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경남유형문화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67호 합천군수 이증영 유애비

오늘의 쉼터 2010. 8. 28. 08:33



종 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67호
명 칭

합천군수 이증영 유애비 (陜川郡守 李增榮 遺愛碑)

분 류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수량/면적

1기(基)

지 정 일2001.12.20
소 재 지경상남도 합천군 죽죽길 80 (합천읍, 연호사)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합천군

 

설명

 

이 비는 합천군수를 지낸 적이 있는 이증영(?∼1563)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이 비석은 조선 명종 14년(1559)에 세워진 것으로, 비문을 지은 이는 남명 조식(1501∼1572)이고, 글씨는 고산 황기로(1521∼1567)가 썼다. 가로 87cm, 세로 202cm, 폭 17cm 의 형식을 지녔으며 비문은 전체 13행, 각 행 평균 25자로 새겨져 있다. 비문에는 1554년에서 1558년까지 합천군수를 지냈던 이증영이 1554년의 극심한 흉년에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여 구휼하고, 청렴하게 관직생활을 했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비석의 주인공 이증영은 황기로와 함께 조선 중종 29년(1534)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이후 명종이 대군으로 있을 당시 그의 사부였으며, 명종이 즉위한 뒤 벼슬길에 올라 여러 벼슬을 거친 뒤 합천군수를 지내게 되었다. 그 뒤 1563년 청주목사 재직 중에 죽었다.

고산 황기로는 당대 최고의 서예가였을 뿐만 아니라, 특히 초서를 잘 써서 ‘초성(草聖)’이라 불렸다. 그의 글씨 가운데 초서는 여러 점 있지만, 해서의 경우 지금까지 발견된 것으로 완성된 작품으로는 이 비석이 유일하다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 글을 지은 남명 조식은 경의사상(敬義思想)에 입각해 살았던 사람이므로, 비문의 내용 또한 신빙할 만하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높다.





합천군수 이증영 유애비

합천군수 이증영 유애비

합천군수 이증영 유애비


합천군수 이증영 유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