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서울무형문화재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6호 입사장(입사장)

오늘의 쉼터 2011. 3. 4. 12:21

 

종 목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6호
명 칭 입사장(입사장)
분 류 무형유산 / 금속공예/ / 
수량/면적

개인

지정(등록)일 2006.01.12
소 재 지 서울 서대문구 
시 대

대한민국

소유자(소유단체)

최교준

관리자(관리단체)

최교준

상 세 문 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문화체육과 02-330-1412

 설명


입사장이란 금속기물(金屬器物)의 표면이나 장신구의 표면을 날카로운 작은 정으로 쪼아 다른 금속을 끼워 넣거나 덧씌워 무늬를 만드는 기술을 가진 전통적 수공기능자를 말한다. 금속공예 중에도 입사공예는 매우 섬세한 공력이 드는 부분으로 이미 신라시대부터 높은 수준의 입사공예의 제작유물이 보이고 있다. 현재 전해지는 전통입사 방법 중 하나는 상감입사법(상감기법)이고, 하나는 쪼아서 넣는 입사방법(쪼음질기법)이다. 상감입사 방법은 기물(器物)의 표면에 도안대로 홈을 파고 넣는 방법으로 역사가 깊다. 쪼아서 넣는 입사방법은 입사되는 만큼의 전체 면적을 쪼아서 넣는 방법으로 역사가 짧다. 우리나라 입사공예는 B.C 1~2세기 경 낙랑(樂浪) 출토 유물에서 발달된 입사기교가 보인다. 가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분출토 유물중에 금은사로 입사된 칼자루등이 있다. 삼국시대에 이르러서는 그 유명한 석산신중의 칠지도를 비롯하여, 신라 고분에서는 입사화문환두대도(入絲花紋環頭大刀)가 출토되었는데, 이 입사도(入絲刀)는 매우 가는 금은입사(金銀入絲)로서 정교하게 장식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용구로서 청동제 향로 정병 향합등의 유물들을 보면 그 시대의 입사공예의 기술이 가장 화려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시대의 나전칠기와 입사상감법은 기교상 매우 뛰어나며, 그 뒤 조선시대로 상감입사미술의 문양이나 형태 등이 그대로 전승되었다. 은입사는 철물의 표면 치레를 위한 기법의 하나로 은사를 덧붙이는 것이 상례지만, 간혹 금입사로 사치를 극하기도 한다. 고려 내지 조선시대 전기에 있어 입사장의 기능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확연하지 않으나 대체로 청동기에 은선을 새겨넣는 일까지를 포함하지 않았나 추정된다. 그러나 조선시대 후기에는 그 지칭을 압축하여 철기에 시문(施紋)하는 은선붙이기 기법으로 굳혀졌다. 주로 철에다 은입사를 하는 이유는 은선의 상감이나 도금이 쉽지 않았던 데 기인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대체로 철제기물위에 날정질을 하여 입사한 기법이 성행했던 것으로 일상생활용구로 촛대 손화로 필통 담배합 등이 있고 무기류에도 투구 말안장 철퇴 등 다양하게 입사치례를 하여 궁중이나 귀족층에서 주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말기에는 입사장만 하더라도 경공장(京工匠) 즉, 공조(工曹)에 2인, 상의원(尙衣院)에 4인의 사금장(絲金匠)이 있다. 대한제국시대 서울의 광교천변에 많은 금속조각장과 금.은입사장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뒤에 이왕실(李王室) 미술품제작소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입사장으로서 당시 이왕실제작소에서 일했던 사람으로 이학응(李鶴應)이 있었으나 작고하고 홍정실 둥이 뒤를 잇고 있다. 기능보유자 최교준씨는 1967년 전통 금속공예 입문하였고, 1984년 ~ 1993년까지 한국 전승공예대전 특별상 2회 및 국무총리상을 수상 하였다.



입사장

강감기법 

강감기법 

표면처리기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