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쓸쓸한 당신 2. / 박완서
“딸자식은 소용없단 소리가 무슨 소린가 했더니 이제야 알겠다니까요.
큰딸은 미리 그러려니 하고 길러서 몰랐는데,
막내는 우리집 양반이 유난히 애지중지하셨거들랑요.
저도 덩달아서 무슨 낙을 보겠다고 설거지 한 번을 안 시키고 떠받들어 길렀더니,
글쎄 시집가고 나더니 당장 부엌에 나와
제 신랑 먹을 거 먼저 챙기느라고 어찌나 법석을 떠는지, 그뿐인 줄 아세요?
즈이 아버지가 아침마다 드시는 녹즙까지 즈이 신랑은 왜 안 주냐고 따지더니
아침엔 저보다 먼저 나와서 제 손으로 녹즙을 짜가지고
이층으로 살짝 올라간다니까요.
이왕 짜는 길에 즈이 아버지 것도 한 잔 더 만들면 어때서
글쎄 딱 한 잔 제 신랑 거만 해가지고 가는 걸 보면 나는 얄미워 죽겠는데
우리집 양반은 속도 없이 뭐라는 줄 아세요? 이제야 철났다고, 기특해하는 거 있죠.
아무튼 막내사위라면 예뻐서 그저 이래도 허허허, 저래도 허허허,
입을 못 다무신다니까요. 우리 수정이도 시집 잘 갔지만
정서방이 장가 하나는 정말 잘 갔어요. 안 그렇습니까?”
“아무러면요.”
마지못해 그렇게 맞장구를 치면서도
이 여자가 누구 약을 올리기로 작정을 했나 싶어서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신혼의 딸 내외를 꽃본 듯이 얼르면서 옥시글옥시글 즐거워할
그 집안과 대비되어 떠오르는 것도 자신의 옹색한 살림살이가 아니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남편의 시골집인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외딴집 홀아비 살림의 썰렁함, 스산함 그런 것들이 옛날 영화처럼 구질하게 떠올랐다.
“그래도 사위는 백년손이라는데 어려움이 많으시죠.
저희 집으로 보내셔도 좋은데…….”
그녀는 인사성으로 그렇게 말해놓고도 말끝을 흐렸다.
말끝을 흐릴 수 밖에 없는 처지에 화도 났다.
안사돈끼리의 이런 미묘한 심리전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 앉은 남편은 고개를 길게 빼고 무대 위에서 진행되는
졸업식을 열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고, 아니에요. 정서방이 얼마나 소탈하고 붙임성이 좋다고요.
하긴 저희 집에 드나든지가 어디 일이 년입니까.
신입생 시절부터 서로 단짝 친구였으니,
사위 될 줄 모를 적부터 아들처럼 얘, 쟤 이름 부르고
먹던 밥상에 숟갈 하나 더 놓고 같이 먹고 했으니까, 정이 들 대로 든 걸요 뭐.
그래도 막상 사위가 되고 나니 어찌나 든든하고 귀여운지, 우리집 양반은 더해요.
며칠 전에 즈희 시아버님 제사였잖습니까.
우리 큰애네는 미국 가 있으니까 제사 참예 못 한 지가 오래 됐지만
작은아들이 엄연히 있는데 글쎄 턱 하니 아들 제쳐놓고
막내사위 먼저 잔을 올리게 하지 뭡니까.
조상님한테 새사람을 먼저 인사시켜야 한다나요.
우리집 양반이 워낙 소탈해서 제사에도 격식이 없어요.
영정만 모시고 지방도 안 써요. 제수도 격식보다는 생전에 좋아하시던 걸 주로 하죠.
지방을 안 쓰는 대신 우리집 양반은 마치 살아 있는 어른들한테 하듯이
자상하게 요새 사는 얘기도 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잘 봐달라고 조르기도 한다니까요.
이번에 새사위를 생면시키시면서도 어찌나 웃기시는지
제사가 엄숙하기는커녕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졌다니까요.”
안사돈은 지금 생각해도 다시 한 번 즐겁다는 듯이 호호거렸다.
새사람이라니, 아무리 세상이 두서없이 바뀌었다고 해도
수정이가 우리집 새사람이 되면 됐지 왜 우리 채훈이가 자기 집 새사람이란 말인가.
격식을 안 차리기로는 이쪽이 사돈집보다 한술 더 뜨는 집안이었다.
그녀가 시댁 제사에 참예해본 지가 언젯적인지도 생각이 안 날 정도였다.
남편이 지차고 큰댁이 외진 산골이라 새댁 적 빼고는 남편 혼자 다녀오곤 했다.
남편도 다음날 아이들 가르치는 데 지장이 있을 것 같으면 돈만 부치고 안 가기도 했고,
그 버릇은 그런 신경 안 써도 되는 교장이 된 후까지도 계속됐다.
제사에 채훈이를 데리고 가본 것도 아마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
제사는 자기가 보고 기억하는 조상에 한해서만 지내면 된다는 것이 남편의 주장이었다.
채훈이도 그런 환경에서 자랐으니 제사를 그닥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렇지. 제 처를 제 조상 제사에 참예시키기도 전에
제가 먼저 처가 제사에서 꾸벅꾸벅 절을 했을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영 고약했다.
아유, 못난 녀석, 더리쩍은 자식…… 생각할수록 치가 떨리게 분했다.
그녀는 야죽거리는 안사돈에 대한 적의를,
스스로 아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증폭시키고 있는지도 몰랐다.
당장 졸업식장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그녀는 옆에 앉은 남편의 손을 잡았다.
손잡고 나갈 사람이 필요했다.
남편은 손을 잡힌 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단상에서 진행되는 일에 온 신경을 모으고 있었다.
마치 이제나저제나 자기가 상 받으러 나갈
차례를 기다리는 모범생처럼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녀는 슬그머니 손을 거둬들이고 말았다.
남편에게 단상이란 뭐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단상을 좋아했다.
단상에만 올라가면 저절로 목소리에 권위적인 억양이 붙고,
아무도 흠잡을 수 없는 지당한 소리만 줄줄이 나왔다.
아무리 조그만 집단에서도 단상은 권위의 상징이었다.
그는 단상에 있을 때, 단하에 있는 단 한사람이라도
자기를 주목하지 않는 걸 참지 못했다. 주목만이 아니었다.
그가 단상에서 단하에 요구한 것은 경배였을 것이다.
단상에 있을 때 단상의 권위에 충실했던 것처럼
단하에서는 단하의 의무에 충실코자 하는 걸 누가 말리랴.
그런 그가 집안식구에 대해서는 전혀 권위주의적이지 않았던 것은
자상하거나 가족적이어서라기보다는 월급봉투만 축내지 않으면
가장의 권위는 저절로 따라오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별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심없이 받아들인 후에도 그렇고,
은퇴 후까지도 월급이나 연금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조금 축내고
전액 식구들한테로 가게 하려는 그의 노력은 거의 집념에 가까웠다.
요새는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뭐해 먹고 사는 것일까?
그녀는 조금 전에 잡았던 남편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톱밑에 때가 낀 투박한 손이었다.
그녀는 직접 잡아보았을 적에도 못 느낀 이물감에 허방을 밟은 것처럼 움찔했다.
박사, 석사 학위 수여식이 끝나고 학사 학위를 수여할 차례였다.
그녀는 아들이 학위받는 걸 똑똑히 봐두고 싶었다.
사진은 채정이가 찍기로 돼 있었다.
채정이뿐 아니라 그쪽 식구들 중에서도 서너 명이나 카메라를 들고 나가는 것 같았다.
졸업생보다도 더 많은 사진사들이 무대를 가려 서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안사돈이 다시 조근조근 이야기를 시작했다.
장내의 웅성거림 때문인지 귓불에 숨결이 닿을 듯 안사돈의 속삭임은 친근했다.
“보려고 애쓰지 마세요. 사진이나 잘 나오면 됐죠, 뭐.
무슨 행사든지 사진밖에 남는 게 뭐 있나요. 참, 아이들 결혼사진 잘 나왔죠?
사진사가 찍은 것말고도 카메라 사진까지 다 챙겨서 보내드렸는데.”
“예, 잘 받았습니다. 카메라 사진은 저희들한테도 꽤 있는데,
웬걸 그렇게 많이 꼼꼼하게 정리를 해서 보내셨어요?”
“저희는 아이들 자라는 모습뿐 아니라
걔들한테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사진으로 남겨놓는 게 큰 낙이랍니다.
취미도 되고요. 상이나 임명장 받는 사진도 안 빠트렸는데 혼인이야 인륜지대산걸요.
이렇게 꼭 기록을 남기다 보니,
기록 때문에라도 할 건 다 하고 살아야지 대충 넘어가면 안 되겠더라고요.
사진첩을 정리하다 보니 신혼여행 못 보낸 게 그렇게 서운하더라고요.”
“못 보내다니요, 저희가 안 가겠다고 해서 우겨서 그렇게 된 게 아니던가요?”
그녀는 계속해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 정색을 하고 따졌다.
결혼식을 마침 바캉스 시즌에 치렀을 뿐 아니라,
유학 갈 날을 한 달 남짓 남겨놓은 시점이라
채훈이는 채훈이대로 수정이는 수정이대로 각각 일이 많았다.
비자도 새로 내야 하고, 짐도 배로 미리 부쳐야 하고, 운전면허도 갱신해야 하고,
이런저런 해결 안 된 일 때문에 마음들이 한갓지지 않아
신혼여행은 미국 가는 길에 하와이에 들러서 며칠 쉬다 가는 걸로 대신하겠다고
저희끼리 합의하고 양쪽 부모는 통고만 받았는데 지금 와서 웬 트집인가 싶었다.
“그러문요, 그러문요. 그래도 부모 마음은 그게 아니더라구요.
더군다나 양가가 다 언제 또 해볼 것도 아닌 마지막 자식 경사가 아닙니까.
남 하는대로 다 해주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말인데요,
졸업식 끝나는 대로 제주도로 삼박 사일 정도 여행을 다녀오도록 예약을 해놓았습니다.
아직 걔네들은 모르고 있어요. 놀래켜주려구요.
까다로운 절차도 다 끝나고 모처럼 여유가 생겼으니 좋아할 거예요.
여행 다녀오자마자 다시 비행기 타야 하는 게 안됐지만
사나흘이라도 할일없이 서울에서 빈둥대면 뭘 합니까?
술친구한테 끌려나가기나 십상이죠. 안 그렇습니까?”
“그렇겠군요.”
그녀는 자신 속의 참을성이 한계에 다다른 걸 위태롭게 느끼면서 쓰겁게 대답했다.
안사돈은 무슨 요량인지 핸드백에서
흰 봉투에 든 걸 꺼내서 그 내용물을 살짝 보여주었다.
왕복 항공권과 하야트 호텔을 이용할 수 있는 쿠폰이었다.
보여주고 나서 그걸 가볍게 그녀의 무릎 위에다 놓아주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이따가 사부인께서 아이들한테 주세요.”
“왜요?”
그녀는 당장 귀밑이 닳아오르게 놀라면서 물었다.
“아, 아무나 주면 어떻습니까? 거기다 명토를 박아놓은 것도 아니고,
사부인께서 주시면 아이들이 더 좋아할 거예요.
저희 쪽에선 따로 여비나 쥐여주면 자연스럽지 않겠습니까?”
더할 나위없이 상냥하면서도 속셈을 드러내지 않는 이 여자의 진의는 뭘까?
잘못한 것도 없이 사람을 남루하고 비굴하게 만드는 안사돈의 수법에
그녀는 걸려 넘어진 것처럼 무참해지고 말았다.
혼란스러워 허둥대는 손길로 무릎 위의 봉투를 사돈 쪽으로 거칠게 밀어놓았다.
그러나 미처 어째 볼 틈도 없이 그 하얀 봉투는
이번에는 그녀 핸드백의 사이드 포켓 속에 꽂혔다.
민첩하고도 우아한 손놀림이었다.
분노인지 수치심인지 스스로도 분간 못 할 감정이 모닥불처럼 그녀의 표정을 달구었다.
하필 그때 졸업식이 끝나고 하객들은 서로 먼저 빠져나가려고 우르르 몰리기 시작했다.
안 넘어지려고 버팅기면서, 정신없이 사람들한테 밀리면서, 밖으로 나오니
오후의 열기가 지글지글한 엿물처럼 엉겨붙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지겹다는 소리를 몇 번이나 연발했다.
녹아내리듯이 조금씩 흐느적대는 인파 속에서
남편도, 채정이 내외도, 사돈집 식구들도 찾아질 것 같지 않았다.
그녀가 되는 대로 인파에 밀려난 자리엔 한 뼘 그늘도 없어서
그녀는 마치 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자포자기하게 서 있었다.
그래도 제일 먼저 그녀를 찾아준 것은 남편이었다.
남편은 저만치 큰 느티나무 아래 모여 있는 하객들을 가리키며
여기서 뭐하고 있느냐고 큰 소리로 나무라기부터 했다.
그녀는 남편을 보자마자 아직도 검정 핸드백에,
웨이터 주머니에 꽂힌 풀먹인 손수건처럼 삼각형으로 빳빳하게 꽂힌
봉투가 갑자기 생각나 얼른 안으로 보이지 않게 밀어넣었다.
남편을 따라 느티나무 아래로 갔다. 거기 다 모여 있었다.
채정이 내외만 겨우 아는 척을 하고 딴 사람들은
채훈이를 둘러싸고 번갈아가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채훈이는 꽃다발과 선물 꾸러미에 묻히다시피해서 바보처럼 싱글거리고 있었다.
식장에서 바깥사돈이 포장을 요란하게 한 선물 꾸러미를 들고 있는 걸 보고,
집에 데리고 있으면서 집에서 주면 됐지 뭣하러 식장까지 가지고 왔나
다소 아니꼽게 여겼었는데, 다른 친척들도 다들 선물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자식한테도 빈손을 부끄러워해야 되냐?
아무리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해도 부끄럽게 만들고 있었다.
어쩌면 아까 건네준 흰 봉투는 아무것도 준비 안 한
우리들의 빈손에 대한 일종의 야유나 동정이 아니었을까.
아들은 그들하고 단체로 또는 삼삼오오 끼리끼리 사진도 찍고
인사치레도 하느라 아직도 정신이 없고,
이쪽의 찍사를 자처하고 나선 채정이까지도
그 사진 찍기 좋아하는 족속한테는 손을 들었는지
중심에서 밀려나 관망을 하고 있었다.
채정이 졸업식 때도 그랬다.
상견례를 겸한 최초의 만남이었는데도 이쪽은 제쳐놓고
저희끼리 채정이를 끼고 돌면서 사진도 찍고, 요리 보고 조리 보면서
귀여움도 표시하고 넌지시 위엄도 보이느라 이쪽은 완전히 찬밥 신세였다.
그래도 그땐 별로 분한 줄을 몰랐다.
딸 쪽이니까 으레 그러려니 했고, 그 밑에 아들이 있으니
아들 가진 쪽은 어떻게 세도를 부려야 되는지를 보고 배울 기회다 싶은 생각도 있었다.
이를테면 마음만 먹으면 몇 곱으로 갚을 수도 있는
복수의 기회가 남아 있기 때문에 그닥 굴욕스럽지 않았다.
또 재학중에 애인이 생겨 졸업식에 벌써 시집식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걸
부러워하는 눈길을 의식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랬건만 이게 무슨 꼴이람. 누구누구 나무라 무엇하랴,
내 아들이 저 꼴이니. 그녀는 강력한 권리 주장처럼 눈을 부릅뜨고 아들을 주시했다.
채훈이가 마침내 엄마의 시선을 느낀 것 같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아들의 눈길을 그녀는 잽싸게 낚아챘다.
마치 잡아 끌리듯이 채훈이는 곧장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약간 계면쩍은 듯이 웃는 채훈이는 아무리 내 아들이라도 바보 같았다.
아들은 엄마를 버려둔 걸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이
얼른 학사모를 벗어서 그녀의 머리 위에 씌워주려고 했다.
채정이도 이제야 자기가 나설 차례가 왔다는 듯이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러나 그녀는 온몸으로 강력하게 반발하며 학사모에서 벗어났다.
엄마를 뭘로 보니? 그러나 그런 말이 미처 나오기 전에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그래 임자, 좋으면 좋다고 그럴 것이지, 괜시리 암상은 부리고 그래,
이 좋은 날. 훈아, 느이 엄만 싫단다. 나나 좀 써보자.
그 뭐시다냐, 학사몬가 뭣인가…….”
머쓱해 있던 채훈이가 구원받은 듯 아버지 머리 위에
학사모를 올려놔주고 정답게 팔짱을 꼈다.
채정이뿐 아니라 사돈네 식구 중 카메라 가진 이는 몽땅 무슨 살판이나 난 것처럼
일제히 효자 아들과 장한 아버지를 겨냥해 초점을 맞추었다.
졸지에 남편은 스타가 되었다.
남편은 마치 소 팔고 땅 팔아 대학 졸업시킨 70년대 농사꾼처럼
멍청하고도 순진하게 사진을 찍히고 또 찍혔다.
저렇게 좋아하시는 걸 보니, 정서방이 하루빨리 미국서 석사도 따고 박사도 따서
아버님을 초청해야 한다는 덕담도 흐드러졌다.
다시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고 시간은 야비다리를 피우며 흘러갔다.
누군가가, 연못가도 좋고, 민주학생 기념탑이 있는 노천극장 주변은 또 얼마나 좋은데
주변머리도 없지, 여기가 뭐가 좋아서 꼼짝을 못 하고
같은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또 찍느냐고, 그들의 사진찍기에 제동을 걸었다.
그 말에 아무도 이의가 없었던지 대식구가 웅성거리며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 있는 경치 좋은 곳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자연히 그 집 식구는 그 집 식구끼리, 이 집 식구는 이 집 식구끼리 어울려서 걷고,
채훈이는 양쪽 눈치를 다 보느라 엄마 곁에 붙었다가
장모 곁에 붙었다가 하느라고 요령껏 걸음을 조절하고 있었다.
북새통이 더 심한 곳을 향해 걸어가는 양가 식구들은 서로 놓칠 뻔하다가도
채훈이가 이어줘서 서로 못 찾는 불상사는 안 일어났다.
장모 곁에서 뭐라고 정답게 소곤거리던 채훈이가 어느 틈에 그녀 곁으로 다가와
팔짱을 낄 때마다 그녀는 이렇게 알랑거리는 버릇을 어디서 배웠을까
징그러워서 눈을 보얗게 흘겨주며 뿌리치곤 했다.
노천극장에서는 마침 재학생들이
마당놀이 연습을 하고 있어서 기념탑 근처는 인산인해였다.
슬쩍 자리를 피하기에는 알맞은 장소다 싶었다.
안사돈은 아마 그 동안에 봉투가 자리를 옮긴 줄 알 것이다.
그 동안에 그럴 수 있는 기회도 시간도 충분했으니까.
그녀도 줄창 핸드백 바깥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봉투를 의식 안 한 건 아니었다.
의식 안 할 도리가 없었다.
그건 줄창 내복에 달라붙은 가시처럼 그녀의 의식을 편안치 못하게 했으니까.
그녀는 사돈네 식구들과 채훈이가 함께 보이지 않는 틈을 타
남편의 소매를 힘차게 잡아 끌었다.
돌연 떠오른 생각이 결정적 기회와 맞물렸다.
왜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지,
그녀는 자신의 생뚱한 생각에 놀라서 가슴이 두방망이질하고 다리가 후들댔다.
그러나 탈출에 성공한 걸 알자 돈을 갖고 튀는 악당 같은 스릴과 쾌감으로
온몸이 파열 직전의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그건 쾌감이 아니라 살(煞)인지도 몰랐다.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힘이 살처럼 뻗치는 걸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남을 해코지할 수 있는 이상한 힘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 어찌나 좋은지,
웃음을 참을 수 없어 어금니를 물었다.
남편은 끌려오면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꾸 물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 화장실이라도 찾는 줄 아는지 남편은 순순히 따라왔다.
교문이 보이는 데까지 와서야 그녀는 헛된 흥분을 가라앉히고 덤덤히 말했다.
“우리가 자리를 비켜주려고 그랬어요.
처가에서 채훈이 내외를 오늘 제주도로 여행을 보낸다는군요.
졸업축하 겸 신혼여행 겸이라나요.
우리가 있으면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길게 인사해야 하고,
떠나보낸 후엔 양가가 저녁이라도 같이 먹고 헤어져야 할 것처럼 미적거려야 하고,
아직 서로 친하지도 않은데 그럴 거 뭐 있어요.”
“그래, 참 사돈댁에서 신경을 많이 쓰는구먼.
그래도 그렇지 잠깐이라도 인사를 하고 오는 게 도리지,
우리가 길 잃어버린 줄 알고 찾으면 어떡하라고.”
“걱정 말아요. 아까부터 내가 눈치줬으니까 채훈이는 아마 짐작했을 거예요.
적당히 둘러대겠죠, 뭐.”
“우리가 용돈이라도 줘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 당신이 어련히 알아서 잘했겠소만…….”
남편의 나중 말엔 다소 빈정거리는 투가 섞여 있었다.
어차피 손발이 맞아서 저지른 일도 아니건만 그녀는 울컥 야속했다.
그리고 아들 며느리의 즐거움을 잠시 훼방놓거나 하루쯤 유예하는 데 불과한 일을 위해
혼신의 힘을 소모한 좀전의 자신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으로부터도 밀려난 것 같은 느낌은
여지껏 겪어본 어떤 외로움하고도 닮지 않은 이상한 외로움이었다.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지만 하는 데까지 해볼 작정이었다.
몸을 달구던 정열은 환각처럼 온데간데없었지만
훼방놓고 싶은 심술은 아직도 충분히 남아 있었다.
“우리끼리지만 저녁이라도 먹고 헤어집시다.”
남편의 제안은 전혀 은근하지 않고 사무적이었다.
“이렇게 해가 높다란데요?”
살핏한 해는 어쩌자고 아직도 지칠 줄 모르고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입추 처서 다 지났다고는 믿기 어려운 더위였다.
“그래도 한끼 때우고 들어가는 게 안 낫겠소.
혼자 밥 해먹는 게 얼마나 을씨년스럽다고…….”
어쩌자고 이 남자는 이렇게 정직한 걸까.
그녀는 남편의 촌스러움, 초라함, 변변치 못함이 다 겉에다 주렁주렁 달고 있는
혼자서 밥 해먹은 티만 같이 여겨져 바로 보기가 싫었다.
“오늘은 당신 따라서 바라니나 한번 가볼래요.
왜 그렇게 놀라요? 내가 어디 못 갈 데 가본다고 했어요?”
바라니란 남편이 자리잡은 동네 이름이었다.
채정이한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채정이는 동네 이름이 참 예쁘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기분이 안 좋았었다.
행여나 누가 찾아오나 고개를 길게 빼고
동구밖만 바라보고 있는 늙은이들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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