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설화전설

역사상 등장하는 최초의 열녀 도미부인[펌]

오늘의 쉼터 2011. 1. 14. 21:12

역사에 등장하는 최초의 열녀로 알려진 ‘도미부인’의 근거지를 놓고 하남시 등 일부 지역에서 보령의 도미부인 선양사업 등에 문제를 제기하며 논란을 조장하고 있어 보령시가 발끈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개루왕이 도미의 부인을 탐하여 정조를 시험하였으나, 하녀를 대신 방에 들여보내는 기지를 발휘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개루왕이 도미의 눈을 뽑고 배에 태워 내 버렸다. 개루왕이 도미의 부인을 욕 보이려 하자 꾀를 내 배를 타고 고구려로 달아나 그곳에서 도미와 해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보령시는 이같은 설화가 오천면 일대에서 전해져 오고 있으며, 설화 내용과 관련이 있는 지명이 남아있어 이를 근거로 지난 92년 상사봉 정상에 정절각을 만들었고, 2년 뒤인 1994년에는 도미부인의 사당인 정절사를 지어 95년부터는 매년 경모제를 올리고 있다.

특히, 정절사에 모셔진 도미 부인의 영정은 문화부로부터 표준영정(대한민국 표준영정 65호)으로 인정받았다.

2003년에는 경남 진해에 있던 성주 도씨문중의 ‘도미 정승 묘’가 주변의 개발로 인해 보령으로 이장되는 등 ‘도미부인 설화’의 근거지로서의 보령의 입지는 공고해 지게 됐다.

이런 가운데, 백제의 첫 도읍이었던 위례성의 위치와 내용의 전개과정, 지명 등을 근거로 하남시, 서울 강동구, 송파구 등이 도미부인 설화의 근거지임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31일에는 하남문화원이 주최한 ‘도미설화 학술대회’까지 열려 보령의 도미부인 설화를 위작으로 단정하면서 하남지역이 근거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 학술대회에는 대천문화원 관계자가 참석해 ‘보령 도미부인 설화’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것으로 알려져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에 따라 보령시는 일부 지역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보령시 한 관계자는 “백제 문화가 재조명되면서 이를 문화콘텐츠로 개발하려는 일부 지역의 시도가 있으나, 도미부인 설화는 이미 보령이 모든 주도권을 확보한 상태”라면서 “보령 근거설을 부정하는 측 역시 역사적인 증거가 아니라 그 지역에서 유래되고 있는 지명 등을 근거로 추측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하남문화원의 학술대회에서 제기됐던 하남시의 두미나루 유래설 역시 도미가 아니라 두물나루(한강 두 줄기가 합쳐지는 곳, 양수리)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해 보령시 관계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편, 이번 논란에 대해 보령시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보령에서는 지난 2002년 대천극단의 ‘도미부인’ 창작극이 공연된 이후 후속 활동이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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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내용)

 

<都彌>, <百濟>人也. 雖編戶小民, 而頗知義理. 其妻美麗, 亦有節行, 爲時人所稱. <蓋婁王>聞之,

召<都彌>與語曰: "凡婦人之德, 雖以貞潔爲先, 若在幽昏無人之處, 誘之以巧言,

則能不動心者, 鮮矣乎!" 對曰: "人之情, 不可測也, 而若臣之妻者, 雖死無貳者也.

" 王欲試之, 留<都彌>以事, 使一近臣, 假王衣服馬從, 夜抵其家, 使人先報王來. 謂其婦曰:

"我久聞爾好, 與<都彌>博得之. 來日入爾爲宮人, 自此後, 爾身吾所有也."

遂將亂之. 婦曰: "國王無妄語, 吾敢不順? 請大王先人{入} 室! 吾更衣乃進.

" 退而雜 一婢子薦之. 王後知見欺, 大怒, 誣<都彌>以罪,  

其兩眸子, 使人牽出之, 置小船泛之河上.

遂引其婦, 强欲淫之. 婦曰:

 "今良人已失, 單獨一身, 不能自持. 況爲王御, 豈敢相違? 今以月經, 渾身汚穢, 請俟他日, 薰浴而後來."

王信而許之. 婦便逃至江口, 不能渡, 呼天慟哭, 忽見孤舟, 隨波而至, 乘至<泉城島>,

 遇其夫未死掘草根以喫, 遂與同舟, 至<高句麗>< 山>之下. <麗>人哀之,  以衣食. 遂苟活, 終於羈旅.

三國史記卷第四十八.

 

 

도미는 백제인이다. 비록 소민에 편입되어 있었으나 의리에 아주 밝았다.

그의 아내는 예쁘기도 하고 행실에 절조가 있어 당시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개루왕이 이를 듣고 도미를 불러 말했다.

"대체로 부인의 덕은 정결을 으뜸으로 치지만 만일 어둡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

달콤한 말로 유혹하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도미가 대답하였다.

"사람의 정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지만 저의 아내와 같은 여자는 죽어도 변함이 없을 사람입니다."

왕이 이를 시험해 보기 위하여 일을 핑계로 도미를 붙잡아 두고 가까운 신하 한 사람으로 하여금

왕의 의복과 말과 종자를 가장하여 밤에 도미의 집으로 가게 하고,

사람을 보내 미리 왕이 온다고 알리게 하였다. 가짜 왕이 부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래전부터 네가 예쁘다는 말을 듣고 도미와 내기를 하여 이겼다.

내일 너를 데려다가 궁인으로 삼을 것이니 지금부터 너의 몸은 내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가 마침내 덤벼들려 하니 부인이 말하기를 "국왕은 망언을 하지 않을 것이니

제가 어찌 감히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청컨대 대왕께서는 먼저 방으로 들어가소서! 제가 옷을 갈아 입고 들어가겠습니다"

하고 물러나와 어여쁜 여종 하나를 단장시켜 모시게 하였다.

 

왕이 나중에 속은 것을 알고 크게 노하여 도미에게 죄를 씌워서 그의 두 눈을 뽑아 버리고

사람을 시켜 끌어내어 조그마한 배에 싣고 강 위에 띄워 보냈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 부인을 끌어 들여 억지로 간음하려 하니 부인이 말했다.

"이제 이미 남편을 잃어 혼자 몸으로는 스스로를 부지할 수 없사온데 더구나 왕을 모시게 되었으니

어찌 감히 어기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제가 월경으로 온 몸이 더러우니

다른 날 목욕을 깨끗이 한 뒤에 오겠습니다." 왕이 이를 믿고 허락하였다.

 

그녀는 곧 도망하여 강 어구에 이르렀다.

그러나 건널 수가 없어서 하늘을 바라보며 통곡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배 한 척이 물결을 따라 다가오자,

그녀는 그 배를 타고 천성도에 이르러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아직 죽지 않고 풀뿌리를 캐어 먹으며 살고 있었다.

그들은 마침내 함께 배를 타고 고구려의 산산 밑에 이르렀다.

고구려인들이 그들을 불쌍히 여겨 옷과 밥을 주었다.

그리하여 구차스럽게 살다가 객지에서 일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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