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제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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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제주속오군적부(濟州束伍軍籍簿) |
분 류 | 기록유산 / 문서류/ 관부문서/ 소지류 |
수량/면적 | 1책 58면 |
지정(등록)일 | 2002.04.17 |
소 재 지 | 제주 제주시 국립제주박물관 |
시 대 | 조선시대 |
소유자(소유단체) | 제주시 |
관리자(관리단체) | 제주시 |
상 세 문 의 | 제주도 제주시 문화체육과 064-750-7224 |
일반설명
17세기 후반인 조선 숙종(肅宗, 1661~1720) 때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 지역 속오군(束伍軍)의 소속과 신원을 적어 놓은 명부로, 속오군(束伍軍, 정군이 아닌 예비군 조직으로 선조 27년 12월부터 지방에 설치되기 시작하여 선조 29년경에 마무리됨)은 조선 후기 속오법(束伍法)에 따라 편성된 예비군 조직인 지방 군대이며 속오군적부(束伍軍籍簿)는 지금의 병적기록부와 같은 속오군의 명부 자료이다. 『제주속오군적부(濟州束伍軍籍簿)』는 화첩인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보물 제652-6호)를 해체, 보수하기 위해 표지와 속지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제주속오군적부(濟州束伍軍籍簿)』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 제주도의 속오군 총수는 3,369명으로 추정된다. 가로 42㎝, 세로 44.5㎝ 크기의 한지 58면으로 되어 있다. 중앙의 판심을 중심으로 한 면에 13칸, 양면에 26칸이 되도록 줄을 쳐서 26명의 인원을 적을 수 있도록 하였다. 각 행에는 연(나이)·부(父)·계(係: 소속 고을)·주(住: 거주지)·면(面: 얼굴 모습)·수(鬚: 수염 상태)·흔(痕: 흉터)·예(藝: 기예)자 등의 목활자를 위아래로 띄엄띄엄 찍고 있으며, 그 사이사이에 필요한 인적 사항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천총(千摠), 파총(把摠), 초관(哨官) 등은 직명·성명과 계·주·예만 기록되어 있다. 각 행의 상단에는 대오 편성의 순서와 그 아래로 직역·성명·나이가 쓰여 있다. 대오는 천총과 천총차비군, 파총과 파총차비군, 초관과 초관차비군, 기총·대장·대원의 순서이며 그 아래에 직역이 기록되어 있다. 직역은 대부분 시노(寺奴)·사노(私奴)·정병의 3종이며, 나이는 15세에서 59세까지 속오군에 편입되어 있는데, 이 점은 정군이 16세부터 60세까지를 그 대상 연령으로 하는 것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연령층은 20대가 가장 많으며 그 다음으로 30대, 40대의 순이고 50대에 와서는 그 수가 급격히 감소된다. ‘부(父)’자 아래에는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고 있는데, 동일한 부명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형제가 같이 속오군에 편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으로 ‘계(係)’자 아래에는 제주목·정의현·대정현 등의 소속 고을, ‘주(住)’자 아래에는 거주지의 마을 이름을 적고 있다. ‘면(面)’자 아래에는 얼굴색이나 얼굴 모습을 적고 있는데, 얼굴색은 대부분 철(鐵: 검다)로 표기하였으며, 전(縳: 희다)으로 표기된 곳도 있다. 얼굴 모습은 마(麻: 곰보), 잠마(暫麻: 조금 곰보)로 표기하였다. ‘수(鬚)’자 아래에는 수염이 난 상태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생김새나 신체상의 특징을 적은 파기(疤記)가 기록되어 있다. 끝으로 ‘예(藝)’자 아래에는 그 사람의 기예를 창(鎗)·사(射)·포(砲)·도(刀)의 네 가지로 나누어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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