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충남기념물

충청남도 기념물 제43호 부여 전백제 왕궁지 <해제>

오늘의 쉼터 2010. 10. 10. 23:34

 

종 목 충청남도 기념물  제43호 (부여군)
명 칭 전백제왕궁지 (傳百濟王宮址)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왕궁지
수량/면적 2,102㎡
지정(등록)일 1983.09.29~2001.02.05
소 재 지 충남 부여군 부여읍 부여읍 관북리 33외 7필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부여군
관리자(관리단체) 부여군
상 세 문 의 충청남도 부여군 문화관광과 041-830-2241
 
일반설명
 
부여(扶餘)는 백제의 옛 도읍지로서, 부여박물관(扶餘博物館)을 포함한 주변의 관북리(官北里) 일대는 당시의 왕궁지로 추정되고 있다. 관북리의 여러 민가(民家)에는 백제의 건축용 석재(石材)와 주춧돌이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박물관 경내에 있는 조선시대(朝鮮時代) 관아(官衙) 건물들에는 백제의 주춧돌과 석재를 가져와 사용하였다. 박물관 정원에 안치된 부여석조도 원래 이 근처에 있었고, 부여여자고등학교(扶餘女子高等學校) 교정의 우물은 하변(下邊)이 팔각(八角)으로 임금이 마셨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이곳은 부소산성(扶蘇山城)의 남쪽 기슭으로 부여 시가지(市街地)가 내려다보이는 좋은 입지(立地)조건을 갖추고 있어 백제왕궁지로서 가장 유력시되고 있는 곳이다. 1982년에서 1983년에 걸친 이 일대의 발굴조사에서 박물관 앞 공터에서 백제의 연못을 발견하였다. 연못은 정교한 호안석(護岸石)을 갖추었고, 그 내부에서는 연화문와당(蓮華紋瓦當), 인명와편(印銘瓦片), 철제창(鐵製槍), 화살촉, 개원통보(開元通寶), 토기, 은제귀걸이, 대바구니 등 다양한 유물이 대량 수습(收拾)되었다. 특히 백제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나무패에 글씨를 쓴 목간(木簡)이 출토되었다. 조사 당시 건물지(建物址) 기단성토층(基壇盛土層)이 일부 확인되었으며, 그 성토층 아래에서는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 무문토기(無文土器)가 여러 점 나와 이곳은 선사(先史) 이래 인적이 이어져온 곳임이 밝혀지기도 하였다. 

 

사적 제428호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으로 승격지정됨에 따라 2001년2월5일 해지.
 
 
 

 

전백제왕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