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충북유형문화재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호 청룡사 보각국사 비 ​<해제>

오늘의 쉼터 2010. 6. 29. 18:05



종 목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호
명 칭

청룡사 보각국사 비 (靑龍寺普覺國師碑)

분 류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1974.04.10~1979.05.22
소 재 지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번지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충주시

 

설명 

청룡사(靑龍寺) 옛터에 남아 있는 비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활약한 승려인 보각국사(普覺國師)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보각국사(普覺國師) 혼수(混修, 1320∼1392)는 도를 지킴에 조심하고, 특히 계율을 따를 것을 강조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12세에 출가하여 22세 때에는 승과에 급제하였으며, 29세 때에는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가 이후 청룡사(靑龍寺) 로 옮겨가 머물렀다. 여러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하다가 조선 태조 1년(1392) 청룡사(靑龍寺)로 돌아와 73세에 입적하니, 태조는 시호를 내려 ‘보각국사(普覺國師)’라 하고, 탑이름을 ‘정혜원융(定慧圓融)’이라 하였으며, 청룡사(靑龍寺)에 대사찰을 조성하도록 하였다. 비는 1장의 돌로 된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돌이 서 있는데, 위로 머릿돌을 따로 얹지 않고, 몸돌 양 귀퉁이를 접듯이 깎아 마무리해 놓았다. 조선 태조 3년(1394) 문인선사 희달(希達)이 왕의 명을 받아 세운 것으로, 권근(權近)이 비문을 짓고, 승려 천택(天澤)이 글씨를 썼다. 글씨에서는 힘이 느껴지고, 예스러운 순박함과 신비스러움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중국의 어느 명품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품격을 지니고 있다. 이는 이후 조선시대를 통하여 이에 대적할 만한 것이 없을 만큼 돋보이는 면이라 할 수 있다.

보물 제658호 '청룡사 보각국사 정혜원륭탑비(靑龍寺 普覺國師 定慧圓融塔碑)'로 승격지정됨에 따라 1979년5월22일 해제.




청룡사 보각국사 비

청룡사 보각국사 비


청룡사 보각국사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