 때는 이 커튼의 주홍색과 대비되어 까만 머리와 횐 살결처럼 아름다웠다.
일 주일 동안 그리웠던 그리움이 한꺼번에 복받쳐 올랐다.
별로 할 이야기가 없을 때에는 그녀는 달콤한 우수에 잠기면서 말했다.
"아아, 당신은 멀잖아 나를 버릴거야.
그리고 결혼을 하겠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라니?"
레옹은 물었다.
"즉 세상 남자들 말이에요"
그녀는 대답했다.
그리고 서글프게 레옹을 밀쳤다.
"남자란 모조리 염치없는 물건이라니까"
그러면서 그녀는 다시 그에게 숨이 막혀버릴 듯이 속삭이는 것이었다.
"아아 움직이지 말아요. 입을 열지 말아요. 나만 바라보세요.
아이 한눈을 팔면 싫다니까"
그녀는 베이비라고 불렀다.
"베이비 내가 좋아?"
그녀가 레옹의 정부였다기보다는 오히려 레옹이 보바리 부인의 정부의 위치에 놓인 것이다.
그녀는 상냥한 말씨와 혼을 뺏는 듯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레옹은 말 할 수 없이 미묘한 여성미를 처음으로 맛보았다.
그녀는 남편에게 집에만 있을 때보다 한결 잘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낙화생 크림을 만든다든가
식사 후에는 루앙에서 배웠다고 새로운 왈츠곡을 치곤 했다.
그래서 남편은 그녀를 조금도 의심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사랑의 환락을 즐기려면 돈이 필요했다.
레옹의 박봉으로 모라자는 돈은 전부 그녀가 지불해야만 했다.
그 외에 집안 생활도 화려해져서 커튼과 양탄자 드레스 몇 벌 화장품 값 등
2천 프랑 이상의 계산서가 밀렸다.
남편이 알면 기절할 금액의 빚이었다.
남편 모르게 비밀로 한 것이 모르는 사이에 이자가 늘고
또 어음으로 바꾸어 쓰고 한 것이 눈이 쌓이듯 늘어만 갔다.
그녀는 신경질이 났다.
이젠 어음의 금액이 8천 프랑 가까이 되었다.
이럴 때 그녀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은 레옹과의 밀회뿐이었다.
레옹은 약간 겁이 났다.
향락으로만 줄달음치려는 그녀.
그리고 식욕과 향락이 거의 병적으로 늘어만 가는 그녀에게서 빠져 나오려 하면서도
그녀만 만나면 그녀의 세계로 휘말려 들어가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열렬한 사랑에도 고비는 있는 것이다.
그 고비를 넘기면 그 곳에는 암담하고 뛰어넘기 어려운 절벽이 있는 것이다.
레옹의 어머니는 레옹이 유부녀와 불의의 쾌락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자
레옹의 직장 주인에게 사정 편지를 냈다.
그 주인이 레옹의 장래를 염려하여 경고를 했다.
그 경고를 받은 레옹은 자기들의 애욕이 오래 지속할 성질의 것이 아님을 알고
두 번 다시 그녀를 만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험한 곳에서 장난을 하다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지기 마련이다.
보바리 부인도 이와 같은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레옹과 이별을 하자 그녀는 부채에 대한 기한이 임박하여 가산이 차압을 당하게 되었다.
그녀는 절망속에서 돈을 만들기에 바빴다.
처음엔 레옹을 찾아갔다.
가서 돈 이야기를 해 보자고
"뭐요. 8천 프랑이요?
어떻게 내가 그렇게 큰 돈을...미안합니다만 나는 실례하겠습니다. 안녕히"
레옹은 이렇게 꽁무니를 빼고 마는 것이었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그런 거액의 돈을 융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자
최후 수단으로 로돌프를 찾아가 애원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로돌프는 그녀를 보자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담배를 문 채 그녀를 맞았다.
"부인 오래간만이군요.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그는 지난 날의 정욕이 솟아오르자 그녀를 포옹하고 말았다.
"아아 용서해 주십시오. 내가 좋아한 건 역시 당신이었소
나는 바보요. 나쁜 놈이요. 그러나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언제까지나"
보바리 부인의 뺨에는 차가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이제는 매춘을 하러 왔구나'하고 생각하니 기가 막힌 자기의 운명이었다.
"아녜요. 아녜요"
그녀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자기는 지금 파산의 운명에 몰렸으며 그것을 구해 줄 사람은
당신 외에 없으리라 생각하고 찾아왔다고 이야기하자
로돌프는 갑자기 떨어져 서며 냉정해졌다.
"미안합니다만, 당신에게 융통할 만한 돈은 한 푼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마지막 시도도 수포로 돌아갔다.
금전의 요구라는 것이 사랑 위에 떨어지는 모든 회오리 바람 가운데
가장 차가운 그리고 가장 환멸을 느끼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엠마는 한참 동안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렇게 비굴한 말을 하지 말 걸 당신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군요.
당신도 다른 사람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군요"
그녀는 진심을 토로했다. 정신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보바리 부인이 돌아갈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그녀는 죽음의 길을 택하기로 했다.
아니 선택이 아니라 하나의 운명이 그녀에게 준 마지막 유일한 출구였던 것이다.
힘없이 집을 향하던 엠마는 남편의 병원에 들러서 마침 약제실에서
홀로 일하고 있는 약제사로부터 다락방 열쇠를 빼앗았다.
그리고 전에 눈에 익혀 둔 다락방 약장에서 독이라 쓴 흰 약을 한 주먹 집어서 입에 털어 넣었다.
시체처럼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리고 눈을 멍하니 뜨고 입을 벌리고 일어나려고 했다.
숨소리가 점점 그녀의 입에서 거칠어졌다.
마지막 자리를 마련하려고 온 신부가 라틴어로 속삭이는 기도도 빨라졌다.
기도 소리는 샤를의 참으려는 울음 소리와 섞여
때로는 애도의 종처럼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아아 상쾌한 날이야"
"낫으로 베어 버린다"
"장님이다. 장님이야"
엠마는 뜻 모를 소리를 부르짖었다.
그리고 깔깔대고 웃기도 했다.
잔인하게 미친 것처럼 절망적으로 웃었다.
"그 날은 바람이 몹시 불었다. 그래서 짧은 치마가 말려 올라갔어!"
경련이 그녀를 쓰러지게 했다.
모두들 가까이 갔다.
그녀는 이제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녀는 결국 죽고 말았다.
그것은 그녀가 그렇게 갈구하던 꿈과 사랑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꿈과는 거리가 먼 돈 때문에 죽은 것이다.
엠마가 죽은 며칠 후에 샤를은 로돌프와 레옹에게서 온 편지를 발견하고
그의 아내가 자기를 속이고 있었음을 알았다.
샤를은 아내의 부정에 문을 걸어 닫고 사람의 눈을 피했다.
그에게는 배반당한 분노 때문에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다.
그는 도무지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는 햇빛이 쪼이는 뜰의 벤취에 앉아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을 견디고 있었으나
언제까지나 그대로 둔다면 그는 영원히 그렇게 앉아 있을 것처럼 언제까지나 앉아 있었다.
저녁이 되어 그의 딸이 아버지를 찾아 뜰로 나왔다.
딸은 아버지가 장난하기 위해 그렇게 앉아 있는 줄만 알고
뒤로 가서 그의 아버지를 가만히 밀었다.
샤를 보바리는 그대로 엎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죽었다.
일체의 물건을 팔아 넘겼을 때 남은 돈이란 겨우 보바리 양이 할머니댁에 갈 여비뿐이었다.
그 할머니댁도 가난하여 보바리 양은 할 수 없이 방직 공장에 다녀야 했다.
해설
"보바리 부인"은 플로베르가 1852년부터 1856년 사이에 쓴 작품으로
"시골 풍속"이라는 부제로 출판되었었다.
"보바리 부인"이 출판된 이후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플로베르와 출판사의 편집자는 법정에 서게 되었다.
사실 이 작품의 초판은 원본 그대로가 아니었다.
출판사는 "보바리 부인" 출판 후에 반드시 물의가 있을 것을 예상하여
많은 부분을 삭제하고 어떤 부분은 간단히 요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프랑스를 지배하고 있던 도덕 관념은
이 소설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세계 문학사상 획기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법정 투쟁은 플로베르의 승리로 마감했고
그 이듬해인 1857년에 원본이 햇빛을 보았으며 플로베르는 일약 일류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보바리 부인"은 평범한 시골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 생활과 환경을 정밀하게 표현한 것으로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최초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으며 사실주의 운동의 기치가 된 작품이다.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의 로맨틱한 영혼에 대한 동경과
그녀를 둘러싼 지극히 평범하고 무의미한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대립과 파멸을 묘사함으로써 꿈과 현실의 차이가 빚어 내는 환멸
그리고 그 환멸 속에서 출구를 찾아 몸부림치는 비극적인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현실이 꿈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꿈이 현실과 너무 먼 곳에 있을 때
인간은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보바리 부인"을 통해서 플로베스가 하려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인간이 자신의 꿈에 충실했을 때 맞게 되는 현실적인 파멸을 경고하려던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결국은 파멸을 맞게 되더라고 꿈을 꾸게 되는 인간의 속성을 그려 낸 것인가?
진실은 현실 세계에서는 초라하며 비극적일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플로베르가 "보바리 부인"에 대해 의미 심장하게 언급한 말을 기억해보자.
"보바리 부인은 바로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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