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전남무형문화재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37호 옹기장(甕器匠) 해제

오늘의 쉼터 2011. 3. 11. 10:42

 


종 목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37호
명 칭 옹기장(甕器匠)
분 류 무형유산 / 공예기술/ 도자공예/ 도기공예
수량/면적개인
지정(등록)일 2004.09.20
해 제 일 2010.02.11
소 재 지 전남 강진군  칠량면 봉황리 157-2
시 대대한민국
소유자(소유단체)정윤석
관리자(관리단체)정윤석
상 세 문 의 전라남도 강진군 문화관광과 061-430-3225

설명

 

옹기(甕器)는 질그릇(지사독, 진흙만으로 반죽해 잿물(柚藥)을 입히지 않고 번조(燔造)하여 광택이 없는 그릇)과 오지그릇(질그릇에 잿물을 입혀 번조하여 광택이 나고 단단한 그릇)을 총칭하는 말이었으나 근대 이후 질그릇의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오지그릇을 지칭하는 말로 바뀌게 되었다. 또한 선사시대부터 꾸준하게 만들어졌던 대형 항하리를 이르는데, 제작 기술의 변화에 따라 점차 질적인 향상을 거듭하여 옹기로 정착되었다. 옹기는 고려시대까지 대부분 유약을 시유(施釉)하지 않은 경질도기의 수준에 머물렀으나 유약 사용이 일반화되는 고려 말 조선 초에 매우 큰 기물에도 유약을 시유하면서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전남지역 옹기 공방은 전통 도자(陶瓷)산업이 쇠퇴하는 19세기 이후 활발하게 설치되어 1990년대까지 운영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보성 미력리와 나주 신동리, 무안 몽평리, 강진 봉황리 등 일부 공방만 남아있다. 강진군 칠량면 봉황리 옹기의 경우 시원은 정확하지 않으며, 1970년대까지 마을이 옹기 제작으로 생계를 이었는데 이 때는 35m 길이의 대형 가마 4개가 운영되어 4개마을(봉황, 덕동, 보련, 사부) 50여 가구가 옹기를 제작하였으며 30여척의 옹기 유통 선박이 운항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산업사회가 되면서 대향 생산된 플라스틱과 유리제품으로 인해 옹기 산업은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84년 이후에는 이양현(李良炫, 1935∼1989)과 정윤석 2가구 만이 옹기를 제작하였는데 지금은 정윤석 일가 1곳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정윤석(鄭允石)은 어려서부터 옹기제작에 참여했으며 친가, 외가, 처가 등이 옹기 제작과 관련을 맺고 있는 장인이다. 전남 지역에서만 성행하는 전통적인 기법인 체바퀴타래미(판뜨기)기법과 전통도구를 사용하여 옹기제작을 하고 있으며 다른 지역에 비하여 가마 운영이 가장 활발하고 후계자 양성을 위한 교육 기능도 충분하여 가치가 있다.


◆ 국가무형문화제로 승격

 

 

 

옹기장


미력옹기

미력옹기

미력옹기

미력옹기

미력옹기

미력옹기

미력옹기

미력옹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