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경북기념물

경상북도 기념물 제55호 구미 채미정 <해제>

오늘의 쉼터 2010. 10. 13. 15:46

 

종 목 경상북도 기념물  제55호 (구미시)
명 칭 채미정 (採薇亭)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누정
수량/면적 1,141㎡
지정(등록)일 1985.10.15~2008.12.26
소 재 지 경북 구미시 남통동 249번지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해평길씨문중
관리자(관리단체) 해평길씨문중
상 세 문 의 경상북도 구미시 문화공보담당관실 054-450-6063
 
일반설명
 
채미정(採薇亭)은 고려말(高麗末)의 충신이며 대학자인 야은(冶隱) 길재(吉再) 선생의 충절(忠節)과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朝鮮) 영조(英祖) 44년(1768)에 건립된 것이다. 야은(冶隱) 선생은 고려가 망한 후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향에 돌아와 은거생활을 했으므로 중국의 백이(伯夷)·숙제(叔齊)가 고사리를 캐던 고사(故事)에서 이름을 따 '채미정(採薇亭)'이라 한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중앙 한 칸에 방을 만들고 사방을 마루로 한 특이한 정자이다. 야은(冶隱) 선생은 고려 공민왕(恭愍王) 2년(1353)에 출생하여 우왕(禑王) 12년(1386)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를 거쳐 문하주서(門下注書)에 올랐으나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왔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되자 태상박사(太常博士)의 관직을 내렸으나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 하여 사양하고, 선산(善山)에 은거하여 절의(節義)를 지켰다. 선생이 세종(世宗) 원년(1419) 67세로 별세하자 나라에서 충절(忠節)이란 시호(諡號)를 내렸다. 후세 사람들은 목은(牧隱), 이색(李穡),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선생과 함께 고려의 삼은(三隱)이라 일컬어 높은 충절과 고매한 학덕(學德)을 추모하였다. 이곳에는 채미정(採薇亭) 이외에 선생의 충절을 읊은 숙종(肅宗, 1671∼1720)의 어필(御筆) 오언시(五言詩)가 경모각(敬慕閣)에 보존되어 있고, 구인재(求仁齋)와 비각(碑閣) 등 건물이 있다. 이들 유적이 오랜 세월에 퇴락되고 황폐하여 1977년 정부에서 건물을 보수하고 경역을 정화하였다. 

 

2008년 12월 26일 명승 제52호로 승격지정.
 
 
 
 

채미정

 

채미정입구

 

경모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