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서울기념물

서울특별시기념물 제29호 (강남구) 완남부원군 이후원 묘역(完南府院君 李厚源 墓域)

오늘의 쉼터 2010. 12. 10. 09:07

 

종 목 서울특별시기념물  제29호 (강남구)
명 칭 완남부원군 이후원 묘역(完南府院君 李厚源 墓域)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무덤/ 기타
수량/면적 2,039.6㎡
지정(등록)일 2009.12.31
소 재 지 서울 강남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전주이씨광평대군파완남부원군종회
관리자(관리단체) .
상 세 문 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문화공보과 02-2104-1262
 
일반설명
 
이후원(李厚源:1598~1660)은 광평대군 이여(李璵 : 세종과 소헌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5번째 아들)의 7대손이다. 인조반정 때 공을 세워 정사공신 3등으로 책록되고, 정묘호란 때는 총융사 종사관으로서 큰 역할을 하였으며, 병자호란 때는 척화파(斥和派)로 청(淸)에 결사 항전할 것을 주장하였다. 효종의 북벌계획이 추진될 때는 전함 200척을 준비하는 등 북벌계획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스스로도 학문이 높았지만 1657년(효종 8) 우의정이 된 뒤에는 조선 후기 대표적 성리학자로 후에 노론(老論)의 영수(領袖)로 성장한 송시열(宋時烈 : 1607~1689)과 송준길(宋浚吉 : 1606~1672)을 발굴, 중앙 정계에서 중용될 수 있도록 하는 등 인재 등용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이후원의 묘역은 1660년 조성된 초장지(初葬地) 금천(衿川) 삼석산(三石山)에서 광주(廣州) 세곡(細谷)을 거쳐 1704년 현 위치에 조성된 묘역으로서 다른 사대부 묘역들과 비교할 때 봉분 주변으로 호석(護石)을 두르고 해치상이 배치된 것이 특징적이다. 또한 묘역의 동남쪽 발치에 세워진 묘표는 조선 후기 대표적 성리학자인 송준길과 송시열이 각각 비문과 추기(追記)를 짓고, 당대의 명필인 이정영(李正英 : 1616~1686)이 비문의 글씨를 썼으며, 전서(篆書)를 잘 쓰기로 이름났던 당시 영의정 김수항(金壽恒 : 1629~1689)이 ‘우재상국이충정공묘표(迂齋相國李忠貞公墓表)’라고 쓰여 있는 두전(頭篆 : 전서로 쓴 묘표의 이름)을 쓰는 등 당대 명유학자들과 명필들의 글씨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자료로 정사(正史)인 실록 등을 보완하는 사료적 가치를 가진다.
 
 
 

완남부원군 이후원 묘역

 


완남부원군 이후원 묘역
 

묘역 내 해치상(향좌)

 


묘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