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제주유형문화재

시도유형문화재 제19호 (서귀포시) 선덕사소장 묘법연화경 (善德寺所藏妙法蓮華經)

오늘의 쉼터 2010. 7. 4. 11:35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9호 (서귀포시)

명 칭

선덕사소장 묘법연화경 (善德寺所藏妙法蓮華經)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목판본/ 사찰본
수량/면적 3
지정(등록)일 2003.07.02
소 재 지 제주 서귀포시 
시 대 ?
소유자(소유단체) 선덕사
관리자(관리단체) 선덕사
상 세 문 의 제주도 서귀포시 문화예술과 064-760-2505
 
일반설명
 
준비중 
 
 
 
 
권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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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19-1호
명 칭

선덕사소장대자암판묘법연화경 권3~4.

(善德寺所藏大慈庵板妙法蓮華經 券 三~四.)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목판본/ 사찰본 
수량/면적 권3~4. 1책
지정(등록)일 2003.07.02
소 재 지 제주 서귀포시  상효동1156-6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선덕사
관리자(관리단체) 서귀포시
상 세 문 의 제주도 서귀포시 문화예술과 064-760-2505
 
일반설명
 
이 책은 사육신의 한 분인 성삼문의 조부인 성달생과 성개가 친히 써서 세종 4(1422년)년에 대자암에서 간행한 판본이다. 전 7권 3책 중에 권1~2와 권5~7의 2책은 결본으로, 권3~4의 1책만이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이 책은 복장시에 전후의 표지가 제거되어 있으나, 오히려 책을 만든 여러가지의 특징을 살펴 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바가 있다. 이는 우리의 옛 책은 일반적으로 5침으로 제본한 것이 통설이나, 선덕사본은 6침으로 내철하고 겉 표지 역시 6침으로 제본했던 흔적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인쇄에 사용된 지질은 세종에서 성종년간에 많이 제작된 전형적인 인경지이다.

이 선덕사본의 형태적 특징을 살펴보면, 권3의 책 제목 면을 기준으로 변란은 사주단변으로 되어 있으며, 그 반곽의 크기는 가로 13.7cm, 세로 21cm로 되어 있다. 경계선은 없으며, 반엽은 10행으로 한 행은 20자씩 배자되어 있는 형식을 보이고 있다. 특히 판심 부분은 고려본의 영향을 받은 듯 어미는 없고, 단지 판심제인 ‘법’과 그 밑으로 권수와 장수 표시가 보이고 있다. 이러한 판식은 성달생이 쓴 판본에서 볼 수 있는 두드러진 일반적인 특징 중의 하나이다. 이 책은 조선초기 세종 4(1422)년에 대자암에서 행호(行乎) 등의 주관으로 간행된 판본이며, 현재 우리나라에는 그 전본이 매우 희귀한 귀중본 전적문화재로서 동일본(기림사 소장)은 보물 제929호로 지정되어 있다.
 
 
 
 
 
 선덕사소장묘법연화경 권1~권7
 
 권3~4. 권3
 
 권3 말
 
 권4
 
권4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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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19-2호
명 칭

선덕사소장화암사판묘법연화경 권4~7

(善德寺所藏大慈庵板妙法蓮華經 券 四~七.)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목판본/ 사찰본 
수량/면적 권4~7. 1책
지정(등록)일 2003.07.02
소 재 지 제주 서귀포시  하원동 산1 (영원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손명훈
관리자(관리단체) 서귀포시
상 세 문 의 제주도 서귀포시 문화예술과 064-760-2505
 
일반설명
 
영실 영원사 오백나한전에 소장되어 있는 「선덕사 소장 화암사판 묘법연화경」의 판본은 전 7권 2책 중에 권1~3의 1책이 결본으로, 권4~7의 1책만이 해당된다.

이 책은 사육신의 한 분인 성삼문의 조부인 성달생(권 1·7)과 임효인(권2~4)· 조 절(권5~6)등이 1432~1435년까지 4년 동안 글씨를 썼으며 1435~1442년 까지 8년여 동안 화암사에서 판각하였다.

형태적 특징을 살펴보면, 권1의 책 처음 쪽을 기준으로 변란은 사주단변으로 되어 있으며, 그 반곽의 크기는 가로 13.7cm, 세로 21cm로 되어 있다. 계선은 없으며, 반엽은 10행으로 한 행은 20자씩 배자되어 있는 형식을 보이고 있다. 특히 판심 부분은 고려본의 영향을 받은 듯 어미는 없고, 단지 판심제인 ‘법法’과 그 밑으로 권차와 장차 표시가 보이고 있다. 이러한 판식은 성달생이 쓴 판본에서 볼 수 있는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이다.

판식상의 특징은 원간본과 일치되며, 다만 부처님 복장에 넣기 위해 전후의 표지가 제거되어 있으나, 오히려 제책상의 특징을 살펴 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바가 있다.

이는 우리의 옛 책은 일반적으로 5침으로 제책한 것이 통설이나, 선덕사본은 7침으로 꿰매고 겉 표지는 비단으로 장정했던 흔적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리고 선덕사본은 원간본에 보이고 있는 동일한 간기는 보이고 있으나, 성달생 · 성승 · 성삼문의 성명이 삭제되어 있는 것이 확인된다. 따라서 이 선덕사본은 세조2(1456)년에 발생된 ‘사육신사건’에 성승과 성삼문이 연루되었던 관계로, 사건 이후에 이 부분을 깍아 내고 재차 인쇄했던 사실이 입증되어 성종 년간에 간행된 후인본에 해당되는 것으로 사료된다.

본 묘법연화경은 1982년 전 조계종 종정이셨던 고암 대종사께서 선덕사 중창불사 증명법사로 주석하셨을 때 학균화상에게 전수하여 주신 것이며, 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선덕사에 보관되었다가, 2007년 12월 11일 이곳 영실 영원사로 옮겨 봉안하였다.

영실 영원사(靈園寺)의 창건 연대는 미상이나, 예부터 영실에는 많은 고승 대덕들이 찾아와 존자암·수행굴 등에서 수행 하였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오래전부터 암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영원사는 1980년대 초 조계종 종정을 역임하신 고암 대종사께서 이곳을 찾아 폐사된 암자터 정비하신 것을, 이후 최용주 거사 내외가 복원하여 설판한 것이다. 
 
 
 
 
 
 
 
권4
 
 권7 말
 
 권7 말 개간
 
 권4
 
권7 말
 
권7 말 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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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19-3호
명 칭

선덕사소장갑인자복각묘법연화경 권1~2

(善德寺所藏甲寅字覆刻妙法蓮華經 券一~二)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목판본/ 사찰본 
수량/면적 1책
지정(등록)일 2003.07.02
소 재 지 제주 서귀포시  상효동 1156-6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선덕사
관리자(관리단체) 서귀포시
상 세 문 의 제주도 서귀포시 문화예술과 064-760-2505
 
일반설명
 
우리나라는 고려중기 이후로부터 금속활자 인쇄기술이 매우 발달되었던 사례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갑인자는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계미자와 경자자 다음에 세 번째로 세종 16(1434) 갑인년에 구리(銅)를 주성분으로 주조된 금속활자이다. 특히 세종대의 고도의 과학기술과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주조되었던 까닭에 한국활자사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정교한 활자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의 가장 대표적 활자로 6차례 이상 개주를 거듭하였던 관계로 맨 첫 번째로 주조된 갑인자를 ‘초주갑인자’로 구분하여 이름하고 있다.

조선은 유교를 국시로 삼고 불교를 억압하는 정책을 표방하였나, 인간의 내면적 문제는 불교로 치유하려는 의지가 없지 않았다. 이는 민간뿐 만 아니라, 오히려 궁중에서도 유신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명장수와 공덕을 기원하는 수륙재 등의 여러 불교행사를 시행했다. 이러한 행사의 하나로 조선초기에 궁실에서 수많은 불경을 인출해 공덕을 비는 의례가 빈번하였으니, 급기야 세조가 궁중 안에 설치한 ‘간경도감’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그런데 세종은 훌륭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왕비를 일찍 여의고, 한편 동궁으로 있던 문종이 병약하여 중병에 이르자, 불경을 간행하여 불력으로 치유코자 하였다. 이에 세종 32(1450)년에 화엄경은 목판으로 인출케 하고, 법화경은 주자소에 명하여 활자로 33부를 간행케 하였는데, 이때 사용된 활자가 바로 ‘초주갑인자’이다. 그 후 전국의 유명 사찰에서는 이 “초주갑인자본 묘법연화경”을 저본으로 대략 30여 차례의 복각 간행이 실시되었다. 이 중의 한 종이 바로 현재 선덕사에 소장된 갑인자판 복각본 법화경이다.

선덕사 소장 갑인자판 복각 묘법연화경은 전 7권 중에 권1~2의 1책만이 소장되어 있는데, 형태적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은 복장본인 까닭에 전후의 겉 표지는 제거된 상태로 있으며, 권수에는 사문 급남의 ‘요해서’가 수록되어 있다. 권 1의 권두제면을 기준으로 변란은 사주단변으로 되어 있으며, 그 반곽의 크기는 가로 16.5cm, 세로 26.5cm로 되어 있다. 계선은 없으며, 반엽은 10행으로 한 행은 18자씩 배자되어 있는 형식을 보이고 있다. 특히 판심 부분은 갑인자본의 영향을 받아 어미는 상하흑어미가 하향하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으며, 판심제는 ‘묘법’과 그 밑으로 권수와 장수 표시가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인쇄에 사용된 종이는 임진왜란 이전에 불경 인출에 흔히 사용된 지질이며, 자체는 갑인자체의 특징을 여실히 보이고 있는 점으로 보아 비교적 초기의 복각본으로 보인다. 이 선덕사본은 갑인자판 복각본 중에 비교적 초기의 판본으로 중종연간(1506~1544)에 간행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권1
 
 권1 서문초
 
 권1 서문 중
 
 권1 서문말
권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