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세상사는이야기

아무 말도 못 했어

오늘의 쉼터 2010. 6. 16. 09:44

 

    아무 말도 못 했어
    헛광에 들어가 낡고 헐은 사과박스를 꺼내려고 애 쓸 때였어. 문득 새소리를 들었으며 또 박스 안에서 어린 새끼를 발견했어. 박스를 거칠게 꺼내려 했기에 둥우리가 조금은 이그러지고 부서진 사실도 알았어. 잘못했구나.' 급히 반성하면서 박스를 원 위치에 조용히 놔 두고 헛광을 얼른 벗어났어. 멀리 벗어나니까 그때서야 새끼 소리가 들렸어. 헛광 주변에서 낮게 나는 어미새(아비새일 수도 있고)도 발견했어. 어미새를 발견했다라기보다는 어미새가 나한테 스스로 제 모습을 보여 주었다는 사실도 알았어. 어미새는 나를 바깥으로 나오도록 유도하고 있었어. 잡힐 듯 말 듯한 임계거리를 유지하면서 나를 끌어내고 있었지. 어미새들은 본능으로 생명을 걸고 제 모습을 일부러 드러내면서, 곧 잡혀 줄 것처럼 은밀히 행동하고 있었어. 새의 습성을 어느 정도껏 이해하는 나는 어미새의 행태를 짐짓 모르는 체하며 둥우리를 벗어나 주었지. 어미새한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무심한 척, 모르는 척해야 했어. 뒤늦게서야 헛광에서 가냘픈 소리가 났지, 어미를 찾는 소리. 곤줄박이. 아무래도 작은 새인 곤줄박이야. 며칠이 지나도록 헛광에서 들리던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작아졌어. 어린 새끼가 클수록 철이 들어서 위험을 감지하며, 자신의 위치를 은밀히 숨겨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는 뜻이지. 헛광에 들어가서 새 둥우리를 살짝 들쳐보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야 했어. 심지어는 내 노모한테도 아무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지. 어머니가 호기심을 이지지 못하여 분별없이 헛광을 들락거리면서 둥우리를 꺼내거나 들여다 볼 것 같았으니까. 때로는 모르게 하는 것이 약이지. 안 알려 주는 것이 더 美德일 수도 있으니까. 내가 서울 올라 온 이래로 시간이 흘렸으니 지금쯤 둥우리는 텅 비었을 거여. 헛광 속에서 입을 짝짝 벌리며, 어미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받아 먹으면서 빠르게 성장하던 새끼도 이제는 둥우리를 벗어났을 것 같아. 생애 첫 비상하면서 드넓은 창공에서 자유롭게, 유유히 날고 있을 것 같아. 어린 새새끼 이야기를 카페에 올려서 친구한테 알리는 것도 이제부터는 안심이거든. 친구들이 혹시라도 내가 사는 시골로 내려 와 헛광 속의 둥우리를 들여다 보아도 새끼들은 벌써부터 없었을 테니까. 새끼들을 보려면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높이 올려다 보아야 하니까. 안심하면서 이 글을 올린다네. 아니 이쯤에서 줄인다네. 사실말이지 고백할 것이 있거든. 나도 어새처럼 기꺼이 제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은 위기를 스스로 만들면서까지 자식을 보호하고 지켜려 했는지를 되돌아 보아야겠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새에게 감히 대비하지 못한다는 게 솔찍한 심정. <수필가 최윤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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