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충남기념물

충청남도 기념물 제57호 대전 김익희의 묘

오늘의 쉼터 2010. 10. 14. 19:26

 

종 목 충청남도 기념물  제57호 (대전시)
명 칭 김익희의묘 (김익희의묘)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무덤/ 봉토묘
수량/면적 30,000㎡
지정(등록)일 1985.01.01~1989.01.01
소 재 지 충남 충남전역
시 대 ?
소유자(소유단체) ?
관리자(관리단체) ?
상 세 문 의 충청남도 ?
 
일반설명
 
조선 후기의 문신인 창주(滄州) 김익희(金益熙, 1610∼1656) 선생의 묘소이다. 선생은 광해군 2년(1610)에 태어나서 효종 7년(1654)에 돌아가셨으며, 자는 중문(仲文)이고, 호는 창주(滄州)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손자로서 인조 11년(1633)에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벼슬을 지내는 동안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서 독전어사(督戰御史)로 활약하였다. 효종때는 승지, 대제학 등을 지냈고 벼슬이 판서에 이르렀다. 돌아가신 뒤에 영의정에 추증(追贈)되었고 문정(文貞)의 시호(諡號)를 받았다. 대전 대덕연구단지내 국립중앙과학관 뒤쪽 야산에 위치한 묘역은 선생과 부인의 묘를 비롯하여 그 일가의 묘역으로 조성되었다. 묘의 왼쪽에는 비석이, 그 앞에는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세워져 있는데, 글은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글씨는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와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이 쓴 것이다.

 

충청남도와 대전광역시 분리되면서 대전광역시 기념물5호로 재지정됨에따라 1989년1월1일 해지.
 
 
 
김익희의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